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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UN외교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북한의 남침에 의해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이승만정부는 미국의 군사적 원조를 받기 위해 주미 한국 대사 장면으로 하여금 즉각적으로 대미외교를 전개하도록 지시했다. 전쟁 발발 소식이 주한 미국 대사 무초의 전문을 통해 국무성에 공식적으로 전해진 것은 와싱톤 시간으로 토요일 밤이었다. 트루먼대통령은 자신의 고향에 휴가를 가 있었다. 휴일이었지만 애치슨 국무장관은 트루먼대통령과 긴밀히 연락한 후 그의 승인을 받은 후 한국 문제를 유엔에 상정하기로 결정했다. 그 직후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상정할 문안 기초 작업에 착수함과 동시에 유엔 사무총장에게 일요일 유엔 안보리 소집을 요구했다.

전쟁이 발발했을 때 한국에서는 유엔한국위원단(United Nations Commission on Korea, UNCOK)이 활동하고 있었다. 유엔은 1948510일 한국에서 자유총선거를 감시하기 위해 유엔한국임시위원단(United Nations Temporary Commission on Korea, UNTCOK)을 구성했고 남한에서 총선 이후 이 조직을 유엔한국위원단으로 대체시켰다. 유엔한국위원단은 한반도로부터 외국 군대의 철수 여부를 감시하고 한반도의 통일을 지원하기 위한 유엔의 집행 기관이었다. 전쟁 발발 직후 유엔한국위원단이 유엔에 보낸 보고서는 유엔의 한국전쟁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유엔한국위원단의 한국 상주와 전쟁 상황 보고서는 한국의 대유엔 외교에도 도움이 되었다.

 

배경
                                                                                 

1945920일 소련이 점령한 북한 지역에 부르조아 민주주의 정권을 수립할 것을 지시한 암호로 된 스탈린이 보낸 비밀 지령문이 공개됨으로써 소련이 북한에서 단독정부 수립을 먼저 추진했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되었다. 이 지령문은 모두 7개 항으로 되어 있는데 이들 중 세 개 항은 지금까지 극비에 붙여져 있었다. 1993226일 일본의 <<마이니치신문>>이 지령문을 발굴하여 그 전문을 번역 보도함으로써 그 내용이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1980-1987년에 한반도 문제는 기본적으로 남북한 당사자간의 문제로 한국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에 입각하여 유엔에서의 실익없는 남북대결로 인한 국력의 낭비를 지양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한편, 한국의 유엔 가입 당위성을 유엔 회원국들에 설득하는 외교적 노력 강화.

이에 따라 유엔에서의 북한 반한책동을 분쇄하고 비생산적인 한반도문제 토의 지양정책을 계속 견지, 관철시키는 한편 유엔의 국제여론집약기능을 충분히 활용해 유엔 내에서 한국의 평화통일방안에 대한 지지를 더욱 확산시키기 위한 외교활동을 강화하였다.

 

내용

UN은 한국정부의 수립 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고, 한국정부를 승인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에 개입하여 공산주의를 물리치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점에서 이승만 시기 한국의 외교에 있어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통일문제에 있어서 국제사회에서 한국 및 자유진영의 입장과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입장이 대립하는 가운데, 한국측의 입장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보하는데 유엔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였다.

유엔은 한국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제네바 회담이 결렬된 이후 제네바 회담에서 한국측이 제안했던 유엔감시 하에 인구비례에 따른 남북한 동시 총선거라는 통일 방안에 대한 지지의사를 나타내는 결의안을 여러차례 통과켰다.

한국은 1976년 제31차 유엔총회부터 한반도문제의 유엔총회 불상정 정책을 견지하기 시작하였다. 전두환정부도 한반도 문제는 기본적으로 남북한 당사자간의 문제로 한국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에 입각하여 유엔에서의 실익없는 남북대결로 인한 국력의 낭비를 지양하겠다는 입장을 지켰다.

이에 따라 유엔에서의 북한 반한책동을 분쇄하고 비생산적인 한반도문제 토의 지양정책을 계속 견지, 관철시키는 한편 유엔의 국제여론집약기능을 충분히 활용해 유엔 내에서 한국의 평화통일방안에 대한 지지를 더욱 확산시키기 위한 외교활동을 강화하였다.

이같은 방침에 따라 19851021일 노신영 국무총리는 유엔 총회 연설에서 가입문제에 관한 한국의 입장을 재차 밝힌 바 있으며, 1987818일에는 유엔 안보리 문서(S/19054)로 유엔 가입 당위성에 대한 한국의 기본 입장을 배포하여 회원국의 인식을 새롭게 하였다.

노태우 행정부의 UN외교는 노대통령의 UN연설과 남북한UN 동시가입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정부수립 이후 한국의 UN가입은 우리 외교의 중요한 외교과제중의 하나였다. 19491월 대한민국 정부수립후 UN가입 신청을 하였으나 안보리 상임이사국 소련의 거부권 행사로 가입신청이 부결되었다. 북한 역시 19492UN가입을 신청하였으나 상임이사국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우리 정부는 수차례 유엔가입을 시도하였으나 번번이 소련의 거부권 행사라는 벽에 부딪히게 되었다. 아울러 남북한은 공히 상대방을 배제하고 단독으로 가입하려는 입장을 견지해 왔고 이는 동서간 냉전구도와 맞물려 어느 측도 가입을 실현시키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참고자료
                                                                                      

분단의 배경과 고정화 과정〉《해방전후사의 인식김학준, 한길사, 1979

실록 제5공화국 (1), 경향신문사, 1987

한국외교 40외무부, 1990

한국외교발전론김정원, 집문당, 1996

한국외교 50외교통상부, 1999

집필자
이대우(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최초 주제 집필
2017. 12. 26
최초 주제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