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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중소기업

산업인력양성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직업훈련법」
1973년 3월 17일 대통령 지시사항
1973년 「중화학공업육성계획」
1973년 경제기획원의 「우리경제의 장기전망 1972-1981」
1973년 중화학공업 발전을 위한 공업기술계 인력공급 계획 및 공업교육개선방안 협의

 
「직업훈련특별법」
1990년 고등학교 교육체제 개혁안
1990년 산업인력 수급 대책
1992년 인력수급동향과 장단기대책
1995년 산업인력개발체제구축 추진계획

배경

20세기 후반 초기 공업화에서부터, 그리고 단축된 공업화를 이루어나가면서 한국이 가진 가장 중요한 비교우위 요소는 인력이었다. 또한 20세기 말 공업발전단계가 나아갈수록 기술우위의 인력은 산업경쟁력에 필수적이었다. 산업계의 수요에 맞는 산업인력의 양성이란 단기간에 이룩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정부는 공업발전단계에 따라 소요 산업인력을 사전에 예측하여 적기에 양성, 공급하는 것을 주요한 정책으로 계속 삼았다.

경과

1960년대 이후 산업인력양성은 안정적인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해 필수적이었다. 한국의 공업은 1960년대부터 섬유, 전자 등 노동집약적 부문을 우선 선택하는 것으로 하였지만 수출을 지향하고 있었기에 기술집약성을 동시에 가지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에 따라 한국공업화의 역사는 바로 산업인력양성의 역사였다. 특히 1970년대 들어 중화학공업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한국의 수출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산업인력양성은 국가의 주요한 과제로 등장했고 1980년대 후반 이후 산업별, 기술별 인력의 수급불균형의 문제가 확대되자 이에 대한 새로운 산업인력공급체제가 요청되었다. 또한 1990년대 중반에는WTO 체제와 함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고부가가치 선진국형 인력양성이 요구되었다.

내용

1967년 1월 「직업훈련법」으로 1973년까지 17만 191명의 기능공(훈련교사 포함)이 양성되었다. 1973년 중화학공업화선언과 함께 산업인력양성이 집중 검토되어 실시되었고 2월에는 직업훈련원이 설치되었다. 1973년 경제기획원은'우리경제의 장기전망 1972-1981'에서 과학기술계 인력을 1972년 550천 명에서 81년에는 2,376천 명으로 확충한다고 발표했고 9월 17일 정부는 중화학공업 발전을 위한 공업기술계 인력공급 계획 및 공업교육개선방안을 마련하였다. 1973년 10월에는 춘천 및 대구에 직업훈련원이 설치되었다. 그러나 정부의 인력양성정책에도 불구하고 1974년 과학기술처에서 기능인력의 수요를 예측한 결과 기능인력이 부족할 것이 다시 예측되자 「직업훈련특별법」이 1974년 12월 발효되어 500인 이상 고용 업체는 사내훈련을 받도록 하였다. 1975년 7월 공업진흥청은 노동청, 문교부, 과기처, 공업단지관리청, 한국정밀기계센터, 창원기계공업공단, 학계대표가 참석한 회의를 열고 창원기지내 교육기관 및 연구시험소를 직접 설치하도록 계획을 만들었다. 1975년 인천, 광주에 직업훈련원 설치 등 공공직업훈련소가 연차적으로 설립되었고 서울, 부산 등 대도시 지역에는 인정직업훈련소 설치가 인가되었다. 1977년부터는 사업내직업훈련을 상용직 300인 이상 규모사업체로 확대하고 사내훈련소를 만들지 못하면 직업훈련분담금을 내도록 규정하였다.

 

1970년대 정부의 기능인력 수급계획은 성공적이었다. 우수한 인력이 실업계와 공대로 가면서 산업인력양성에 성공하고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와 1970년대의 산업정책이 비판되고 산업인력양성이 인위적인 정책이라고 비판되면서 산업인력양성정책은 사라졌다. 그 결과 1980년대 말 제조업에서의 산업인력 부족이 산업계의 주요 문제로 되었다. 이에 따라 1990년 5월 문교부는 「고등학교 교육체제 개혁안」으로 실업계 교육을 다시 확대하였고 경제기획원은 1990년 7월 6일 「산업인력 수급 대책」을 발표하였다. 이는 공업계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기능인력 공급을 확대하고 이공대의 첨단산업관련학과 중심으로 정원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이어 1992년 3월 9일 보다 광범위하고 종합적인 장단기 대책을 포함하는 「인력수급동향과 장단기대책」이 발표되었고 1993년에는 외국인 산업연수생제도가 준비되어 다음 해부터 실시되었다. 1993년 말 우루과이라운드가 타결되면서 1994년부터 양적인 기능공 공급확대정책에 대한 전면적 수정이 이루어졌고 여기에 산업인력공급체계를 선진국형으로 바꾸기 위해 1995년 5월 18일 고기술인력공급정책으로의 전환을 목표로 하는 「산업인력개발체제구축 추진계획」이 발표되었다.

참고자료

경제기획원, <산업인력수급대책(안); 제조업부문의 인력난 타개방안> 《대한공업교육학회지》15-1, 1990. 6, pp. 104-114.
나상현,《국가인적자원개발기본계획》과학기술정책연구원, 2002. 4.
동남지역공업단지관리공단, <중화학공업의 시작과 미래>, 1996
이기호,《새 정부의 노동정책 방향》한국표준협회, 1998.
정병석, <산업인력 수급대책> 《나라경제》14, 국민경제교육연구소, 1992. 1, pp. 30-32.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 기획단,《중화학공업 추진현황》, 1979. 1.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 기획단,《한국공업화발전에 관한 조사연구, 제2권, 중화학공업정책사》, 1979.
통계청,《주요경제지표》, 1993.
한국개발연구원,《한국경제반세기 정책자료집》, 1995.
Planning Office, Heavy and Chemical Industry Promotion Counci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Heavy and Chemical Industry, 1976.

집필자
박영구(부산외국어대학교 상경대학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12. 1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