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전체메뉴 닫기

분야별 검색

  • Home
  • 기록물 열람
  • 통합검색
  • 분야별 검색

산업/중소기업

경제장관협의회 중화학공업 조정(1976-1978)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경제장관협의회 결정
배경
중화학공업화선언 이후 중화학공업화 초기에 대기업집단들은 중화학공업에 진입을 꺼려 정부가 시장을 보장해주는 유인정책을 제시해야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중화학공업의 총자본투자효율의 상승과 상승기대가 커지면서 1976년 말 이래 대기업집단들의 중화학공업 진입이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중전기 부문과 발전설비 등은 대표적 산업이었다. 중화학공업에서 대기업집단들의 신규진입과 확장이 급속히 진행되자 이에 대한 우려가 학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관련재계에서도 역시 비용과 수요문제에 대한 우려가 점점 심각하게 대두되게 되었다. 1972, 73년 기간산업이었던 PVC업계와 판유리업계 파동과 같은 제2파동 우려가 고조되면서 중화학공업조정이 경제장관협의회에서 논의되고 결정되었다.
경과
1975년 경제기획원은 중화학공업의 추진방향을 만들었는데 여기에서 경제기획원은 중화학공업 관련 건설의 일부 시기조정을 주장하였다. 1976년 들어와 일부 특정 중화학공업 관련기업의 부실이 우려되면서 1976년 12월 30일 경제장관협의회는 중화학공업조정을 발표하였고 이어 1977년 5월 21일, 경제장관협의회는 우선 당장 문제가 들어난 발전설비산업의 조정에 착수하기로 하였다. 1978년 4월 22일 경제장관 협의회는 중화학공업 구획조정안을 결정하였다.
내용

가. 1976년 조정

정부는 1976년 12월 30일 경제장관협의회에서 중화학공업조정으로 우선 변압기와 차단기의 일부조정을 발표하였다. 내용은 (1) 1979년 말까지 154KV 변압기 제조를 위한 차관과 기술도입을 불허, (2) 전력용 변압기 신규업체 설립 불허, (3) 345KV 변압기, 차단기 등은 「효성중공업」으로 일원화 하는 것이었다. 이후 엔진은 부문별로 나누어 전문화시켰는데 6천 마력 이상 대형엔진은 「현대조선」, 600-6,000 마력 대중형엔진은 「쌍용중기」, 600마력 이하 소형엔진은 「대우중공업」으로 조정하였다. 또 철도차량엔진은 「대우중공업」, 「조선공사」로 이원화하였으며 디젤엔진은 「현대차량」으로 일원화하였다. 자동차는 「현대자동차」, 「새한자동차」, 「기아산업」으로 3원화하였다. 통신 및 전력 케이블은 「대한전선」, 「금성전선」으로, 건설용중장비는 「현대양행」, 「대우중공업」으로, 컬러 TV 브라운관은 「삼성」, 「금성」, 「대한(大韓)」의 3원화로 결정됐다. 과산화수소는 「대한제당」, 「동양화학」으로 각각 이원화하였다. 또한 농기계는 「대동(大同)」, 「유신(惟新)」(국제), 「동양물산(東洋物産)」, 「진일(進一)기업」(효성)으로 4원화하고 폴리에스테 필름은 「선경화학」으로 일원화시켰다.


나. 1977년 조정

1977년 5월 21일, 경제장관협의회는 문제가 들어난 발전설비산업의 조정에 착수하게 되었다. 발전설비 업체는 당시 황금알로 비유되면서 대기업들이 일제히 진입해 관련업체수가 14개에 이르고 내수(內需)대비 생산능력 과잉이 가장 우려되는 부문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조정의 내용은 「현대건설」, 「대우중공업」은 해외진출을 위한 엔지니어링 습득에, 「삼성중공업」의 보일러 공장은 산업용 보일러 제작으로 전문화시킴으로써 사실상 일단 발전설비는 「현대양행」으로 일원화하는 것이었다.


다. 1978년 조정

1978년 4월 22일 <경제장관 협의회>는 중화학공업 구획조정안을 결정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원자력 발전설비 부문에 「현대중공업」, 「대우중공업」의 참여를 허용한다. 이는 1977년 5월 21일 결정한 「현대양행」 일원화를 해제한 것이며 「삼성」, 「효성」은 과열을 이유로 탈락시킨 것이었다. 그러나 「삼성」의 반발로 「삼성」은 비행기 엔진제작과 관련 가스터빈 제작사업에 착수하고 「삼성중공업」의 창원공장은 발전용 보일러 제작 허용을 요구하였다. 둘째, 1976년 12월 30일의 중전기 구획정리안을 수정하여 154 KV 변압기 제조시설 투자를 자유화하고 변압기 신규업체의 설립불허를 철회하였으며 「현대중공업」의 중전기 분야 참여를 사실상 허용하였다.

참고자료

경제기획원, 《한국경제의 당면과제와 대책》경제기획원 내부자료, 1978. 8.

김의균, <중화학공업투자조정의 내막> 《신동아》, 1980. 12.

전국경제인연합회,《전국경제인연합회 20년사》, 1982.

박영구, <정책시그널로 본 70년대 重化學工業調整의 微視的 연구> 《무역경영논집》제10집, 부산외국어대학교 무역경영연구소, 1994. 12, pp. 5-28.

박영구, <중화학공업의 효율성에 관한 연구-1970년대 산업정책의 경제사적 연구>《경제학연구》제43집 제1호, 한국경제학회, 1995. 7, pp. 103-124.

한국개발연구원,《안정화대책방향》청와대회의 자료, 1979. 3.

한국개발연구원,《장기경제사회발전 1977-91年》경제기획원답신서, 1977. 12

한국개발연구원,《경제안정화시책 자료집》상, 하, 1981. 4.

한국개발연구원,《산업정책의 기본과제와 지원시책의 개편방안》, 82-09, 1982.

집필자
박영구(부산외국어대학교 상경대학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07.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