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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체육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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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유형 행사/이벤트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배경

전국체육대회는 1920년 11월 4일부터 6일까지 경성에서 개최된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가 그 기원이다. 1919년 3·1 독립운동이 일어난 다음해인 1920년 7월 13일 조선체육회가 창립되어 그동안 산발적으로 행해져 오던 모든 경기를 조직적으로 지도, 육성할 수 있는 계기가 형성되어 그 첫 사업으로 시작된 것이 야구대회였다. 그리고 전조선야구대회로 시작된 전국체육대회는 축구, 정구, 육상, 빙상, 씨름, 수상, 역도, 농구, 권투대회 등 1933년까지 종목별로 개최되었다. 이후 1934년에는 축구, 야구, 농구, 육상, 정구 등 5개 종목의 경기를 통합한 조선체육회 창립 제15주년 기념 전조선종합경기대회를 개최했으며, 1935년에는 유도, 씨름, 역도, 검도 등의 경기를 추가한 9개 종목을 합쳐 10월 22일부터 5일간 대회를 개최했다. 또한 1937년에는 탁구, 권투, 수상 등 3종목을 추가해서 2개월에 걸쳐 대회를 개최했으나 이듬해 조선체육회의 해산으로 대회를 개최하지 못하고 말았다. 이 대회는 우리민족의 첫 종합경기대회로서 오늘날 전국체육대회의 효시이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자 체육인들은 조선체육동지회를 조직하여 제26회 전국체육대회를 10월 27일부터 5일간 자유해방경축전국종합경기대회라는 명칭으로 개최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더불어 제29회 대회부터 전국체육대회로 그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경기운영 방식도 기존의 자유참가 제도에서 시·도 대항제로 변경되었다. 따라서 정부수립과 함께 9개 시·도의 선수들이 각자 향토의 명예를 걸고 출전하는 본격적인 애국애향의 시대가 열렸다.

내용

1.지방순회 개최를 통한 지역사회 체육의 발전 마련
1957년 제38회 전국체육대회부터는 지방체육의 균형적 발전을 도모한다는 취지 아래 지방순회 개최의 원칙을 정하고 각 시·도에서 번갈아 개최하면서 전국체육대회는 지역사회의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다.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와 임원들이 10,000명을 넘으면서 이들을 위한 숙박시설과 경기장 마련 등 자연스럽게 지역사회가 새롭게 발전할 수 있는 계기로 이어졌다. 특히 전국체육대회의 지방순회 개최는 지역의 체육시설 확보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1965년에 제46회 개최지인 광주는 전국체육대회를 계기로 30,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주경기장과 10,000명 수용의 야구장을 마련했고, 광주공원에 3,000명 수용의 실내경기장도 마련했다. 인천의 경우 역시 1978년 제59회 대회를 계기로 전용경기장을 새로 마련했고, 대전도 1979년에 제60회 대회를 준비하면서 35,000명 수용의 주경기장과 전국 최대규모의 실내수영장을 마련했다. 그리고 1980년에 제61회 전국체육대회는 전라북도의 전주, 군산, 이리에서 분산 개최되어 지역체육 발전에 새로운 계기를 마련했다. 전주에는 30,000여 명 수용의 전주공설운동장이 만들어지고 군산에도 공설운동장이 만들어져 체육전북의 발전을 과시했다. 이러한 지역체육발전으로 인한 입지조건의 개선은 아시아경기대회와 올림픽대회의 유치를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2. 성화도입
1955년에 제36회 전국체육대회는 10월 15일부터 8일간 서울에서 개최되었는데, 이 대회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이상백의 제의로 성화가 도입되었다. 성화는 강화도 마니산 첨성단에서 채화해 10월 14일부터 37구간에 걸쳐 37명의 손에 운반되어 개회식 때 최종주자 손기정에 의해 성화대에 점화되면서 대회기간 중에 타올랐다. 성화 봉송은 전국체육대회에 대한 각 지역의 관심을 고조시키고 체육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높여 체육인구의 저변확대에 많은 역할을 했다.


3. 소년체육대회의 분리
1972년에 제53회 전국체육대회는 대회 역사상 하나의 분수령을 이루었다. 이때부터 소년체육대회를 분리, 개최했다. 대회분리의 기본취지는 소년들이 성인들의 그늘에서 경기 기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다는 점과 과열경쟁에 휘말려 체육교육적인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점 등을 고려했기 때문이었다.


4. 체육의 과학화
인천개항 100주년을 맞이하여 1983년에 인천에서 개최된 제64회 전국체육대회는 대회 역사상 처음으로 컴퓨터에 의해 각종 기록이 전산 처리되어 과학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리고 20세기를 마감하면서 1999년에 인천에서 개최된 제80회 대회는 황해로! 세계로! 미래로! 라는 대회구호가 상징하듯이 20세기 한국체육의 찬란한 발전상을 되돌아보고 21세기 한국체육의 비전을 제시하는 축제로 행해졌다. 이 대회에서는 처음으로 인터넷 홈페이지가 개설되어 일반인에게도 손쉽게 경기 정보가 제공되었다. 특히 대회기간 중에는 경기속보와 경기안내 등 대회의 모든 상황을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제공해 1일 평균 12,000명에게 각 경기장에서 진행 중인 경기상황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제공하기도 했다.

참고자료

민관식,《대한체육회사》대한체육회, 1965
이학래,《한국체육백년사》한국체육학회, 2000

집필자

손환(중앙대학교 체육교육과 부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06.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