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전체메뉴 닫기

분야별 검색

  • Home
  • 기록물 열람
  • 통합검색
  • 분야별 검색

보육/가족/여성

대한가족계획협회 창립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배경

우리나라에 가족계획사업은 1954년 미국인 선교사 죠지 워스(George Worth)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가족계획 계몽을 위해 《이상적 가정》과 《기독교와 인구문제》라는 책자를 발행하고 지방을 순시하면서 계몽강연을 했다. 그 뒤 에스터 레이드(Esther Laid) 등 많은 선교사들도 이 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선교사들의 활약이 있은 뒤 1958년 대한어머니회가 창립되면서 가족계획 계몽교육을 실시했고 서울대 부속병원산부인과에서도 가족계획 상담소를 설치하였다. 또한 정부 일각에서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이보다 앞서 해외 선진국에서 인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52년에 국제 가족계획 연맹을 발족시켰으며 미국에서도 인구협회를 설립하여 미국을 비롯한 내외 여러 나라의 가족계획사업을 지원하였다. 우리나라에도 1960년 10월에 국제 가족계획연맹 임원인 죠지 캐드버리가 서울에 와서 가족계획사업을 추진할 민간단체의 설립을 권유하였다. 만약 한국에서 가족계획협회를 설립하면 몇 해 동안 3천 불 내외의 운영자금을 지원할 것을 약속하였다. 이것이 가족계획협회의 창립계기가 된 것이다.

내용

1.추진과정
캐드 버리씨가 한국을 다녀간 후 양재모 교수를 중심으로 가족계획협회의 설립에 대한 준비가 본격화되었다. 1961년 3월 9일에 보건사회부 의정국장 실에서 9인 회합을 가졌고 3월 15일에 대한적십자사 회의실에서 각계 인사 26명이 참석한 가운데 발기인 모임을 열었다. 여기서 창립 준비 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의하고 그 준비 위원장에 양재모 교수가 선임되었다.


창립총회는 1961년 4월 1일에 대한적십자사 회의실에서 각계 대표 44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이날 창립총회에서 전문 38조와 부칙으로 된 정관을 통과시켰다. 이어 회원이 부담할 회비를 개인의 입회금 1천 원, 연회비 1천 원, 단체회원인 경우 입회금 1만 원, 연회비 1만 원으로 각각 결정하였다. 초대 회장에 전 보건사회부장관 나용균,부회장에 서울여대학장 고황경씨를 투표로 선출한 다음, 5인 전형위원회(양재모, 김학묵, 하상락, 황태식, 최성율)에 의해 20여명의 이사와 2명의 감사가 선임되었다.



창립된 지 불과 1개월 반 만에 군사혁명정부의 포고령에 따라 다른 사회단체와 함께 해체당하는 시련을 겪기도 했으나 그해 6월30일에 국제 가족계획 연맹의 정회원국으로 가입되어 국제기구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5.16 군사정변직후에 가족계획협회가 해체 당했기 때문에 국제 가족계획 연맹본부에 파견할 위원을 비공식적으로 선임하게 되었다. 이에 구 이사진들이 모여 가족계획협회의 재건총회를 개최하여 해산 당한 지 4개월 만에 정상적인 기능을 회복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관에 따라 1962년부터 지부조직에 착수했다. 1962년에 부산, 대구, 수원, 대전, 해남 등 5개 지부가 조직되어 활동하였으며 현재 서울특별시를 비롯하여 12개 지부를 유지하고 있다.


1989년 12월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 회원에 가입하였으며, 1994년 5월에는 교육부로부터 학교청소년 성교육 및 성상담교원연수기관으로 지정되었다. 1995년 1월에는 1975년에 설립된 대한불임시술협회를 흡수·통합하였으며, 1996년 7월 산하에 한국성문화연구소를 설립하였다. 2006년 1월 2일 인구보건복지협회로 명칭 변경하여 보다 폭넓은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2.추진사업

대한가족계획협회는 정관 제2조의 규정에 따라 가족계획을 지원 추진하여 모자보건을 증진시키고, 가족의 건강을 이룩함으로써 국민생활수준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나아가서는 전 국민에게 문화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건전하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영위하게 하며 아울러 국제 가족계획연맹의 일원으로서 인류평화 유지에 공헌함을 설립목적으로 내세우고 있다.1962년에 가족계획협회는 설립 초창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구정책과 관련된 사업을 전개해왔다.


1960년대에는 가족계획요원 및 시술의사 훈련, 각 시도에 가족계획 전담 직원 배치 세 자녀 갖기 운동을 실시해왔다. 1970년대에는 둘 낳기 운동, 인구증가율 1.5% 목표 설정, 모자보건법시행령 제정 공포에 따른 사업, 지역사회 중심 피임보급사업 등을 실시했다. 1980년대에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상담을 중점적인 사업으로 추진했다. 1990년에는 선천성대사이상 검사, 산모/신생아 도우미 교육, 학교청소년 성교육/성상담, 대한불임시술협회 흡수 통합 등 인구의 삶의 질 향상에 그 목적을 두고 사업을 해왔다. 2006년 현재 주요 사업에 모자보호사업, 청소년 사업, 불임대책사업, 고령화대책사업, 홍보사업, 자료개발사업, 교육연수사업, 국제협력사업, 성문화연구소 등이 있다.

참고자료

대한가족협회 《가협 30년사》 1991
인구보건복지협회 (http://www.ppfk.or.kr/work/work_health.asp)

집필자
장정순(숭실대학교 사회적기업가 아카데미 책임연구원)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06.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