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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방재

구포역 무궁화호 열차 전복사고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발생원인

'구포역 무궁화 열차 전복사고'의 원인으로는 건설회사가 공사현장 부근에서 전력구 설치를 위하여 지하 굴착공사를 시작하면서 발생하였다. 문제의 전선지중화 공사는 한국전력이 고압선을 매설하는 공사로 도급을 받은 건설회사에서 폭약을 이용한 지하 발파작업을 하였다. 발파작업에 따른 진동으로 부근 주택이 피해를 입었고, 지하 굴착공사를 위한 지반강화 조치 등에 대한 안전대책을 마련하지 않아서 연약한 토사가 대량 유출되면서 연약한 지반이 침하되고 이로 인하여 선로를 달리던 열차가 전복된 사고이다. 사고의 직접원인은 터널굴착 도중 스며 나온 지하수를 뽑아내 철로지반지하에 동공이 생기면서 잦은 열차운행의 하중을 버티지 못하고 함몰되면서 일어난 것이다.

내용

93년 3월 28일 오후 5시 30분경 부산시 북구 덕천2동 빅토리아 호텔 뒤 덕천천 교량 2백여 미터 앞 경부선(구포역기점 서울방향 2.5km) 철로 지반이 침하되면서 이곳을 지나던 서울발 부산행 제117호 무궁화호열차 8량 가운데 기관차와 발전차, 객차 2량이 탈선해 깊이 5m, 너비 15m 가량의 무너진 구덩이에 전복되었다. 시속 85km로 사고지점 부근인 구포역 쪽으로 운행하던 중 사고지점 50여m 앞에서 철로 지반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것을 발견하고 급제동을 하였으나 철로가 깊이 5m 가량 내려앉으면서 기관차 머리가 먼저 흙속으로 전복되었고 연결된 발전차와 6호 5호 객차가 잇따라 탈선하면서 서로 충돌했다.


사고 소식을 접한 부산시, 철도청 그리고 경찰은 전직원을 비상소집하여 구포역에 사고수습대책본부를 설치, 부상자 후송 등 사고수습작업에 나섰다. 사고대책본부는 공무원과 군인, 경찰관, 소방관, 민방위 대원 등 1천 7백여명을 동원하여 복구작업을 하는 한편, 중상자들을 인근 병원에 분산, 치료를 받게 했다. 사고대책본부는 중간수사 결과로 “사고직전 발파작업으로 터널내에 용출수와 점토가 비스듬히 쏟아져내려 사고지점의 선로가 함몰된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부산열차 사고를 최대한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수습하기 위해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관계장관대책위원회’와 교통부의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각부처 차관보급을 위원으로 하는 ‘실무대책위원회’를 마련했다. 한국전력 사고대책반은 문제의 지하터널은 현상태로 방치할 경우 재붕괴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고 판단되어 이 터널을 폐쇄하였다.


‘구포역 무궁화호 열차 전복사로’로 인해 승객 6백 20여명을 태운 열차가 탈선, 73명이 숨지고 1백 7명이 부상하는 대형 참사였다.

참고자료

<차 틈새서 “살려달라”아비규환/구포역 열차 대참사 현장> 《동아일보》1993.03.29
<사망 모두 78명으로> 《동아일보》1993.3.30
신호창 <위기극복을 위한 PR전략> 현대사회연구소, 1994
정재우 <공공시설물 안전관리를 위한 정부 역할에 관한연구> 동의대 대학원, 2006

집필자
이주헌(중부대 토목공학과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07.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