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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및지역개발

서울연구단지 발족(1971.4)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1972년「과학기술진흥법」 개정
배경

1970년대 들어서 창조적인 기술개발에 주력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고, 기초과학 연구활동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원하여 국내 과학자의 연구능력 배양할 수 있는 연구기반조성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따라서 정부는 여러 목적 및 기능의 연구기관을 한곳으로 모아 공동연구 또는 상호교류를 통해 상호간의 유기적 협력체제를 구성케 함으로써 인원과 시설을 공동으로 이용하는 한편 지적인 교류를 원활하게 함으로써 모든 연구기관의 연구효율을 높일 수 있도록 연구개발단지를 조성할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정부는 1971년 4월 홍릉에 있는 임업시험장에 약 50만㎡의 대지를 확보하고 서울연구개발단지를 조성하였다. 이 지역에는 이미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Korea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한국과학기술정보센터(KORSTIC, Korea Science and Technology Information Center)가 입지하고 있었고, 여기에 추가해서 한국과학원(KAIS, Korea Advanced Institute of Science)과 한국개발연구소(KID, Korea Institute for Development)가 건설되었다. 


그리고 공덕동에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소를 합친 5개 연구기관으로 서울연구개발단지가 형성되었다. 홍릉에 입지한 연구기관이 각 기관의 고유한 기능을 모아 하나의 종합연구개발시스템을 형성하고 능률적인 상호보완 및 협조체제를 이룩하므로서 이상적인 환경을 조성하였다.

내용

홍릉숲속 약 50만㎡의 대지에 5개의 연구 기관이 입지하여 이공계와 사회과학계의 박사 200여명의 과학촌을 이루게 되고, 이와 같은 두뇌집단들의 연구단지조성은 1)종합연구개발 시스템의 형성, 2)교육 훈련연구개발의 유기적 결합, 3)우수한 해외한국인 두뇌의 유치활동, 4)능률적인 상호보완 및 협조체제 달성, 5)연구시설 연구원 정보자료 등의 공동 활용, 그리고 6)훌륭한 환경조성으로 연구 의욕을 고취시켜 공업입국의 기틀을 마련하자는 데 있다.


기공된 3개 연구기관에는 모두 150억원을 들여 연구원과 공동시설 및 주택이 74년까지 각각 완공되고, 과학기술연구소, 과학 기술정보센터를 모두 합쳐 연구원 588명 보조원 724명 등 1,312명의 과학기술연구를 하게 되었다. 또한 서울연구개발단지는 회원 기관 상호간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공동대변인을 두고 단지소식을 알리는 뉴스레터를 격월간으로 4,300부를 발간하여 국내는 물론 미국 및 유럽 지역에 있는 우리 과학기술자들에게도 배포하였다. 


정부는 1974년 좀 더 큰 규모의 연구단지를 조성할 것을 계획하였고, 이는 당시 점차 늘어나는 수출과 제3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에 따른 중화학공업의 육성 및 발전을 위해 무엇보다도 고도의 전략산업기술의 연구와 개발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필요한 각종 산업기술개발연구소를 신설하는 한편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대규모 연구학원도시인 “대덕연구단지” 의 건설을 추진하였다.

참고자료

박종안, <서울연구개발단지 도서관의 상호협력 현황과 문제점에 관한 분석적 고찰,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논문>, 1975
서울특별시,《서울600년사》 (http://seoul600.visitseoul.net/)
한국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 (http://www.kofst.or.kr/) 

집필자
박은병(한남대학교 도시부동산학과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07.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