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김영삼 대통령과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 사이의 북한 핵 위기에 대한 한미정상회담
김영삼 행정부 시기의 대북정책은 대체로 강경책과 온건책을 넘나들고 있었다. 특히 미국의 대북정책과 관련하여 김영삼 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에 대한 온건책을 추구할 때 국내정치를 의식하며 종종 강경책으로 급선회하였고, 미국이 북한에 대한 강경책을 시도할 때는 한반도에서의 전쟁방지라는 명분 하에 유화책으로 선회하기도 했다.
김영삼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은 여러 차례 이루어졌지만, 북한 핵 위기 당시 나타난 김영삼 행정부의 대표적인 대북 강경책의 모습은 1993년 11월 23일의 한미정상회담에서 잘 나타난다. 1993년 7월 14일 북한과 미국은 제네바에서 고위급 회담을 재개하여 7월 19일 제네바 선언문(Agreed Statement)을 발표하였다. 이 선언문에서 미국은 북한의 낡은 흑연감속로를 경수로로 교체하는 것에 동의하였으며,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와의 협의 하에 안전담보협정의 적용과 이행에 합의했다. 또한 북한의 강석주는 11월 11일 핵 문제를 상호간의 일괄타결하기를 제안했는데, 미국 역시 이러한 북한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고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당시의 핵 회담이 북미 양자사이에서 이루어지며 한국이 완전히 배제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한국이 북한 핵 문제 해결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고 미국에 주장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11월 23일의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 핵문제의 일괄타결에 반대하고, 북한 문제의 최종결정은 한국정부가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지 못할 경우 유엔의 제재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한국 정부는 또한북미 고위급 회담 이전에 남북한 특사교환이 이루어지고 남북관계의 개선이 우선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에 클린턴 행정부는 남북한 사이의 대화가 특사교환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고위급 회담을 재개하겠다고 북한에 제의했으나, 북한은 한국 정부의 영향력이 북미 고위급 회담에 미치는 것에 강력히 반발하였다.
이처럼 김영삼 행정부 시절 한국과 미국사이에는 대북정책에 대해 일정한 견해차가 있었는데, 미국이 대체로 북한과의 직접 협상을 통해 포용정책을 시도하려고 했던데 비해, 한국 정부는 북한과 미국 사이의 협상에 한국 정부가 배제되는 것을 비판하며 북한 핵 문제의 당사국으로서의 한국의 입장을 강화하려는 정책을 추진했다.
돈 오버도퍼(Don Oberdorfer), 《두개의 한국》 길산, 2003
Leon V. Sigal, 《Disarming Strangers: Nuclear Diplomacy with North Korea》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