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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이원철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발생원인

이원철(李源喆, Lee Won Chul) 1896.8.19 ~ 1963.3.14
이원철은 ‘우리나라 최초의 이학박사’(1926년 미시간대학)로서 일제시대 민족적 자긍심을 널리 고취시켰으며,해방 이후 국립관상대 초대대장으로 우리나라 기상 및 천문조직의 창설과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우리나라 천문기상학의 개척자이다. 이러한 공적을 인정받아 2004년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이 설립될 때 이원철은 14명의 1차 헌정자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내용

가. 기본정보
이원철은 1896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1912년 오성학교를 졸업하고 선린상업학교를 거쳐 1915년 연희전문학교 수학 및 물리과에 1회로 입학했다. 1919년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모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다 선교사의 주선을 받아 미국 유학길에 올라 1921년 미국 앨비온대학에 입학했다. 1년만에 대학을 졸업하고 연희전문 교수였던 루퍼스가 천문학 교수로 있던 미시간대학으로 옮겨 본격적인 천문학 연구를 시작하여 1922년 이학석사를, 1926년 박사학위를 취득했는데, 한국인으로서는 첫 번째 이학박사였다. 귀국하여 연희전문의 교수가 되어 천문학 분야를 강의했으며, 1938년 동우회사건, 흥업구락부사건 등에 관련되어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해방이후 연희전문의 재건에 참여한 이원철은 관상감의 부활에 힘을 쏟아 1945년 군정청 학무국 기상과 과장이 되었고 조선총독부 기상대를 관상대로 재조직하여 자신이 관장을 맡았다. 그는 1961년까지 15년 이상 관상대의 대장으로 근무하면서 우리나라 기상 및 천문학과 관련된 인력을 키우고 제도를 확립하여 기상업무의 정착에 큰 공헌을 했다.


나. 주요 공적 1: 한국인 최초의 이학박사
이원철은 1926년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천문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한국인 최초의 이학박사로 이름을 올렸다. 당시 일제는 식민지에 대해 고급과학기술교육은 억제하는 정책을 폈기 때문에 한국인이 고등교육을 받고 최고 학위인 박사학위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당시에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이원철은 미국유학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며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30세의 젊은 나이에 연희전문의 교수가 됨으로써 식민지배를 받고 있던 민중들에게 우리 민족의 우수함을 보여주는 자랑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독수리자리 에타별에 대한 정교한 분광학적 관찰과 계산을 통해 그 별이 맥동변광성임으로 밝힌 것으로 당시에는 매우 앞서가는 주제였다. 이원철은 1926년 미국천문학회 36회 학술회의에서 박사학위 논문에서 얻어진 연구결과의 일부를 발표했는데, 이 논문의 초록은 Popular Astronomy 34권 10호(1926)에 수록되었으며, 전체박사학위 논문은 약간의 수정을 거쳐 “독수리자리 에타별의 대기의 운동”이라는 제목으로 Publications of the Observatory of the University of Michigan 4권 8호(1932)에 수록되었다.


다. 주요 공적 2: 연희전문의 운영과 발전에 기여
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연희전문의 교수가 된 이원철은 12년 동안 수학과 천문학을 강의하면서 수물과장과 학감을 역임하면서 연구대신 교육에 모든 정열을 쏟았다. 당시 국내의 여건에서는 미국에서 수행했던 연구를 계속할 수는 없었지만 우리나라 천문학 분야의 독보적인 존재로서 천문학을 뿌리내리기 위한 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대학뿐 아니라 YMCA의 대중 강연을 통해 천문학을 비롯한 과학을 널리 알리던 계몽가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라. 주요 공적 3: 국립관상대 초대대장
해방 이후 관상대의 복구를 주도한 이원철은 초대대장이 되어 우리나라 기상 및 천문조직의 창설과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관상대는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후 문교부 산하 국립관상대로 개칭되었고, 지방측후소(14개) 및 출장소(2개)를 세우는 등 기상행정조직의 틀을 갖추어 나갔으며, 기상기술원양성소를 통해 필요한 기상인력을 키워냈다. 이원철은 1961년 5월까지 무려 15년 이상 관상대의 대장으로 재직하면서 기상 및 천문과 관련된 인력을 키우고 제도를 확립하여 기상업무의 정착에 큰 공헌을 하여 우리나라 천문학과 기상학의 선구자로 활약했다. 연구여건이 뒷받침이 안되는 상황이었기에 과학자로서 그의 연구는 박사학위 논문 이후 계속되지 못했으나 교육을 통해 인력을 키워내고 기상업무체계를 구축한 그의 업적은 당시 한국에서는 매우 소중한 것이었다.

참고자료

한국과학문화재단〈헌정대상자에 관한 인물 및 자료 조사연구〉《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2003
김근배 외 《한국 과학기술 인물12인》해나무, 2005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홈페이지

집필자
문만용(서울대학교 강사, 과학사)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07.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