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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

서울올림픽대회

주제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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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배경

1979년 2월에 대한체육회장에 취임한 박종규는 1978년 제4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의 성공적인 개최에 힘입어 올림픽유치를 위해 스포츠외교력을 강화하고 전문위원실을 설치하는 등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했다. 먼저 대한체육회는 1979년 3월에 올림픽 유치 건의안을 문교부(현 문화체육관광부)에 제출하자 문교부(현 문화체육관광부)는 동년 8월에 ‘국민체육진흥심의위원회’에 상정했다. ‘국민체육진흥심의위원회’는 국민총화와 대 공산권 교류 및 대 북한우위 홍보를 위해 올림픽유치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전체회의에 회부해 1979년 9월 아시아경기대회와 올림픽대회의 유치계획을 의결했다. 그러나 1979년 10·26사태로 올림픽 유치운동을 주도한 박종규가 일선에서 물러남에 따라 올림픽 유치운동도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1980년에 제5공화국이 출범하자 대한체육회는 올림픽 유치계획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때전두환 전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이 결심해 국내외에 공표한 일은 별다른 이유 없이 변경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 역사적인 사업을 추진하지도 않고 처음부터 패배의식 속에서 물러나서는 안 된다’고 확고한 의지를 표명해 유치계획이 재추진되었다. 대한올림픽위원회는 정부의 올림픽 유치방침을 국제올림픽위원회에 보내고, 문교부(현 문화체육관광부)는 서울시와 대한체육회 관계자들과 올림픽 유치대책협의회를 구성해 올림픽유치신청서를 작성하고 예산확보 문제 등을 협의한 후 1981년 2월 26일에 올림픽 유치신청서를 국제올림픽위원회에 제출했다.

내용

1. 조직위원회의 구성
1981년 11월 2일에 재단법인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 발기인 총회가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되었다. 설립 당시의 임원은 위원장에 김용식(전 대한적십자사 총재), 부위원장에 박영수(전 서울시장) 외 4명, 집행위원에 김택수(전 국제올림픽위원) 외 5명, 위원에 김집(전 대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외 19명으로 구성하고 사무총장에 이원경을 지명, 추천했다. 국회는 1981년 12월 16일에「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 지원법」을 발의하고 12월 31일에 법률 제3535호로 이를 제정, 공포했다.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는 국제올림픽위원회를 비롯해 국제경기연맹 및 각국 국가올림픽위원회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대내적으로 체육부(현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한 행정부서, 정부 지원위원회, 대한체육회, 대한올림픽위원회, 서울시, 범민족올림픽추진중앙협의회 등과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구축했다.


2. 참가규모 및 운영
1976년 제21회 몬트리올올림픽대회 후 12년 만에 동서 양진영이 자리를 함께한 진정한 올림픽대회이며 인류대제전으로 펼쳐진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는 세계 최대 참가국(160개국), 세계최대 참가선수단 인원(13,600명)을 기록하면서 16일간 23개 정식종목, 3개 시범종목, 2개 전시종목에서 과거 어느 대회보다 수준 높고 치열한 경쟁을 보여주었다.
서울올림픽대회는 체제와 이념, 종교와 인종의 차이를 초월해 세계의 젊은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스포츠를 통한 친목과 우의를 다지고 궁극적으로 세계평화 건설에 이바지하는 것을 대회이념으로 삼았다. 대회이념은 ‘최다의 참가, 최상의 화합, 최고의 성과, 최적의 안전 및 봉사, 최대의 절약’을 목표로 내세워 대회운영의 묘를 추구했다.


3. 성과
서울올림픽은 체육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어 놓았다. 즉, 기존의 체육은 소수 엘리트선수들만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을 바꾸어 정치, 경제, 문화 등의 제반 사회적 영역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뿐만 아니라 체육이 건강 증진은 물론 보다 질 높은 삶에 끼치는 영향도 깊이 인식하게 되어 체육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동구의 공산권에 한국의 존재를 알리는 계기가 되어 헝가리와의 수교를 비롯해 유고슬라비아,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등 동구의 여러 나라들과 관계개선으로 이어지는 성과를 가져왔다. 또한 서울올림픽은 세계 각국의 언론들이 분단 상황, 개발도상국, 올림픽의 정치적 이용, 상업화 경향 등의 국내외적으로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서울올림픽을 대성공으로 이끌어낸 점을 평가해 한국의 발전상과 저력이 국제사회에서 확실한 자리를 잡는데 기여했다.

참고자료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요강》, 1989
체육청소년부장관,《체육청소년행정10년사》체육청소년부기획관리실, 1992
김경훈,《서울올림픽사 1권》국민체육진흥공단, 2000

집필자
손환(중앙대학교 체육교육과 부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06.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