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공부 장기수출계획(10개년 계획)
1972년 대통령 100억 달러 수출 청사진 발표
1970년 2월 상공부는 장기수출계획(10개년 계획) 작성에 착수하였다. 이 결과는 그 해 8월 수출확대회의에서 확정되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의 장기수출목표는 1976년 35억 달러, 1980년 53억 달러였다. 이것이 「상공부」에 의해 완성된 「중공업수출산업화 10개년계획」의 초안이었다. 그러나 1971년 이 수출목표는 첫 해부터 초과달성되었다. 이에 따라 상공부는 다시 1972년 16억 8,200만 달러 수출을 17억 5천만 달러 수출로 수정한 후 매년 조금씩 상향 수정하여 1980년 55억 달러 수출의 장기 수출계획을 1972년 2월 20일에 만들었다.
1972년 5월 30일 <수출확대진흥회의>가 끝나고 대통령은 100억 달러 수출을 간접적으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상공부의 장기수출계획은 다시 1980년 100억불 수출, 중공업 62.9억불 수출로 목표가 수정되었다. 이 계획은 1972년 10월 17일 10월 유신 발표에서 100억 달러 수출, 1인당 GNP 1,000달러 청사진으로 발표되었다. 상공부장관은 유신발표식 후 상공부로 돌아와 바로 서영철(徐英哲)상역차관보에 100억 달러 수출계획작성 진도가 어떻게 나가고 있는지 확인하였고 월말까지는 그 계획작성을 마치도록 지시하였다. 상공부가 계획을 작성하는데 있어 과거에는 전년 대비 증가률을 기준으로 장기수출계획을 수립했는데 이번에는 중화학공업 제품의 수출을 별도로 책정해야 했는데 그러자면 우선 중화학공업의 각 분야별 육성계획이 앞서 나와야 했다.
결국 상공부는 중화학공업계획이 없어 수출액을 산출할 수가 없었고 할 수 없이 전자제품, 선박, 철강제품, 기계류 등 4개 품목의 잠정 수출목표를 1976년 15억 달러, 1980년에 50억 달러가 된다고 가정했다. 그리고 1976년 46억 달러, 1980년에 100억 달러를 수출한다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1972년 11월 7일 <월간경제동향보고회의>에서 경제기획원은중화학공업 육성방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하였고 박정희대통령은 “연평균 25%의 수출증가를 계속하면 1980년에는 적어도 1백억 달러의 수출은 무난히 달성될 수 있고 1981년에는 국민소득을 1천 달러 수준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우리 경제의 장기전망을 제시하면서 이에 주력할 것을 지시했다. 1972년 12월 9일에는 상공부가 중화학공업 부문별 수출목표를 작성한 총 100억불 수출구조 시안을 만들었고 12월 28일 <수출진흥확대회의>에서 상공부의 「중공업수출산업화 10개년계획」이 보고되었다. 이는 이후 한국의 수출과중화학공업화 계획의 기본목표수치가 되었다.
상공부 중공업수출산업화 10개년 계획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공산품의 총수출 비율을 1976년 90.4%, 1980년대 93%로 한다.
둘째, 중화학제품의 공산품 수출내 비중을 1976년 44%,18억 3천만 달러, 1980년 60.5%,56억 3천만 달러로 계획한다.
셋째, 무역수지는 1976년 수출 46억 달러, 수입 44억 1,800만 달러로 균형수지를 이루고, 1980년 수출은 100억 달러, 수입은 85억 달러로 10억 달러 흑자를 목표로 한다.
박영구, <1970년대 중화학공업정책을 둘러싼 안정론과 성장론> 《한국경제와 세계화》한국경제연구학회 정기학술대회, 2006. 12, pp. 277-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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