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아·대양주 6개국 공식 순방 중인 첫 전두환 대통령의 살상을 기도한 북한의 폭파사건.
1983년 10월 9일 오전 10시 28분(한국 시간 낮 12시 58분) 전두환 대통령의 서남아·대양주 6개국 공식 순방 첫 방문국인 현재 미얀마(버마)의 아웅산 묘지에서 참배하던 전두환 대통령과 수행각료들의 살상을 기도한 폭파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으로 함께 배석하기 위해 도열중이던 핵심참모와 비공식 수행원 30여명이 사상하였다.
대통령이 입장하기 전에 폭탄이 터져 전두환 대통령은 무사했다. 대형 참사를 당한 전두환 대통령은 나머지 7개국 순방일정을 취소하고 10일 새벽 귀국하였다. 사고 이틀 뒤인 11일 현지에서 순직자 16위의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왔다. 13일에는 필리핀 주둔 클라크 미공군기지에 공수되어 치료를 받던 이기욱 재무부차관이 순국함으로써 순직자는 17명이 되었다. 유해는 13일 국민장으로 치러져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이사건으로 순직한 희생자는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장관, 김동휘 상공부장관, 서상철 동자부장관, 함병춘 대통령비설실장, 이계철 주버마대사, 김재익 경제수석비서관, 하동선 기획단장, 이기욱 재무부차관, 강인희 농수산부차관, 김용한 과학기술처차관, 심상우 의원, 민병석 주치의, 이재관 비서관, 이중현 동아일보 기자, 한경희 경호원, 정태진 경호원 등 모두 17명이다.
사건 직후 미국 정부는 와인버거 국방장관을 단장으로 한 이례적인 조문사절을 파견하였다. 정부는 국민장 직후, 14일 내각 개편을 통해 민심 수습을 도모하였다.
한국은 물론, 북한과도 수교국이던 미얀마 당국은 사건 발생 한달여 만인 11월 4일 최종 수사결과, 테러사건이 북한 특공대의 소행이라는 증거를 확보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김정일의 친필지령을 받은 북한군 정찰국 특공대 소속 진모(某) 소좌, 강민철 대위, 신기철 대위 등이 저지른 사건으로 밝혀졌다. 11월 4일 미얀마정부는 사건 발표와 동시에 북한과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양곤에 있는 북한대사관 직원들을 국외로 추방하였다. 범인들은 11월 22일부터 미얀마 특별법정에서 재판받아, 12월 9일 양곤지구 인민법원 제8 특별재판부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 사건으로 코스타리카,코모로,서사모아 등 3개국이 북한과 외교를 단절하였다. 미국 등 세계 69개국이 대북한 규탄성명을 발표하였다. 11월 13일 한국을 방문한 레이건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최전방을 시찰하는 등 한·미 공동 자유수호 결의를 재확인하였다.
미얀마의 우산유 대통령은 1987년 6월 8일부터 12일까지 5일간 한국을 방문하여, 1983년 ‘랭군 폭발테러사건’으로 희생된 유족과 한국정부에 애도와 위로의 뜻을 재삼 표명하였다. 그리고 북한의 만행으로 초래된 불행을 양국이 지혜롭게 극복해 상호 우호협력관계 증진의 계기로 삼게 된 데 만족을 표명하였다. 양국 정상은 남남협력정신에 따라 양국간 경제통상관계를 확대 심화시키기로 합의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양국간 교역의 확대 균형, 한국기업의 합작투자와 기술협력사업의 확대, 미얀마 근로자들의 한국 해외건설현장 취업 등을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하였다.
《실록 제5공화국 (1)》경향신문사, 1987
김정원,《한국외교발전론》집문당,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