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는 1944년 7월 미국 뉴햄프셔 브레튼우즈에서 열린 44개국 대표자들이 국제통화기금 협약에 근거하여 1945년 설립되어 1947년부터 업무를 개시하였다. 이 국제금융기구는 완전고용과 물가안정을 촉진하는 동시에 국제무역을 제한하지 않는 국제통화제도를 운영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설립되었다.현재 IMF는 2004년 기준으로 184개국을 회원국으로 하고 있으며 본부는 미국 워싱턴에 있다.
IMF는 세계무역의 안정된 확대를 통하여 회원국의 고용증대, 소득증가, 생산자원 개발에 기여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고 있는데, 환율정책과 외환제도에 대한 정책감시, 국제수지 조정자금의 지원, SDR(특별인출권)의 창출과 운용, 연구조사활동과 가맹국에 대한 정책자문 등을 주요업무로 하고 있다. IMF가 초기에는 금태환 가능한 달러를 중심으로 환율을 고정시키는 체제, 이른바 브레튼우즈체제를 유지하려고 하였으나, 미국의
우리나라는 휴전 이후 전재복구와 경제부흥을 위한 외국원조의 도입을 원활히 하고 주권국가로서 국제통화금융협력체제에 참여하기 위하여 1953년부터 국제통화기금과 국제부흥개발은행에의 가입을 추진하였다. 한국은행은 1953년 10월 IMF 및IBRD 가입을 건의하고 가입교섭을 시작하였다. 정부는 주미대사를 통해 1954년 4월 두 금융기구 가입 신청을 내고 심사를 거쳐
우리나라 정부와 한국은행은「국제통화기금과 국제부흥개발은행 가입조치에 관한 법률」에 의거하여
우리나라는 IMF/IBRD(World Bank) 합동연차총회에 참석하였는데, 1985년 10월에는 제40차 연차총회를 서울에서 개최하였다. 우리나라는 1956년 이후 대외지급에 대한 제한조치를 잠정적으로 취할 수 있는 IMF 결정문 제14조국으로 매년 IMF와 연례협의를 가지고 1978년 4월 이후에는 IMF 협정문 제4조에 의한 정례협의를 실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후반에 국제수지가 호전되어 IMF 제14조국에서 제8조국으로의 이행권고를 받아
IMF는 국제유동성의 부족과 대외준비자산의 확충을 위해 SDR을 창출하였는데, 우리나라도 1970~72년 중 2,220만SDR, 1979~81년 중 5,070만 SDR을 배분받았다. 1980년대 후반에 우리나라 국제수지가 호전되자 우리나라는 SDR지정계획 대상국에 포함되어 IMF 요청이 있을 경우 SDR을 수취하고 교환성 통화를 지급하여 왔다. 그러나 1990년대 우리나라 국제수지가 다시 악화됨에 따라 1992년 3월 SDR지정계획 대상국에서 제외되고 원화도 운용예산통화에서 제외되었다.
우리나라는 국제수지 적자의 원활한 보전을 위하여 IMF의 다양한 신용공여제도를 활용하여 왔다. 우리나라는 1965년부터 1987년까지 16회에 걸쳐 대기성차관협약을 체결하고 모두 25억 9천만 SDR을 인출하였다. 1980년대 중반 이후 국제수지 사정이 호전됨에 따라 1987년부터 IMF 신용인출을 중단하는 한편 리저브 트란세(Reserve Tranche) 인출잔액 9,450만 SDR을 전액 상환하였다. 그러나 1997년 외환사정이 다시 악화되고 국제금융시장에서 신인도가 하락하고 우리나라가 마침내 외환위기에 직면하자 IMF와 총 155억 SDR(약 210억 달러)의 대기성차관 협약을 체결하였다. 그리고 1999년 5월까지 크레딧트란세 44.6억 SDR, 보충준비금융(SRF) 99.5억 달러 등 총 114.1억 SDR을 인출하였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에 빠르게 벗어나고 국제수지도 개선됨에 따라 보충준비금융의 조기 상환에 들어갔다.
도충구·
이재기,《국제경제론》신론사, 2005
韓國銀行,《韓國의 金融·經濟年表(1945-2000)》, 2000
한국은행,《韓國銀行 50年史》,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