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호안전보장법」(Matual Security Act of 1951)
「미국 농업교역발전 및 원조법」(Agricultural Trade Development and Assistance Act of 1954)
「잉여농산물협정」
미국의 잉여농산물 원조는 심각한 식량사정을 완화시키는데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저렴한 잉여농산물이 대량으로 도입되어 곡물가격이 크게 하락하였고 그로 인해 농가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으며, 밀, 면화 수입으로 해당 작목 재배가 큰 타격을 받아 결국 밀, 면화의 국내 생산이 붕괴되어 자급률이 급감하였다.
1.8·15해방 이후의 사회 혼란과6.25전쟁 등으로 인한 극심한 식량부족
2.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만성적인 농산물 과잉 문제 해결 및 신생독립국가들에 대한 선진국 독점 자본의 시장 확보
3. 사회주의 확장에 대한 대응 등을 배경으로 1945년 해방 이후 많은 잉여농산물의 수입
1946년 5월 미국 잉여농산물의 피점령지역 구호원조(Government and Relief in Occupied Area=GARIOA원조)라는 명목으로 시작된 잉여농산물 도입은한국전쟁 중은 물론이고 전쟁 후에도 여러 형태로 계속 되었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MSA 402조」와「PL 480호」에 근거한 미국잉여농산물 도입이다.
1.「MSA 402조」에 근거한 잉여농산물 도입
「MSA 402조」란 미국 상호안전보장법의 1954년 개정시 새로 삽입된 조항으로 402조에 근거하여 원조를 제공받는 국가가 원조액의 일정비율로 미국의 잉여농산물을 구매하도록 한 규정이다. 이에 한국도 1955년부터 MSA에 의한 원조를 받는 ICA(International Cooperation Administration) 원조액 중에서 약 20%를 잉여농산물 구매에 사용하도록 미국과 협정을 맺었다(실제는 약 23% 도입).
1955년~1960년까지「MSA 402조」에 근거한 잉여농산물 도입 내용을 보면 원면이 전체의 44%(1억4천7백만 달러)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고, 그 다음으로는 인견사 16%, 소맥 14%, 소모사 9%, 대맥 6%의 순이었다. 양곡보다는 원면을 비롯한 원료 농산물이 다량 도입된 것이 특징이었다. 잉여농산물 판매한 대금은 상호안전보장법의 취지에 부합되는 곳에 사용키로 되어 있어 대부분이 국방비로 전입되었다.「 MSA 402조」에 의한 잉여농산물 도입은 1961년에 종결되고 그 후 미국의 한국에 대한 잉여농산물 원조는「PL 480호」로 단일화 되었다.
2.PL 480호에 근거한 잉여농산물 도입
미국정부가 잉여농산물 재고 처리와 그것을 통한 대외군수물자 판매를 주목적으로 1954년 「농업교역발전 및 원조법」을 제정하였는데 이것이 일반적으로「PL(Public Law/ 미공법) 480호」라고 불리는 법률이고 이에 근거한 잉여농산물원조를「PL 480호」에 의한 잉여농산물 원조라고 한다. 한국은 미국과「PL 480호」에 의거하여 1955년부터 매년 초 「잉여농산물도입협정」을 체결하고 잉여농산물을 도입하였는데 협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미국정부는 협정에 의해 미국 잉여농산물을 한국정부가 승인한 구입인에게 현지 통화로 매도하는데 필요한 재화를 조달하며, 또한 협정된 금액에 따라 각 품목에 대한 구입승인서를 발행한다.
② 미국정부가 지불하는 잉여농산물의 달러대금과 해상운임 및 조작비의 달러대금에 해당하는 한국통화는 미국정부계정으로 한국은행에 예치한다.
③ 잉여농산물의 판매로 미국이 얻은 한국통화는 각 연도의 협정에 따라 일부는 잉여농산물을 위한 시장개척비 등으로 한국에서의 미국측 비용과 주한 미국기관 비용으로 충당하기 위해 미국정부가 사용하며, 나머지 금액은 공동방위를 위해 국방비로 한국정부가 사용한다.
「PL 480호」에 의한 원조는 1960년까지 무상원조 형식(제1관) 1억5천8백만 달러 이외에 제2관 1,200만 달러, 제3관 7,300만 달러, 총 2억4,300만 달러에 달하였다. PL 480호의 무상원조 형식에 의한 잉여농산물 도입(1955년~1960년)을 보면 소맥이 36%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은 대맥 17%, 쌀 17%, 원면 11%의 순이었다. 「MSA 402조」에 의한 원조와 달리 양곡 원조가 중심이었다. 1963년부터 무상원조 형식(제1관)보다는 장기차관 형식(제4관)으로 그 도입 방식이 바뀌었다.농산물 판매 대금은 규정에 따라 10%~20%는 미국이 사용하고, 나머지 80%~90%는 국방비에 전입되어 미국으로부터 군사물자를 구입하는데 충당되었다.
홍성유,《韓國經濟와 美國援助》박영사, 1962
장종익,《1950年代 美韓 剩餘農産物援助가 韓國農業에 미친 影響에 관한 硏究》연세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8
이호철,〈미국 잉여농산물 도입〉한국농촌경제연구원 편찬《농정반세기 증언》농림부, 1999
강만길,《고쳐 쓴 한국현대사》창비,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