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전체메뉴 닫기

분야별 검색

  • Home
  • 기록물 열람
  • 통합검색
  • 분야별 검색

외교

전두환-나카소네 정상회담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출범 직후부터 대일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노력한 5공화국에서 한·일 정상회담은 3번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배경

내용

출범 직후부터 대일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노력한 5공화국에서 한·일 정상회담은 3번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첫 번째는, 1983년 1월 나카소네 총리의 방한을 실현시켜 양국 간 처음으로 공식 정상회담을 가진 것이었다. 두번째는 1984년 9월에 전두환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공식 방일하여 정상회담을 가졌다. 세번째는 1986년 아시안게임을 경축하기 위해 두 번째 방한한 나카소네 총리가 청와대를 방문하여 이루어졌다. 


나카소네 일본총리는 1983년 1월 11일 방한하여 11일과 12일 두 차례 전두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한·일 정상회담〉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의 공식적인 정상회담이었다. 나카소네 총리의 한국 방한은 1982년 11월말 취임 후 첫 외교방문이었다.


두 차례의 정상회담 후 발표된 공동성명은,〈전두환-나카소네 정상회담〉이 1965년의 국교정상화에 이어 “우호협력을 더욱 증진하기 위한 중요한 이정표”라고 규정하고 “상호신뢰와 호혜평등의 정신에 입각하여 양국간 선린우호 협력관계가 새로운 차원에서 발전되어야 할 것”이라고 천명하였다. 한.일 양국은 공동성명 제3항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공통의 이념을 추구하는 “인방(隣邦)”이라는 전제 아래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의 유지가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중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였다. 공동성명 제4항에서는 한·일 양국이 이 지역의 평화·안정·번영을 위하여 상호 노력할 것을 다짐하였다. 그리고 제8항에 일본의 경제협력 기본 방침 아래 가능한 협력할 의도가 있다고 밝혀, 양국 간에 2년여에 걸쳐서 현안이 되었던 경제협력 문제가 일단락되었다. 제9항은 양국 간의 산업기술협력의 확대에 합의하여, 일본의 선진기술을 동반자적 협력차원에서 이전하고 기술교류를 확대하기로 하였다. 공동성명 제11항은 양국 정상 간에 핫라인을 설치키로 합의하고, 12항에서는 나카소네 총리가 전두환 대통령의 방일을 초청하여 수락했다고 밝혔다. 


특히, 공동성명 제6항은 전두환 대통령이 호주·캐나다 총리와 인도네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서 제의한 태평양정상회담에 대하여 일본이 적극 호응한 것이었다. 양국 정상은 태평양지역 내 각국 간의 점증하는 상호 의존관계와 이 지역의 급속한 경제·사회적 발전에 유의하여 이들 각국 간의 협력관계를 증진시킬 필요와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같이하였다.


나카소네 총리의 방한초청 정상회담으로 한·일 간에 현안이었던 경제협력 문제가 정치적으로 타결되었다. 양 정상 간의 합의에 따라 1982년부터 7년에 걸쳐서 일본이 한국에 총 40억 달러 규모의 장기 저리 차관을 공여하기로 하였다. 이 가운데 18억 5천만 달러는 정부개발협력자금(ODA)으로, 나머지 21억 5천만달러는 수출입은행차관(JEXIM)으로 각각 제공하기로 하였다. 연차별 공여는 일본 예산의 단년제 원칙에 따라 매년 집행하기로 되었다.


두 번째〈전두환-나카소네 정상회담〉은 나카소네 총리가 방한 정상회담에 대한 화답으로 전두환 대통령의 방일 초청을 제의해 수락함으로써 이루어졌다. 1984년 9월 6일 전두환 대통령의 방일은, 한국의 국가 원수가 공식적으로는 최초로 일본을 방문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것은 전두환 대통령의 방일 중 히로히토 일본 천황이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해 공식으로 사과의 뜻을 표명하였다는 데에서도 그 상징적인 의미를 알 수 있다.


한·일 양국 정상은 6일 오후 4시 30분부터 1시간 35분 동안 영빈관에서 1차 회담을, 그리고 7일 오전 11시 일본 수상관저에서 2차 회담을 가졌다. 1차 정상회담은 60분간에 걸쳐서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와 세계정세에 관한 광범위한 의견이 교환되었다. 특히 이 회담에서는 한국이 추구하고 있는 남북한 당사자회담을 통한 한반도 긴장완화 방안에 일본이 거듭 지지하였다. 그리고 북한의 주요 동맹국들이 한국에 대해 상응한 문호개방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일본이 한국을 배제하고 북한과 일방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2차 정상회담〉은 1차 회담 때와는 달리 관계 장관들이 배석한 가운데 확대 정상회담으로 진행되었다. 2차 회담에서는 무역역조 시정문제와 기술이전문제 등 양국 간 경제협력문제와 재일한국인의 처우개선문제 등 실질적이고 쌍무적인 현안이 논의되었다. 양국 정상은 두 나라 경제의 균형적인 발전이 양국의 공동번영과 세계경제 발전에 기여한다는데 인식을 함께하였다. 그리하여 무역균형의 확대, 정부.민간 차원의 산업기술협력, 과학기술협력협정의 조기체결, 청소년 교류 확대 등에 관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개선한다는데 합의하였다. 특히 전두환 대통령이 제안한 재일동포의 법적지위문제와 관련하여 나카소네 총리는 우호적으로 응수하였다.


