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8월 한국을 방문한 덜레스 미국 국무부장관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협상을 마친 후, 한국문제에 대해 보다 심도 있는 협의를 위해 이승만 대통령을 미국에 초청하기로 약속했었다. 1954년 6월 제네바 회담이 한반도 통일 문제에 대한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결렬되자, 미국은 약속대로 이승만 대통령을 초청했고, 이에 따라 이승만 대통령은 1954년 7월 워싱톤을 방문해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한·미정상회담〉에서 이승만은 중국의 공산화와 인도차이나에서의 공산주의의 승리, 그리고 베트남의 분할이 아시아와 남아메리카에 미칠 영향을 설명하면서, 평화적인 방법으로 한국의 통일을 실현해야 한다는 미국의 정책을 비판했다. 그리고 그는 전쟁의 재개를 통한 북진통일을 주장하고, 나아가 핵무기를 동원하는 세계대전의 발발 위험성이 없으면서도 한국의 통일을 가능하게 하는 방안도 있다고 말했다. 이승만의 주장에 대해 아이젠하워와 덜레스는 한국을 포함하는 분단국가들의 통일을 위해 미국이 전쟁에 개입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하였다. 덜레스는 분단국가의 고통을 제거하기 위한 고의적인 전쟁의 시작은 곧장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며, 그 결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이젠하워도 만약 전쟁이 시작되면 그것은 너무나 ‘끔찍한’ 전쟁이 될 것이며, 미소간의 핵전쟁은 인류문명 전체를 파괴할 만큼 상상을 초월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 재개를 계속 주장하였으며, 특히 7월 28일 미 의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제네바회의〉가 실패했기 때문에 휴전의 종결을 선언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한국군과 대만군, 그리고 미국 해군과 공군력을 동원한 연합공격으로 중국을 패배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한반도의 통일도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승만의 충격적인 연설은 오히려 미국의 여론을 악화시켰다.
통일문제와 함께 이승만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중요시한 주제는 한국군의 증강 문제였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수행인사 대부분을 군관계자로 구성할 만큼 이승만은 군사력 증강을 중요시했다. 한국측은 한국군을 30-40개 사단으로 증원하고, 철수하는 미군 4개 사단의 군사장비들을 한국군에게 이양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북침 가능성을 우려한 미국 측은 한국이 북한을 공격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무기를 제공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의 군사력 실태를 조사하고 돌아온 반 플리트(Van Fleet) 장군의 보고서는 한국의 군사력을 강화하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하였다. 반 플리트 장군은 미국 정부에 한국의 군사력을 10개 예비사단을 포함한 30개 사단으로 증강시켜야 하며, 해군, 공군 및 해병대를 현대화시켜야 한다고 권고하였다.
미국 정부는 이러한 권고안을 대폭 수용하여 7월 29일에 개최된 국가안보회의에서 한국에게 10개 예비사단을 추가로 신설하고, 그 중 4개 사단은 철수할 미군 4개 사단의 장비로 무장시키며, 두 척의 호위 구축함과 200대의 전투기의 추가 제공과 그리고 6개의 전투비행대대를 추가로 신설한다는 방침을 결정했다. 그리고 이 내용은 추후 실무협상을 거쳐 11월에 체결된 ‘한미합의의사록’에서 확정되었다.
차상철,《한미동맹 50년》 생각의 나무, 2004
Yong-Pyo Hong,《State Security and Regime Security: President Syngman Rhee andthe Insecurity Dilemma in South Korea, 1953-60》 Macmillan,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