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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중소기업

시멘트공업육성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1973년 대통령의중화학공업화선언 내용

1973년 중화학공업육성계획

배경
시멘트공업은 1960년대부터 국토건설 기치하에서 필요한 주요산업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여기에 더하여 원래 수출이 어렵다고 인식되어 온 시멘트가 다른 공산품과 달리 외화가득율이 95%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1970년대 들어와 시멘트는 수출유망품목으로도 급속히 등장하였다. 한국의 경우 매장 석회석이나 시멘트 생산기술 수준이 선진국에 뒤떨어지지 않아 생산능력만 확대한다면 유망산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더구나 1970년대 들어와 중화학공업화가 진행되고 건설경기가 본격화되면서 시멘트는 과부족상태가 지속되었다. 따라서 시멘트공업 육성은 1960년대 단순히 국내수요 충족을 위한 필요를 넘어서, 국내산업과 경제의 발전과 안정, 그리고 수출을 위해서 1970년대 중요한 지상과제로 떠올랐다.
경과

박정희 대통령은 중화학공업화 선언(1973.1.12)에서 육성해야 할 산업으로 제철, 조선, 석유화학, 기타 자동차 외에 정유, 시멘트를 포함하여 지명하였다. 중화학공업 추진위원회는 이에 따라 철강공업, 비철금속공업, 기계공업, 조선공업, 전자공업, 화학공업으로 중점공업을 지정하고 화학공업에 석유화학 외에 석유정제, 비료, 유리공업 그리고 시멘트를 포함시켰다. 1973년에는 시멘트공업육성계획이 만들어졌고 이후 시멘트 공업은 주요 공업으로 육성되었다. 1974년 10월 2일에는 시멘트수급대책이 발표되었는데 이는 민수용 시멘트공급량을 늘리기 위해 시멘트 수급대책을 마련하고 시멘트 성수기인 11월 중순까지 민수부문에서 예상되는 공급부족량 20만 톤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여전히 시멘트공업은 과수요, 공급부족이었다. 1975년 12월 상공부는 「제4차경제개발5개년계획 공업계획(Ⅰ) 1977-1981」을 작성하면서 1976-1980년간 쌍용양회의 시멘트공장 56만 M/T 증설계획을 제출했다. 1976년 7월 1일에는 시멘트 부문 과당경쟁방지를 통한 시멘트산업 육성을 위해 카르텔까지 승인되었다. 이 해에 연평균 300만 M/T 이상의 수출 촉진, 장기수출시장의 확보, 해외건설공사용 시멘트의 국산사용 장려, 국내 Bulk 촉진(유통구조 혁신, 종이포장지 절약) 등의 정책방향이 설정되었다.


시멘트공업에 대한 육성의지가 높아지면서 1975년 과잉설비, 증설이 국회에서 문제가 되었지만 실질적으로 1976-79년간 가동률이 매우 높아 과잉설비 문제는 없었다. 심지어 1978년에는 내수확대에 따라 물량이 부족하여 수출이 억제되기도 했다. 시멘트공업육성계획에 의해 「쌍용」의 동해공장이 1차 준공되고 「성신양회(星信洋灰)」가 증설되어 1979년 시멘튼 1,962만 1,300톤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내용

1973년 이루어진 시멘트공업육성계획의 시멘트공장 건설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가. 위치 및 부지면적: 강원도 북평

나. 규모(시멘트 연간생산능력): 시멘트 1,200천 톤

다. 총투자액: 내자 3,900백만 원, 외자 16,250천 달러

라. 건설기간: 1973. 2-1974. 3.

마. 증설계획: 시멘트생산능력을 120만 톤에서 170만 톤으로 일차 증설하고 다시 290만 톤으로 증설

바. 건설주체: 쌍용양회

참고자료

국무총리기획조정실,《중화학공업의 오늘과 내일》, 1973.

대한민국국회사무처,《제94회 국회상공위원회 회의록》제94회-상공제1차, 1975. 9.

대한민국국회사무처,《제96회 국회상공위원회 회의록》제3호 제96회-상공제3차, 1976. 9.

상공부 중공업계획반, 화학 및 경공업계획반,《제4차경제개발5개년계획 공업계획(Ⅰ) 1977-1981》, 1975.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 기획단,《중화학공업육성계획》, 1973.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 기획단,《한국공업화발전에 관한 조사연구(Ⅲ): 정책결정과정의 이면사》, 1979.

한국개발연구원,《한국경제반세기 정책자료집》, 1995.

집필자
박영구(부산외국어대학교 상경대학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07.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