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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중소기업

중화학공장건설계획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중화학공업육성시책〉
〈박정희 대통령 중화학공업화 정책선언〉

배경

대통령의 선언에 대한 실행계획으로 공업구조 개편과 산업 확대를 위해 산업기계, 조선 및 수송기계, 철강, 화학, 전자 등 중화학공업화의 주도산업육성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입지조건을 중심으로 〈중화학공장건설계획〉이 수립, 시행되었다.

내용

1. 철강공업
정부는 종합제철소 건설의 강력한 추진을 위하여 사업주체로 국영기업체 형태인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POSCO)를 설립하였고, 한일국교 정상화에 따른 청구권자금 73.7백만 불과 경제협력자금으로 수출입은행에서 50.0백만 불 공여의 차관협정이 체결되고, 일본의 야와타제철, 후지제철, 니혼강관 등 3사로부터 기술은 제공받음으로써 종합제철소 건설이 시작되었다. 1970년 4월 1일 조강 연산 103만톤 규모의 종합제철공장 건설에 착공하여 1973년 7월 3일 포항제철소 1기 설비가 준공되고, 1985년 12월 5일 광양제출소 건설에 착공하여 1987년 5월 7일 광양제철소 1기 설비가 준공되었으며 1992년 10월 2일 포항제철소 및 광양제출소 조강 연산 2,080만톤 규모가 종합 준공되었다.



2. 석유화학공업
1967년 7월 석유화학공업단지 건립 부지를 대한석유공사 울산정유공장 인접지로 선정하여 울산석유화학단지 조성계획과 부지매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으나, 외국투자가의 선정과 차관확보의 어려움으로 당초 계획된 폴리스틸렌, polyvinyl acetate(PVA), 에틸렌글리콜, 디메틸테레프탈레이트(DMT; dimethyl terephthalate) 등이 취소되고 아세트알데이드, 에탄올, 알킬벤젠, 폴리프로필렌, 스티렌부타디엔고무(SBR; styrene butadiene rubber) 등이 새로이 추가되는 등 계획자체가 수차례 수정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1968년 11월 공단부지 정지공사에 착수하여 1969년 12월 부지정지 공사가 완료되었으며, 1972년 10월 31일 울산석유화학단지가 합동 준공되었다. 


여천석유화학단지는 제7비료공장과 메탄올공장을 선발업종으로 지정하고 제7비료공장은 국영기업인 종합화학(주)의 자회사인 남해화학(주)을 설립해서 건설하며 메탄올공장은 한일합작회사로 설립된 민간회사 대성메탄올(주)로 하여금 건설토록 하고, 5만톤급 규모의 석유화학단지 전용부두, 공업용수 송수관로 공사, 130만평 규모의 대지조성 등 정부지원시설을 조기에 착공하여 1976년 11월 10일 합동기공식, 1980년 1월 29일 합동 준공되었다.



3. 기계공업
1973년 9윌 창원기계공업기지를 통해 기계공업을 체계적으로 진흥시키기 위하여, 창원기계공업기지가 대규모 주단조설비, 열처리시설, 제관설비, 기계가공설비, 엔진, 터빈, 발전기 제작설비 등을 갖추어 종합제철소, 원자력발전소를 비롯하여 석유화학공장과 시멘트공장, 건설 및 운반장비, 광산기계 등 모든 산업기계를 생산할 수 있도록 조성하고, 전후방 연관 산업시설을 하나의 단지에 클러스터화하여 기계공업 상호간의 시너지효과를 창출토록 하여 고부가가치의 정밀기계공업, 메카트로닉스(Mechatronics), 하이테크 (Hi-Tech)기계류를 생산할 수 있는 기초 인프라를 확보함과 동시에 방위산업 제품의 생산체제를 구축하도록 하여 중화학공업의 육성과 기계공업의 육성을 동시에 연계 육성할 계획으로, 공업단지와 배후도시의 조성계획을 각각 수립하였다.


공업단지는 단지를 구분하여 단계별로 조성하고 계획적으로 대단위 기계공장, 요소공장, 중소기업형 전문공장, 일반 및 자동차부품공장, 분야별 전문기계공장, 방산공장 등을 입주, 유치시키고, 산업기지개발공사가 단지조성을, 상공부가 설치한 기계공업공단이 단지관리와 공장유치를 맡아 1986년 총규모 2,854만 8,889㎡로 준공되었다.



4. 조선공업
1966년 대한조선공사가 자체기술로 건조한 2,600GT급 화물선이 최초로 미국선급협회(ABS)의 검사에 합격했으며, 1967년 바지선 30척을 베트남에 최초로 수출하고, 1969년 250GT 참치어선 20척을 대만에 수출하여 해외시장 개척의 계기를 마련하여 조선공업의 수출산업화를 위한 기반이 구축되었고, 세계적인 선박 대형화 추세에 따라 최소 10만톤급 이상의 선박건조능력을 갖춘 조선소 건설을 검토하여 제1단계로 1972년 8월까지 12,000DWT급 도크를 60,000DWT급 수리용 도크로 확장하고 기존선대 6,000DWT 2기를 60,000DWT급으로 확장키로 했으며, 2단계로 최대 250,000DWT급 도크를 건설할 계획을 수립하였다.


1973년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완공을 필두로 주요 대기업들이 대형 조선시설을 건설해 조선업에 참여함으로써 우리나라 조선은 후진성을 완전히 탈피하여 국제적 규모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1975년 수리조선 전문업체인 현대미포조선이 설립되었고, 1978년 대한조선공사가 옥포에 초대형 제1도크를 완공하였으며, 삼성그룹은 1977년에 우진조선소를 인수하여 1979년 제1도크를 완공하였다.



5. 전자공업
부품공장 건설을 통한 부품의 국산화를 위해서는 전자공업의 특성상 공장들이 한곳에 모여야 산업집적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전자공업 전문공단을 조성키로 하고 입지를 모색하여, 경부선과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고 내륙지역으로 창원, 포항과 삼각축을 형성할 수 있고, 연구개발에 필요한 인력이 구미, 대구 지역에 상주하고 있으며, 이미 단지가 조성되어 있어 손쉽게 전자공업단지로 변환, 조성할 수 있는 구미지역을 전자공업기지로 지정하여 전자공업을 중점육성하고, 반도체, 컴퓨터산업의 육성을 통한 고도의 정밀전자기기 생산체제를 갖추는 계획이 수립됨에 따라 구미단지가 전자공업단지로 특성화되었다. 1967년 9월 19일 건설이 시작되어 1971년 11월 제1공구 26만 평이 착공되어 1972년 5월 완공되었고, 이후 제2공구 60만 평, 제3공구 140만 평 등 총 200여만 평 규모의 구미전자공업단지가 1973년 10월 5월 완공되었다.

참고자료

한국형경제정책연구소,〈한국형 경제건설〉1권~7권, 2005
랜덤하우스중앙,〈최빈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한국경제정책 30년사》, 2006
산업연구원,〈한국의 산업정책〉, 1989
한국개발연구원, 《한국경제의 역사적 조명》, 1991
한국개발연구원, 《한국경제반세기》, 1995
한국개발연구원 (http://www.kdi.re.kr)
산업연구원 (http://www.kiet.re.kr)

집필자
이창운(한국산업기술평가원 선임연구원)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06.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