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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해양수산

영일만 사방사업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사방사업법」

배경

경상북도 영일만 지구는 암석의 모암이 이암과 혈암층으로 되어있어 일단 황폐되면 복구가 어렵다. 그러므로 1970년이래 이 지역에 무려 50여회에 걸쳐 소규모의 사방사업을 시행한 바 있으나 복구에 실패하여 대면적의 집단 황폐지가 오랫동안 방치되어 왔다. 뿐만 아니라 산림황폐로 인한 토사의 유출로 형산강상류의 구하천, 곡강천, 광천 등의 하상이 높아지고 영일만이 퇴적 매몰되는 등 그 피해가 극심하였으며, 동시에 이들 하천유역의 농경지에도 한·수해가 거의 상습적으로 발생하여 막대한 피해를 가져왔다. 또한 이 지역은 국제항공로의 관문으로서도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1971년 9월 17일에 당시의 박정희 대통령이 이 지역 시찰 중에 복구를 명령하였다. (사진제공: 산림청)

영일지구 사방사업 기념탑

내용

1971년 11월부터 1972년 2월까지 산림청과 경상북도 관계자가 합동으로 1차 영일지구 산림복구계획을 수립하였는데, 이 계획은 2개년 간의 시험 및 실연기간을 거쳐 본 사업은 1976년까지 3개년에 완성하는 계획이었다. 이 계획에 따라 1972년 3월부터 임업시험장에서는 과거 일제때부터 이 지역에 실시되었던 사방사업의 실패요인을 조사분석하고 영일군 의창읍 대련동에서 이암층 지대의 식생피복을 위하여 각종 시험연구를 실시하였다. 즉 객토량시험, 임지비배, 등고선 구조공, 비료목 식재밀도, 식혈 크기 및 파종시험 등을 실시하였으며 이들 시험결과는 본사업의 성공에 크게 기여하였다. 


본 사업의 계획수립은 산림청과 경상북도가 합동으로 수립하였고, 사업실행은 영일과 의창 사방사업소를 신설하여 추진하였다. 


결국 영일지구 사방사업은 1972년의 실연사방을 거쳐 본격적인 사업은 1973년부터 시작하여 1977년까지 5개년간에 걸쳐 실행되었다. 이 지역은 이암층이라는 특수지질을 감안다량의 비료흙을 사용하는 개량공법을 적용하는 동시에 우량한 종자와 묘목을 선정하여 밀식하고 아울러 잡관목을 대량으로 이식하여 조기녹화를 시도하였다. 사방지 주변마을에 마을양묘를 장려하여 아까시 묘목생산으로 주민의 소득증대와 사업성과 거양에 기여하였다. 

 

표 1) 사방사업 실적 및 투자액 (단위: ha, 백만원)

연도

사업량

투자액

국고

지방비

주민

취로

합계
1973
1974
1975
1976
1977

4,538
627
1,299
971
719
922

3,828
357
675
722
863
1,211

2,851
346
598
644
504
759

931
11
59
78
331
452

36
-
18
-
18
-

10
-
-
-
10
-



표 2) 지역별 사업실적 총괄표

구분

영일

의창


나지사방
일반사방
특수사방
해안사방
야계사방

4,538
768
3,291
479
-
-

1,667
298
1,154
215
-
-

2,871
470
2,137
264
-
-

참고자료

산림청,《한국임정 50년사》 , 1997

집필자
김세빈(충남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14. 0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