또한 양국 정상은 국가 관계에 정상 간의 유대 강화가 중요하다는데 뜻을 함께하였다. 나카소네총리는 처음으로 공식 방일한 전두환 대통령에 대하여 전대통령의 방일 마지막 날인 8일 낮 전대통령 내외를 초청하여 총리 가족들과 오찬을 나누었다. 총리가 공식적인 오찬에 이어 가족과 함께 개인적인 오찬을 베푼 것으로 흔치 않은 일이다. 또한 나카소네총리는 이례적으로 다시 영빈관까지 찾아와 전대통령에게 작별인사를 하였다.


이와 같이 한·일 양국 정상 간의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두 번째 정상회담의 결과는 8일 상오 공동성명으로 발표되었다. 그 가운데 특히 제3항 한·일 기조조항은 일본측에서 ‘한일 신시대 조항’이라고 칭할 정도로 함축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3항은 전두환 대통령의 방일을 한·일 양국 관계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양국이 성숙한 우방으로서 영원한 선린우호 협력관계를 구축해 나갈 것을 다짐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적지 않았던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무지가 전대통령의 방일로 상당히 개선되었다고 평가되었다.


양국 정상회담은 과거의 청산 위에 새로운 동반자 관계를 정립해 나가려는 양 국의 우호적인 자세를 잘 대변하였다. 먼저,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정세와 국제정세에 대해 두 정상은 거의 같은 인식을 공유하며 그 위에 양국 관계의 기조를 자유민주주의라는 공동의 가치추구와 성숙한 동반자관계의 정립에 두어 새로운 한·일관계의 미래를 구축할 것을 결의하였다. 특히 북한의 폭력주의를 비판하고, 일본이 한국과 협의 없이는 일방적인 대북조치를 취하지 않기로 선언하여 북한의 대일 접근 움직임에 쐐기를 박았다. 또한 양국 정상은 양국 간 현안으로 지적돼 왔던 재일동포의 법적지위 향상(공동성명 9항), 한국의 대일무역역조 개선(7항), 첨단기술 이저(7항), 문화교류(8항)문제 등에도 상당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2백 70억달러에 이르는 누적된 무역 역조 시정책의 하나로 한국 측이 제기한 산업기술 협력 확대문제를 타결하였고, 과학기술협력협정의 조속한 체결과 일본측 구매사절단의 한국 파견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합의를 도출하였다. 또한 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 향상문제를 공동성명의 독립조항으로 부각시켰다. 한반도 정세 인식에 관한 조항은 1983년 1월 나카소네 총리의 방한때 발표된 공동성명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직접 대화를 통한 한반도문제 해결과 남북한 유엔 공동가입에 대한 일본 측의 지지 표명이 추가되었다.


세 번째〈전두환-나카소네 정상회담〉은 1986년 서울에서 열린 제10회 아시안게임 개막식에 나카소네총리가 빈객으로 한국을 방문함으로써 이루어졌다. 1박2일 일정으로 9월 20일 방한한 나카소네총리는 21일 상오 청와대를 방문하여 1시간 30분 동안 정상회담을 가졌다. 단독회담을 통해 양국 정상은 소련의 적극적인 對 아시아·태평양 진출정책과 소련·북한 간의 군사협력에 따른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고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 유지를 위해 상호 긴밀히 협의해 가기로 합의하였다.


나카소네 총리는 재일한국인의 지문날인제도 개선문제와 관련한 법개정안을 차기 일본 국회에 제출하는 문제를 검토하도록 관계 장관에게 지시하였다고 밝혔다. 또한 종래 매 5년마다 실시하던 재일한국인의 지문 날인을 평생 한번만 하도록 하고 영주외국인 등록증을 카드화하여 간소화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양국 정상은 한·일 무역역조문제의 심각성을 공유하여, 일본이 對한 수입확대에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밖에도 나카소네 총리는 88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돕기 위해 재일한국인의 올림픽 기부금에 대한 면세조치를 약속하여 동구권 등 공산권 국가의 서울올림픽 참가를 지원하겠다는 대외적 협력의지에 상응한 대내적 지원의지를 표명하였다. 또한 양국 청소년 간의 교류를 촉진하는데 합의하여 5년간 5백명의 한국 청소년을 일본에 초청하기로 하였다. 다른 한편, 나카소네 총리는 후지오문부상 망언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였다.

참고자료

〈새로운 이웃관계의 개막〉《동아일보》, 1983.1.12 사설
《실록 제5공화국 (1)》《경향신문사》, 1987
김정원,《한국외교발전론》집문당, 1996
《한국외교 50년》외교통상부, 1999

집필자
성신여대 산학협력단(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등)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12. 09.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