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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중소기업

부실기업정리(1969)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1969년 대통령의 재무부장관, 산업은행총재에 대한 기업정비 지시

1969년 재무부 부실기업 발표와 정리방침

배경
한국은 1960년대 압축된 공업화를 본격 진행하면서 자본부족이라는 근본적 한계를 갖고 있었다. 자본시장의 한계로 만성적으로 초과자금 수요가 존재하고 있었고 그래서 부족한 자본은 해외에서 도입되고 있었다. 이런 만성적인 자본부족과 자금의 고비용 하에서 국내에서든 해외에서든 제도금융시장을 통해 자금을 얻을 수 있으면 그것은 뒷 돈을 만들어내면서 거래될 수 있었고 또 이러한 제도금융자금은 시중 사채시장보다 이자율이 쌌으므로 바로 상업적 이윤의 원천이 되었다. 결국 이러한 사태는 1960년대 말부터 기업들의 부실화를 초래하였다. 외자기업들을 중심으로 한 채무기업들이 도산하기 시작하였고 이는 점점 한국경제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나아가 대외신인도의 약화, 정부부담의 확대가 진행되었다. 정부는 이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경과
1967년 「기계공업진흥법」, 「조선공업진흥법」이 3월 30일에 제정될 때 정부는 외자도입합리화 시책을 고려했다. 11월 30일에는 이를 구체화한 외자도입합리화 종합시책을 발표하여 외자원리금상환액이 당해 연도 경상외환수입의 9% 이내로 제한되도록 하였다. 이어 정부는 1968년 1월 외자도입합리화시책을 다시 발표하여 외자의 과잉도입을 견제하였다. 


그러나 기업들은 당시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관리능력이 취약했던 정부의 허점을 이용해 1960년대 말 외자도입을 계속 확대했다. 심지어 「동양화학」의 경우 상공부의 반대를 염려해 연산 6,000천 톤 규모의 공장을 비밀리에 지어 공장이 완공되고 나서야 정부가 알게 되었으며, 「우풍」의 경우는 전량 수출한다는 조건을 걸고 1만 톤급 공장을 건설했다. 「공영화학」의 김종수(金鍾壽)사장은 재일교포로 고국에 투자한다는 명목으로 돈을 들여왔다. 


결국 기업들의 고수익 기대 특정부문에 대한 경쟁적 자본도입으로 서서히 과잉설비가 나타나고 기업부실화가 진행되었다. 1969년 2월 27일 박대통령은 황종률(黃鍾律) 재무부장관과 김영휘(金永徽) 산업은행총재로부터한국산업은행 업무보고를 받고 부실, 불건전 기업의 과감한 정비를 지시하였다. 1969년 5월 13일 청와대에 외자관리실이 신설되어 부실기업 정리작업의 일부가 시작되었다. 5월 19일 재무부는 우선 5월 현재 차관업체 83개 중 45%가 부실기업이라고 발표하고 이후 부실기업정리작업을 계속 진행했다.
내용

1969년 부실기업 정리는 83개 지급보증업체 중 자본완전 잠식 28개, 자본금 비중 10% 미만 17개 회사 중에서 청와대 부실기업정리조사반이 30개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부실기업정리는 8월 15일까지 8차에 걸쳐서 시행되었다.


1차 부실기업 정리는 석유화학업계에 대한 정리로 「대한플라스틱」, 「공영(共榮)화학」 등 23개 부실기업을 정리했다. 2차 부실기업정리는 6월 14일에 발표되었는데 철강 3사에 대한 정리로 「인천제철」은 「인천중공업」이 합병, 증자하고 「한국전기야금」은 「인천제철」이 투자, 계열화하며, 「삼화(三和)제철」은 채권자인 「서울은행」이 공매처분하기로 되었다. 다시 3차 부실기업정리로 「천우사(天友社)」 등이 정리되었고, 4차 부실기업정리는 7월 14일에 이루어졌는데 「아세아자동차」, 「한국철강(申永述)」, 「한국제강(薛道植)」 등이 포함되었다. 5차 부실기업정리에서는 「삼양(三洋)수산」 등 수산, 관광, 개발회사가 포함되었고 6차 부실기업정리에서는 「흥한(興韓)화섬」, 「내외방직」, 「조선공사」 등이 정리되었다. 마지막으로 7차 부실기업 정리에서는 「동립(東立)산업」, 「동양(東洋)화학」, 「신흥(新興)개발」, 「신흥수산」, 「신흥냉동」 등이 정리되었다.


1969년 8월 15일 부실기업 정리가 종결되었는데 정리된 부실기업에는 「대한프라스틱」, 「공영화학」, 「인천제철」, 「한국전기야금」, 「삼익선박」, 「아세아자동차」, 「한국철강」, 「한국제강」, 「삼양선박」, 「대한조선공사」, 「동양화학」 등 당시로서는 중견기업들이 상당수 포함되었다.

참고자료

국무총리기획조정실,《중화학공업의 오늘과 내일》, 1973.

박영구, <중화학공업의 효율성에 관한 연구-70년대 산업정책의 경제사적 연구> 《경제학연구》 제43집 제1호 한국경제학회, 1995. 7, pp. 103-124.

오원철, <산업전략군단사>《한국경제신문》, 1993. 1. 18-1994. 3. 30.

한국능률협회, <한국기업의 진로: 불실기업정리 이후에 오는 것>《현대경영》4-9, 1969. 9, pp. 32-37.

집필자
박영구(부산외국어대학교 상경대학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07.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