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판문점 미루나무 절단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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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설명
발생원인
1976년 8월 발생한 ‘판문점 미루나무 절단사건’은 1970년대 후반 한반도의 불안정성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해방과 분단으로 등장한 대한민국 정부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상이한 정치·경제체제를 바탕으로 각각 독자적인 길을 걷고 있었다. 1950년대 초 3년 간의 한국전쟁으로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존재를 부정하고, 한반도에서 배타적 유일정부를 수립하려는 정책과 전략을 구사하고 있었다. 1970년대 초반 남과 북은 1인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는 독재체제를 탄생시켰고, 남북 사이의 긴장과 갈등은 증폭되고 있었다. 남북대화, 베트남의 통일, 박정희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 등을 거치면서 한반도의 적대의식은 높아만 갔고, 이러한 팽팽한 긴장이 판문점에서 벌목작업을 둘러싸고 충돌 사건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내용
1976년 8월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도끼만행사건’이 있었다. 이날 오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유엔군 제3초소 앞에서 한국인 노무자 5명이 미루나무 가지를 치고 있었다. 현장에는 미군 6명과 한국군 5명 등 11명의 유엔군 장병들이 호위하고 있었는데 이때 2명의 북한군 장교와 10여 명의 북한군이 다가와 “나뭇가지를 치지 말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미군 장교는 관측소의 시야 확보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며 이를 무시하고 작업을 진행했다. 이에 잠시 후 트럭을 타고 온 20여 명의 북한군이 곡괭이와 도끼 등을 휘둘러 미군 장교 보니파스 대위와 바레트 중위를 살해하고 나머지 9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뒤 초소를 부수고 도주하였다. 사건은 단 4분 만에 종료되어, 미군 기동타격대가 출동했을 때 북한군들은 이미군사분계선 너머로 철수한 뒤였다.
사건 직후 주한미군 사령관 리차드 스틸웰은 데프콘 3를 발동하고 미군 방송을 통한 임시발표에서 휴가 중이거나 부대를 떠나있는 전장병에게 즉시 부대복귀를 명령하였다.한국전쟁 이후 ‘데프콘 3’가 발령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북한의 김일성도 인민군과 로농적위대, 붉은청년근위대 등에 전시태세에 돌입하라는 명령을 하달하였다.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은 사건 보고를 받고 군사적 응징을 즉각 검토하도록 지시할 정도로 분노했다. 미국 행정부는 〈긴급 참모회의〉를 열고 문제가 된 미루나무를 제거하기로 결정하였다. 미루나무 절단 작전은 1976년 8월 21일 아침 7시에 이루어졌는데 미국은 사실상의 〈전쟁 계획〉의 일환으로 절단작전을 전개하였다. 미국 본토에서는 핵탑재가 가능한 F111 전투기 20대가 한반도에 배치되었고 괌에서는 B-52 폭격기 3대, 오키나와 미공군기지에서는 F4 24대가 한반도 상공을 선회하였다. 또한 함재기 65대를 탑재한 미 7함대 소속 항공모함 미드웨이호가 순양함 등 중무장한 5척의 호위함을 거느리고 동해를 북상하여 북한 해역으로 이동하였다. 미국은 교전상황에 대비해 구체적인 〈전쟁계획〉인 일명 〈우발계획〉까지 수립하였다. 미루나무 절단 작업 시 교전상태가 발생할 경우 한국군 포병과 미군 포병이 북한지역 개성의 인민군 막사와 개성 위쪽의 시변까지 포격하여 초토화하고, 인민군 포병부대를 궤멸시킨다는 것이었다. 또한 전쟁이 확대될 경우 개성과 연백평야에 대한 탈환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었으며 북한군의 전차부대가 남진할 경우 이에 대한 전술핵의 사용도 고려되었다. 핵전쟁까지 상정한 실질적인 〈전쟁계획〉이다.
8월 21일 오전 한국군 특공대원들이 공동경비구역으로 진입, 미루나무를 베어내는 미군 공병대원들을 엄호했다. 별다른 충돌 없이 작업은 40여분 걸려 끝났고, 즉시 북한은 미군 측에게 〈비밀회담〉을 요청했다. 회담에서 북한은 김일성의 ‘유감 표명’ 편지를 낭독하였고 위기상황은 해소되었다.
1992년 4월 평양방송은 김정일의 군사적 지도력을 선전하는 프로에서 1960년대 중반부터 군내에 영도체계를 확립해온 김정일이 적들을 수세와 궁지에 몰아넣곤 하였다고 선전하면서 1976년의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을 거론했다. 미루나무 사건을 김정일이 직접 지휘했음을 밝힌 것이다.
참고자료
돈 오버도퍼,〈두 개의 코리아〉《중앙일보》, 1998
집필자
성신여대 산학협력단(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