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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중소기업

중화학공업화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1973년박정희 대통령의 중화학공업화 선언
배경
1972년 5월 30일 <수출확대진흥회의>를 끝내고 박정희 대통령은 오원철 경제수석에게 “임자 100억달러를 수출하자면 무슨 공업을 육성해야하나?”라고 질문하였고 오수석은 “일본이 1957년 20억 달러 수출에 달했을 때 중화학공업화정책으로 전환하여 10년 후 1967년 100억 달러 수출을 달성했던 것과 똑같이 100억 달러 수출을 위해서 중화학공업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대통령께 건의하였다. 1972년 11월 <월간경제동향보고>에서 박대통령은 ‘연평균 25%의 수출증가를 계속하면 1980년에는 적어도 1백억 달러의 수출은 무난히 달성될 수 있고, 1981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을 1천 달러 수준으로 증가시킬 수 있다’라고 우리 경제의 장기전망을 제시하면서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중화학공업화를 추진하였다.
경과

1973년 1월 12일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중화학공업화선언」을 하였다. 그 내용은 수출 100억 달러, 1인당국민소득 1천 달러 달성을 위해 중화학공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한국의 중화학공업화 정책은 1973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한국의 중화학공업화는 두 차례의 석유위기(오일쇼크) 등으로 위기를 맞이하기도 하였으나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1977년에는 수출 100억 달러가 달성되었고(1977년 12월 22일 오후 4시 100억 1,600만 달러 수출 달성), 1인당국민소득(GNP)도 1,008 달러가 달성되었다. 적어도 중화학공업화의 최종목표라는 측면에서 보면 중화학공업화의 목적은 1977년 달성되었다. 한편 다른 목표였던 제조업 부가가치의 50%를 중화학공업으로 한다는 것은 1979년 52.1%로 달성되었다. 모든 목표는 원래계획인 1981년 계획을 앞당긴 것이었다. 1979년 이후 중화학공업화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고 박정희 대통령 사후 박정희=중화학공업화로 비판이 고조되어 중화학공업화정책은 중화학공업 조정으로 중단되었다.

내용

중화학공업화 정책의 내용을 목표, 구체적 세부내용, 대상에서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목표는 1980년대 초 100억 달러의 수출목표를 달성하고 이를 위해 전체 수출상품 중에서 중화학제품의 비중을 50%를 넘게 한다.


둘째, 중화학공업화의 구체적인 세부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 제철분야는 현재의 1백만 톤 규모에서 10배를 늘려 1천만 톤 규모로 크게 확장한다.

나. 조선은 현재 25만 톤의 시설능력을 80년대 초에 5백만 톤 규모로 늘려 조선수출국으로서의 위치를 굳게 다진다.

다. 정유처리능력은 현재의 일산 39만 배럴에서 94만 배럴로 늘려 석유화학제품에 대한 국내 수요신장에 대비하는 것은 물론 석유화학 관련제품을 수출산업으로 육성한다.

라. 석유화학원료가 되는 에틸렌생산은 10만 톤에서 1980년대 초에 가서는 80만 톤 수준까지 끌어올린다.

마. 사회간접자본으로서 산업의 원동력인 발전능력은 현재의 394만kw에서 1천만kw로 늘린다.

바. 시멘트 산업은 연산 8백만 톤 시설규모를 1,600만 톤으로 배증시켜 80년대 초까지 지속적인 시설확장을 한다.

사. 자동차 생산은 연산 3만대 규모의 시설능력을 50만대 규모로 크게 확대함으로써 자동차의 완전한 국산화공급체제를 이룩하는 것은 물론 수출산업으로서 적극 육성한다.

아. 제2의 포항제철과 같은 제2의 종합제철공장 건설을 앞으로 추진하고 또 '대단위기계종합공업단지'와 같은 제2의 '종합화학공업단지'를 건설하며, 100만 톤급의 '대규모 조선소'를 앞으로 하나 내지 두개를 더 만든다. '대단위전자부속품생산단지'도 추진하고 있고, 마산에 있는 '수출자유지역'과 같은 단지를 앞으로 2-3개 더 만든다.


셋째, 이를 위한 중화학공업화의 대상은 전체 중화학공업으로 하되 철강, 조선, 기계, 전자, 화학, 비철금속공업 등 여섯 개 분야를 중심으로 한다.



중화학공업화 정책의 내용을 목표, 구체적 세부내용, 대상에서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목표는 1980년대 초 100억 달러의 수출목표를 달성하고 이를 위해 전체 수출상품 중에서 중화학제품의 비중을 50%를 넘게 한다.


둘째, 중화학공업화의 구체적인 세부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 제철분야는 현재의 1백만 톤 규모에서 10배를 늘려 1천만 톤 규모로 크게 확장한다.

나. 조선은 현재 25만 톤의 시설능력을 80년대 초에 5백만 톤 규모로 늘려 조선수출국으로서의 위치를 굳게 다진다.

다. 정유처리능력은 현재의 일산 39만 배럴에서 94만 배럴로 늘려 석유화학제품에 대한 국내 수요신장에 대비하는 것은 물론 석유화학 관련제품을 수출산업으로 육성한다.

라. 석유화학원료가 되는 에틸렌생산은 10만 톤에서 1980년대 초에 가서는 80만 톤 수준까지 끌어올린다.

마. 사회간접자본으로서 산업의 원동력인 발전능력은 현재의 394만kw에서 1천만kw로 늘린다.

바. 시멘트 산업은 연산 8백만 톤 시설규모를 1,600만 톤으로 배증시켜 80년대 초까지 지속적인 시설확장을 한다.

사. 자동차 생산은 연산 3만대 규모의 시설능력을 50만대 규모로 크게 확대함으로써 자동차의 완전한 국산화공급체제를 이룩하는 것은 물론 수출산업으로서 적극 육성한다.

아. 제2의 포항제철과 같은 제2의 종합제철공장 건설을 앞으로 추진하고 또 '대단위기계종합공업단지'와 같은 제2의 '종합화학공업단지'를 건설하며, 100만 톤급의 '대규모 조선소'를 앞으로 하나 내지 두개를 더 만든다. '대단위전자부속품생산단지'도 추진하고 있고, 마산에 있는 '수출자유지역'과 같은 단지를 앞으로 2-3개 더 만든다.


셋째, 이를 위한 중화학공업화의 대상은 전체 중화학공업으로 하되 철강, 조선, 기계, 전자, 화학, 비철금속공업 등 여섯 개 분야를 중심으로 한다.

참고자료

경제기획원,《개발연대의 경제정책》, 1982.

국무총리기획조정실,《화학공업의 오늘과 내일》, 1973

대통령비서실,《박정희대통령 연설문집》제10집(1973. 1-1973. 12).

동남지역공업단지관리공단,《중화학공업의 시작과 미래: 동남공단 20년사》, 1996.

오원철 <중화학공업화와 80년대의 미래상>, 1972.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 기획단,《한국공업화발전에 관한 조사연구, 제2권, 중화학공업정책사》, 1979.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 기획단,《한국공업화발전에 관한 조사연구(Ⅲ): 정책결정과정의 이면사》, 1979.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우리나라의 중화학공업화정책(해설)》, 1973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 기획단,《 <<중화학공업육성계획>>, 1973.

한국은행,《 <<1970-1986 국민계정>>, 1987.

집필자
박영구(부산외국어대학교 상경대학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07.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