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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최형섭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발생원인

최형섭(崔亨燮, Choi Hyung Sup) 1920.11.2~2004.5.29

최형섭은 금속공학 분야에서 많은 연구성과를 거두고,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초대 소장이 되어 연구소의 설립과 운영에 큰 기여를 했다. 1971년 과학기술처 2대 장관으로 임명되어 7년 이상 재직하면서대덕연구단지 건설을 계획·추진하는 등 한국 과학기술발전에 큰 업적을 남겼으며, 이후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개발도상국에 적합한 과학기술개발 모델을 제시하고 여러 나라의 과학기술정책 수립에 자문을 하는 등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러한 공적을 인정받아 2003년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이 설치될 때 첫 번째 헌정자 14명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으며, 2004년 타계 후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는데 이는 과학기술자로서 이태규에 이어 두 번째였다.

내용

가. 기본정보
최형섭은 1920년 경남 진주에서 출생했으며, 대전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44년 와세다대학 이공학부 채광야금과를 졸업했다. 해방이후 경성대학 교수, 공군항공수리창장을 거친 다음 미국에 건너가 1955년 노틀담대학에서 금속의 소성변형에 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미네소타대학으로 옮겨 1958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미국 내무성 연구원을 지내다 귀국하여 국산자동차주식회사 부사장을 거쳐 1961년원자력연구소 연구관이 되어 연구활동을 재개했다. 그 과정에서 상공부 광무국장을 겸직하기도 했으며, 1962년 원자력연구소 소장에 임명되었다.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의 초대 소장으로 임명되었고, KIST의 설립과 운영과정에서 연구관리자로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 이를 바탕으로 1971년 과학기술처 장관으로 발탁되어 7년반이란 긴 시간 동안 장관으로 재임하면서 우리나라 과학기술발전을 위한 기틀을 굳건히 다졌다. 공직에서 물러난 그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발전 과정을 학술적으로 체계화해서 개발도상국에 과학기술발전모델로 제시하고, 여러 개발도상국들의 과학기술개발 정책결정과정에 자문을 하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 주요공적 1: 과학기술행정가
KIST 초대 소장으로 일하던 최형섭은 1971년 6월 과기처 장관에 취임하여 7년 6개월이라는, 역대 최장수 장관의 기록을 세우면서 일관된 원칙과 방향을 갖고 과학기술개발을 위한 기반을 확고히 다져 나갔다. 그는 70년대 과학기술개발의 방향을 ‘과학기술발전의 기반구축’ ‘산업기술의 전략적 개발’ ‘과학기술의 풍토조성’의 세 가지로 설정했다. 그는 이러한 세 가지 방향 아래특정연구기관육성법 등 10여 개의 새로운 법령을 제정하여 과학기술발전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정부출연연구소의 설립 등을 통해 연구개발체제를 강화했고, 한국과학기술의 메카로 자리잡은 대덕연구학원도시를 탄생시켰다.


다. 주요공적 2:과학기술정책 이론가
최형섭은 개발도상국에서 드물게 성공을 거둔 KIST의 초대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분야에서 급격한 성장을 거둔 한국의 과학기술처 장관을 역임하면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개발도상국을 위한 과학기술발전 모형을 세웠는데, 이는 개발도상국들이 과학기술정책을 수립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그는 개발도상국의 기술개발문제와 관련해서 한국을 대상으로 한 자신의 구상과 실천경험을 정리·발표한 것을 󰡔개발도상국의 과학기술개발전략󰡕 3권으로 출판했는데, 이 책은 모두 영어로 번역 출판되었으며, 2권은 중국어와 이란어로도 번역되었다. 최형섭은 공직을 떠난 후 10여 년 이상 UNDP, UNESCO, UNIDO, ESCAP 등 UN 산하기관과 기타 국제기구의 요청에 따라 동남아, 중동,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을 순방하면서 과학기술 정책 및 전략에 대한 자문에 응하는 동시에 각종 국제회의에 초청되어 강연을 수행하며 개발도상국의 과학기술개발전략 수립을 지원했다.


라. 주요공적 3: 연구관리자
최형섭은 1961년 재단법인 금속연료종합연구소 설립을 주도하고 운영에도 참여하는 한편 적극적인 연구활동을 벌였다. 1962년 원자력연구소 소장으로 임명된 다음 능력있는 연구자들을 키우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 동안의 연구업적과 금속연료종합연구소와 원자력연구소에서의 활동을 인정받아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의 초대 소장으로 임명되어 설립과정을 주도했다. 그는 연구소 운영이념으로 연구의 자율성, 연구의 안정성, 연구환경의 조성을 꼽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국내외에서 우수한 한국인 과학기술자들을 유치할 수 있었다. 그는 1971년 6월 과학기술처 장관으로 임명될 때까지 5년 이상 KIST의 초대소장으로서 연구소가 굳게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KIST 설립과정에서 쌓은 노하우와 운영과정에서 확립된 제반원리들은 이후 설립된 정부출연연구소들에 대부분 그대로 이식되었다.


마. 주요공적 4: 금속공학자
최형섭은 금속공학의 계면현상과 부선이론, 습식야금, 초내열합금, 고급강 제조 등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연구를 수행하여 우수한 연구결과와 연구논문을 많이 냈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부유선광법(浮游選鑛法)과 관련된 것으로, 고체액체간 계면현상을 전기화학적으로 구명하여 이를 부유선광이론에 적용하여 철광석을 비롯한 비황화광물의 부선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제시한 것이었다. 그는 학위를 받고 귀국해서 국내에서 후학들과 함께 자신의 연구를 꾸준히 발전시켜나가 국내 학계의 성장을 이끌었으며, 그의 연구는 실험실에만 머무르지 않고 실제 산업현장에서 이용할 수 있는 성과들로서 국내 산업계에 많은 기여를 했다.

참고자료

최형섭,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 조선일보사, 1995.

최형섭, <<과학에는 국경이 없다>>, 매일경제신문사, 1998.

최형섭, <<기술창출의 원천을 찾아서>>, 매일경제신문사, 1999.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http://www.kast.or.kr/hall/)

집필자
문만용 (전북대학교 연구교수, 과학사)
최초 주제 집필
2008. 09. 23
최초 주제 수정
2014. 0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