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1995, 1996년 홍수와 1997년 가뭄을 겪었다. 다락논, 다락밭 등 식량 확보를 위한 마구잡이 경작지 개발과 땔감을 얻기 위한 산지 개간 및 벌목으로 인해 토양이 유실된 것이 홍수 피해를 부른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 같은 홍수와 가뭄으로 식량 생산량이 급격히 줄고 배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심각한 기근에 직면하였다. 취약 계층을 중심으로 아사자가 대거 발생해 적게는 50만 명에서부터 많게는 1백만 명 이상이 기아 또는 기아와 관련한 질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들은 먹는 문제 해결을 위해 근무지 이탈 및 허가 없는 여행을 감행하는 등 사회일탈행위가 늘어났고, 사적 경제 활동이 묵인되었다. 식량을 구하거나 생계를 잇기 위한 탈북 이 많았지만, 사회 혼란 속에서 각종 생계형 범죄나 비행을 저지른 사람들도 탈북 대열에 합류했다.
탈북 현지에서 장기간 생활하면서 한국 사회에 대한 정보를 접하게 되자 한국을 최종 목적지로 하는 탈북이 증가했고, 탈북자들의 신분도 외교관, 해외 무역 상사원, 노동자, 벌목공 등 다양해졌다. 중국에 탈북자가 가장 많았던 때는 북한의 식량난이 극심했던 1990년대 후반으로 많게는 30만 명까지 추산되기도 했다.
한국으로 입국한 북한이탈주민의 규모는 1993년까지 매년 10명 이하였다가 1994년부터 급증하여 1994년부터 1998년 까지 40명~85명으로 늘었고, 1999년부터는 전년도에 비해 두 배 이상씩 폭증해 2002년에는 1,000명을, 2006년에는 2,000명 수준을 넘어섰다. 2010년 12월까지 국내 입국 북한이탈주민은 총 20,360명이며, 여성의 입국비율이 늘어나 약 80%에 육박하고 있다.
북한이탈주민은 한국전쟁 이후 매년 10명 내외였으나, 1990년대 중반 이후 규모가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이 때부터 탈북의 성격도 정치적 망명에서 경제난민의 성격으로 점차 바뀌어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이탈주민들이 우리사회 일원으로 자립·자활 의지를 갖고 안정적으로 정착하도록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다양한 정책적 지원을 시행해 왔다.
정부는 북한이탈주민들이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자립 및 자활 의지를 갖고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나원’(정착지원시설)에서 정서안정, 문화적 이질감 해소, 경제적 자립에 중점을 두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사회 적응교육을 시키고 있다. 또한, 하나원 수료 후에는 거주지에서 정착 기본금과 장려금을 지원하고 취업지원, 교육지원, 의료지원을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정착보호담당관 및 정착도우미라는 민간 자원 봉사자,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과 지역 민간단체로부터 다양한 유형의 지원이 제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