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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중소기업

100억달러 수출 달성(1977)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발생배경
1972년 11월 7일 <월간경제동향보고>에서 박정희대통령은 한국이 연평균 25%의 수출증가를 계속하면 1980년에는 적어도 100억 달러 수출을 달성할 수 있고 1981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을 1천 달러 수준으로 증가시킬 수 있다는 한국경제의 장기전망을 제시하고 이에 주력할 것을 지시하였다.
내용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1981년 한국경제의 목표로 100억 달러 수출이 정해졌다. 그리고 100억 달러 수출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는 중화학공업화가 선택되었다. 이는 100억 달러 수출을 달성할 당시의 일본의 경험에서 배운 것이었다. 이에 따라 박대통령은 1973년 1월 12일 대통령 연두기자회견 중화학공업화선언에서 “정부는 이제부터 중화학공업 육성의 시책에 중점을 두는 중화학공업시책을 선언하는 바입니다........80년대 초에 우리가 100억 달러의 수출목표를 달성하려면 전체 수출상품 중에서 중화학제품이 50%를 훨씬 더 넘게 차지해야 되는 것입니다”라고 선언하고 내각에 중화학공업을 획기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특별지시를 내렸다. 이에 따라 100억 달러 수출, 일인당 1,000 달러 국민소득의 달성수단으로 1973년부터 중화학공업 육성계획이 추진되었다. 장기 중화학공업 육성계획에서 앞으로 한국의 공업화 내지 경제발전을 주도할 업종의 선정은 전후방 산업연관효과가 크고 산업전반에 걸쳐 성장기여도가 높으며 기술집약적인 산업으로서 국제수준에 이를 잠재력을 가진 것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이에 따라 철강, 화학, 비철금속, 기계, 조선, 전자 등 6개 업종이 주도업종으로 선정되었다.


1973년 작성된 국가산업기본모델 역시 수출 100억 달러, 1인당 GNP 1,000불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이 목표를 위해 10개년에 걸쳐 달성하는 과정을 년차별로 풀이한 계획서가 바로 국가산업기본모델이 된 것이다. 10년으로 한 이유 역시 ‘일본에서는 1957년부터 중화학공업화 정책을 명백히 한 신장기경제계획을 수립하여 오늘의 경제대국으로 유도하였다.......중화학공업정책 선언 후 10년 만에 100억불의 수출고지를 점령하였다”는 일본의 100억 달러 수출달성 사례에 따른 것이었다. 이후 실질수출증가율은 1973년 55.8%, 1974년 9.5%, 1975년 23.2%, 1976년 35.4%, 1977년 19.3%로 석유위기 때를 제외하고 고도의 수출성장률을 계속 이루었다.


그 결과 1980-81년 목표였던 100억 달러 수출계획은 1977년 12월 22일 오후 4시 100억 1,600만 달러 수출에 도달함으로써 달성되었다. 이는 1964년 1억 달러 수출돌파에 이어 13년 만에 이룩한 쾌거였다. 1962년 이래 연평균 수출신장률은 42.4%를 기록했고 수출시장은 33개국에서 133개국으로, 수출품목은 69개에서 1,200개로 늘어난 것이며 국민 1인당 274달러, 하루 평균 2,700만 달러를 수출한 것이다. 100억 달러 수출의 10대 상품은 직물제의류(9.9%), 전기기기(9.2%), 수송용기기(6.8%), 직물(6.1%), 신발(4.9%), 활선어(4.8%), 쉐터류(4.4%), 베니아합판(3.2%), 섬유사(2.5%), 강판(1.7%)였다. 즉 10대 상품 중 공업제품이 9개였고 중화학공업제품이 3개였다. 1977년 수출 100억 달러는 세계 25위권이었다.

역사적의의

2006년 무역협회는 해방 이후 한국무역 10대 뉴스를 뽑았다. 여기에서 '수출주도형 경제성장 전략의 채택과 수출 1억 달러 달성(1964년)'을 첫손가락에 꼽았는데 다섯 번째 뉴스로 1977년 수출 100억 달러 돌파를 뽑았다. 그만큼 한국경제에서 수출 100억 달러 달성은 주요한 역사적 의의를 가지는 것이었다. 1973년 한국경제의 선진화 전략에서 선진화의 목표로 제시된 것이 1981년 1인당 국민소득 천 달러, 수출 100억 달러였다. 이것은 당시 한국경제가 지향해야 될 지선의 목표였지만 대내외에서 불가능하다고 대부분 평가되던 것이었다. 그러나 1973년에 수립한 1980년대 초 수출 100억 달러, 소득 1,000달러 달성 목표는 당초 계획보다 무려 3년이나 앞서 달성됐다.


수출 100억 달러 달성은 여러 역사적 의의를 가지는 것이었다.

우선 첫째, 한국국민들에게 이제 우리도 잘 살 수 있고 그것도 세계시장에서 타국과 겨루어 떳떳하게 잘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둘째, 수출 100억 달러가 달성됨으로써 한국의 수출지원체제, 정책이 세계와 비교하여 올바르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확인을 하게 됨으로써 보다 확고한 정책의 수립과 활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셋째, 세계에 한국상품의 우수성을 알리고 한국의 수출능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단계적 계기가 됨으로써 이후 2006년 12월 5일 세계 11번째로 수출 3,000억 달러를 달성하는 주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참고자료

경제기획원,《경제백서》, 1973.

경제기획원,《주요경제지표》, 1973-1989.

대통령비서실,《중화학공업화정책선언에 따른 공업구조 개편론》, 1973.

오원철, <산업전략군단사> 《한국경제신문》, 1993. 1. 18-1994. 3. 30.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기획단,《 한국공업화 발전에 관한 조사 연구(Ⅰ): 정책결정과정의 이면사》, 1979.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 기획단,《한국공업화발전에 관한 조사연구(Ⅲ): 정책결정과정의 이면사》, 1979.

최배근,《역사적분석으로 본 한국경제의 새로운 길》박영사, 2007.

한국무역협회,《한국무역사》, 2006.

한국은행,《통계월보》 33-9, 1979. 9.

한국은행,《경제통계연보》, 1973-1979.

집필자
박영구(부산외국어대학교 상경대학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07.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