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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해양수산

농업증산3개년계획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농업증산 3개년계획
배경

해방 이후 1940년대 후반 혼란기를 거치면서 농업생산을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으나 일본, 만주, 중국 등 해외로부터의 귀환동포와 북한으로부터의 월남동포로 남한의 인구가 급증한 가운데 원활한 농산물 수급 확보는 정치적, 사회적 안정을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의 하나였다.
때문에 건국 후 정부는 신생민국건설의 제1과업이 민생문제를 시급히 해결하는 데에 있고, 민생문제해결의 관건은 농업증산에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그 대책의 일환으로 농업증산 3개년계획(1949~1951)을 실시하였다.

내용

정부는 미곡과 맥류 증산을 중심으로 하는 농업증산 3개년계획을 수립하면서 먼저 다음과 같은 기본방침을 제시하였다.


① 당면한 식량문제해결을 위해 국민식량의 확보와 아울러 잉여식량을 국외에 점진적으로 수출하도록 한다.

② 곤경에 빠진 의류문제 해결을 위해 시급히 각종 농산의류원료를 증산하여 자급자족을 꾀하도록 한다.

③ 식량 및 의류원료의 증산을 꾀하기 위해 비료, 농약 및 농기구의 자급자족 태세를 확립하고, 자급태세가 확립될 동안은 잠정적으로 외국 우수품을 수입하는 등의 대비책을 강구한다.

④ 농가보존노동력을 완전히 활용하고 농가경제에 탄력성이 있도록 하기 위해 각종 특산물을 증산하여 외화획득 방법을 강구한다.

⑤ 농산물로서 공업원료가 되는 각종 자원은 증산 장려하여 공업진흥에 농업이 담당하고 있는 기본적인 역할을 완수하도록 한다.


이러한 기본방침 하에 수립된 농업증산 3개년계획은 1949년부터 1951년까지 3년간 식량과 의류의 자급자족 달성을 목표로 하는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 미곡, 맥류

계획 초년도에는 남한인구 1인당 1일 식량 소비량을 3합으로 계상하여 최소한도의 자급자족을 이루고, 제2차 연도에는 인구의 자연증가와 월남동포 및 해외 귀환동포로 인해 증가하는 식량수요 증가를 충족시킴과 더불어 전체적인 식량수급을 더욱 원활하게 하고, 제3차 연도에는 농가인구 1인당 1일 3합7작, 비농가 경근로자 1인당 1일 3합, 중노동자 1인당 1일 3합5작의 소비 외에 종자 및 특수가공용 원료와 수출용 잉여를 확보하는 것을 기본으로 미곡과 맥류 증산계획이 수립되었다.


미곡증산계획은 목표연도인 1951년의 목표생산량을 기준연도(1946~1948년 평균)보다 51.5% 늘어난 1,961만4천석으로 정하고, ① 개간, 간척, 경지정리를 통한 농지면적 확장과 ② 지목변경, 종자개량, 경종법 개선, 비료중시를 통해 단위 면적당 수량 증대를 도모하기로 하였다.


어려운 상황에서 시작된 증산계획은 금비 및 화학비료 확보, 농민들의 증산의욕 고취, 기후호조 등으로 기준연도에 비해 10% 이상 증수되었으나 계획에는 미치지 못하였고, 6.25전쟁이 터져 결국 증산시책은 실패하였다.


<미곡증산 3개년계획 및 실적 (단위 : (석), 톤, %)>

기준연도

계획량(A)

생산실적(B)

A/B×100

1949

(12,912,100)

1,871,132

(16,641,700)

2,411,841

2,121,656.5

88.0

1950

(12,912,100)

1,871,132

(18,986,300)

2,751,638

2,103,464.2

76.4

1951

(12,912,100)

1,871,132

(19,613,900)

2,842,594

1,634,292.1

57.5

자료 : 농림수산식품부《農林水産行政槪觀(1945-1965)》1966


맥류증산계획은 주로 경작면적 확장과 비료증산에 중점을 두어 1951년의 목표생산량을 기준연도보다 140% 늘어난 834만5천석으로 정하였다.


맥류도 미곡과 마찬가지로 1949년, 1950년에는 기준연도에 비해 생산이 늘어났으나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결국 6․25전쟁으로 계획은 실패하였다.


<맥류증산 3개년계획 및 실적 (단위 : 석, %)>

기준연도

계획량(A)

생산실적(B)

A/B×100

1949

3,441,700

5,278,200

5,054,807

95.7

1950

3,441,700

6,327,700

5,223,254

82.5

1951

3,441,700

8,334,800

3,043,370

36.5

자료 : 농림수산식품부《農林水産行政槪觀(1945-1965)》1966


나. 섬유작물

해방 전 1인당 평균의류원료 소비량은 면화가 8.2근, 대마가 1.1근이었는데, 해방 후 면화 4.5근, 대마 0.6근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이에 정부는 줄어든 의류원료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 1인당 평균의류원료 소비량을 면화 9.2근, 대마 0.9근을 목표로 하는 섬유작물증산 증산계획을 실시하였다.


이 밖에도 식량작물 및 섬유작물의 증산정책을 원활하게 지원하기 위해 비료․농약․농기구 등의 농용자재공급 3개년계획과 농가부업장려 3개년계획 등을 수립하였다.

참고자료

朝鮮銀行,《經濟年鑑》, 1949

農協中央會調査部,《韓國農政20年史》, 1965

農林部,《農林水産行政槪觀(1945-1965)》, 1966

農水産部,《韓國糧政史》, 1978

정황근,〈식량작물 증산정책〉(한국농촌경제연구원《한국농정50년사》제Ⅱ권, 농림부, 1999)

집필자
배민식(국회도서관 입법정보연구관)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07.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