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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현신규

주제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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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발생원인

현신규(玄信圭 Hyun Sin Kyu) 1911.12.9(음력)~1986.11.21

현신규는 식민지시기, 해방,한국전쟁 등 혼란의 시기를 거치면서 임학분야의 기초를 착실하게 쌓았으며, 1950년대 초부터 임목육종 연구를 시작하여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임종육종학이라는 분야를 개척하고 기본적인 틀을 세웠다. 이후 30여 년의 연구활동을 통하여 리기테다 소나무의 육종 등 세계적으로도 탁월한 성과로 평가받는 여러 과학적 업적을 달성하였다. 그의 연구결과는 실험실에서 머물지 않고, 20세기 이후 헐벗었던 이 땅의 산이 불과 수 십년 만에 울창하게 바뀌게 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그는 산을 푸르게 가꾸는 것이 국가발전의 초석임을 인식하고 산림부국론을 강조하며 일생을 그에 필요한 학문적∙이론적 기초를 제공하는 한편 산림녹화를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하였다. 현신규는 이러한 공적을 인정받아 2003년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이 설치될 때 첫 번째 헌정자 14명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내용

가. 기본사항
현신규는 1911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났다.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의 고등학교에서 문학이나 철학을 공부하고자 했으나 부친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웃에 살았던 농고 교장의 권유를 받아 수원고등농림학교 임과에 진학했다. 1933년 수원고농을 졸업하고 일본의 큐슈제국대학 임학과에 진학하여 1936년 졸업했다. 그는 졸업후 조선총독부 임업시험장에서 근무했으며, 1945년 수원농림전문학교 교수를 지냈고, 해방 직후 미군청 임업시험장 초대 장장을 맡았다. 1946년 수원농림전문학교가 서울대학교로 편입됨에 따라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교수가 되어 1977년까지 재직했다. 1949년 모교인 큐슈대학에서 농학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1951년부터 2년간 미국무성 초청에 의하여 미국 삼림유전연구소 및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임목육종학을 연구했다. 1963년부터 2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농촌진흥청장을 맡기도 했으며, 한국임학회와 한국육종학회 설립을 주도하여 각각 10년간 초대회장을 역임했다.


나. 공적사항 1: 한국 임목육종의 과학적 연구기반 구축
현신규는 1951년 1월부터 2년간의 미국 연구활동을 통해 임목육종학을 본격적으로 배우고 귀국하여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임목육종 연구활동을 시작하였다. 1953년 10월 정부보조금으로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내에 “임목육종학연구소” 설립하여 임목육종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이후 임목육종 연구를 보다 활성화시키기 위해 대학의 연구실이 아닌 국가기관이 필요함을 인식하여 1956년 임목육종연구소를 설립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는데, 이것이 한국 임목육종 연구의 중심체가 되었다. 현신규는 임목육종연구소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연구를 수행하였으며, 1977년 서울대학교 농대를 정년퇴임한 후에도 작고할 때까지 임목육종연구소에서 연구활동을 계속하였다. 현재 한국의 임목육종 연구는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현신규가 그 기반을 착실하게 마련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로 평가된다.


다. 공적사항 2: 임목육종 연구성과
현신규는 미국에 머물 때 리기다소나무와 테다소나무의 잡종인 리기테다가 자라고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이 직접 시험교배를 실시하여 그 종자를 채취하여 귀국한 다음 본격적인 연구를 실시했다. 생장속도와 각종 형질이 국내에 널리 분포하고 있던 리기다를 대체할 수 있다고 판단한 그는 리기테다의 종자를 대량생산하여 국내보급을 추진했다. 


비록 리기테다의 자연교배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현신규가 교잡육종에 의해 리기테다의 종자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조림에 성공한 것은 세계적인 성과였으며, 1963년에는 미국 상원에 “한국의 기적의 소나무”로 보고되기도 하였다. 또한 현신규는 1953년부터 우리나라의 실정에 꼭 필요한 목재자원을 조속히 확보하기 위해서 속성수인 포플러의 도입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330여 종의 포플러에 대한 국내 적합시험을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유럽을 원산지로 하면서 이미 오랜 전부터 도입되어 토착화되어 있던 은백양(Populus alba)과 수원의 여기산 부근에서만 자생하는 재래종 수원사시나무(Populus glandulosa)의 교배종이 우수한 형질을 갖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더욱 우수한 교배종을 얻기 위해 수년간 교배실험을 하였다. 이후 1964년에는 이 교배종이 평지가 아닌 산지에서는 이태리포플러보다 성장력이 우수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대규모의 인공교배를 통한 산지식재시험을 실시하여 경사지에서 우수성을 갖는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이 교배종은 1968년부터 “은수원사시”라고 명명되고 장려품종으로 지정되어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1972년 식목일에는 당시 대통령 박정희가 “목재자원조성을 앞당기기 위해 현신규가 만든 은수원사시를 많이 심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공개적으로 권장함으로써 더욱 널리 보급되었다. 이 은수원사시는 1979년 박정희에 의해 현신규의 성을 따라 “현사시”로 개칭되어 현재까지 통용되고 있다.


라. 공적사항 3: 산림녹화의 공헌
현신규는 임목육종 분야의 연구활동을 통해서 한국의 산림녹화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였으며,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및 임목육종연구소를 통해 많은 임업인력을 양성·배출하여 산림녹화의 인적기반을 구축하였다. 그는 자신의 임목육종 연구활동을 단지 이론적인 연구에 그치지 않고, 그 성과가 실제 산림을 푸르게 하는 실질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였다. 그는 1953년부터 이태리포플러 도입에 큰 열의를 보였는데, 이는 당시 우리나라 실정에서 가장 시급한 것이 성장력이 우수한 이른바 속성수를 많이 심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평생을 산림녹화를 통해 국가의 경제발전 및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으며, “국민 모두가 산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뼛속 깊이 인식하고 과학과 기술로써 조림과 육림을 실천”해야됨을 역설하면서, 그 자신 몸소 그 일을 실천하였다.

참고자료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http://www.kast.or.kr/hall/)

김근배, <<한국 과학기술 인물 12>>, 해나무, 2005.

이경준, <<산에 미래를 심다>>, 서울대출판부, 2006.

집필자
문만용(전북대학교 연구교수, 과학사)
최초 주제 집필
2008. 09. 23
최초 주제 수정
2014. 0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