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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

경주관광종합계획수립및추진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경주는 신라 천년의 고도로 도처에 많은 역사적 유산이 잔재하고 있다. 그 중 지정 문화재로 지정된 것만도 118점, 비지정 문화재 161점 총 279점에 이른다. 이들 문화재 또는 사적은 문화재분포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토함산, 오릉, 무열왕릉, 김유신장군묘, 문무왕릉, 황룡사, 낭산, 금강산, 명활산, 남산 및 괘릉 제13개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경주는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동남쪽에 입지하고 있으나 예부터 문화의 통로로 요지였으며 경부고속도로와 국도 4호, 7호, 35호 및 지방도 5개 노선 그리고 동부 남부선 및 중앙선 철도가 연결되는 결절지점이다.
배경
1971년 6월 고 박정희 대통령이 포항제철소 고로 화입식에 참석했다가 상경 길에 경주에 들렀다. 경부 고속도로 개통으로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늘고 있다는 보고를 듣고 흐뭇했으나 눈에 띄는 고도 경주의 모습은 허물어져 가는 불탑과 방치된 불상, 관리되지 않은 고분군에서는 찬란했던 신라 천 년 역사의 향기를 느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날 경주에서 돌아온 박 대통령은 정소영 청와대 경제수석 비서관에게 친필로 경주개발의 방향을 제시하면서 지시가 내려진 것이 배경이 되었다.
경과
대통령의 지시가 내려진지 2개월만에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안)>이 완성돼 박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1971년 6월 12일 <경주종합개발계획>이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의장으로 발족하고, 1971년 6월 15일 실무작업반이 결성되어 본격적으로 착수하게 되었다. 이 계획에는 1972년부터 10년간세계은행차관 자금을 도입하는 등 228억원을 투자해 사적지구 정비와 보문지구 관광개발사업, 도시기반시설 및 환경정비 사업을 포함하고 있다. 경주개발의 기본방향은 웅대, 찬란, 정교, 활달, 진취, 여유, 우아, 유현의 감이 살아있도록 신라고도를 재현하는 데 있었다.

내용
해방 후 일본인이 물러간 뒤에도 불국사 주변에는 식당과 여관 및 기념품 가게가 늘어서서 영업을 계속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형성된 이러한 상가는 1971년 8월 13일에 확정된 <경주관광 종합개발계획>에 의한 사적지구 정비사업의 결과 현재의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이 사업의 기본 방향은 첫째, 경주시 일원의 유적지를 13개의 사적지구로 정리하여 종합적으로 복권·정화하고, 둘째, 사적지구와 함께 관광도시개발을 실시하고, 셋째 관광객의 급증에 대비한 관광객 수용시설 건립으로 되어 있다. 


1972년부터 79년까지 투입된 사업비 약 760억 원 가운데 사적지구 정비에는 전체의 8.4%인 약 63억 원이 투입되었다. 불국사 주변 개발은 관광도시 기반 및 환경정비 항목으로 되어 있는데 전체 예산의 32%인 약 243억 원이 이 항목의 각종 사업에 투입되었다. 


이 사업으로 경주의 모습은 새롭게 바뀌었으며 불국사와 그 주변도 완전히 새롭게 탈바꿈하였다. 기존의 상가 대신 새로운 상가가 조성되었고, 주차장과 호텔, 골프장 등도 갖추어져 명실상부한 국제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불국사 주변의 불국사 신택지(258,300㎡)는 제5종 미관지구로 지정되어 건축물의 담장과 문의 양식, 구조, 형태, 색채, 건축재료 등의 규제가 행해지고 있다. 그 결과 불국사 주변은 한옥풍의 철근콘크리트조 상가와 여관이 줄지어 늘어서 고도의 현대화된 모습을 구현하고 있다.
참고자료
최태광, 《관광경영학》백산출판사, 2000
이태희 외, <관광단지 개발사업 활성방안> 한국관광공사, 1993
관광개발계획단, <경주관광사업개발계획> 청와대, 1971
《매일신문》2006.10.14
집필자
류정아(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07.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