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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원자력연구소 설립 (1959)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원자력법」 (제2장13조, 1958)

배경

1956년 2월 3일에 한국과 미국이 원자력의 비군사적 이용에 관한 협력을 체결함으로써 이후 한국에 원자력 기구 및 연구소가 생길 수 있는 시발점이 되었다. 1956년 3월 9일 대통령령 제1394호로 문교부 기술교육국에 원자력과가 신설되었고, 1958년 3월 11일에 원자력의 연구 개발 생산 이용과 관리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게 하기 위하여 대통령직속기관으로 원자력원을 두는 것을 골자로 하는「원자력법」이 법률 제483호로 공포되었다. 같은 해 10월 1일에는 원자력원 직제가 대통령령 1394호로 공포되었고, 마침내 1959년 1월 21일 원자력원이 창설되었다. 원자력원은 사무총국·원자력위원회 및 원자력연구소로 구성되었고, 1959년 3월 1일 원자력연구소가 개소했다.

내용

원자력연구소의 설립과 관련하여설립장소와 연구소에 설치될 원자로의 기종이 논란이 되었다. 장소와 관련해서는 군사기지 근처에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과 충주비료공장 부근에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안양 박달리 근처의 장소가 유력시되다가, 결국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부근의 장소로 결정이 내려졌다. 


도입될 원자로와 관련해서는 미국의 General Atomic, American Machine and Foundry, Atomics International Aerojet 3가지 회사의 원자로가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이 가운데 General Atomic의 TRIGA Mark-II가 선정되었다. 


1962년 연구용 원자로 TRIGA Mark-II가 원자력연구소에 설치됨으로써 이후 있었던 원자력 연구의 기반을 마련했다. TRIGA Mark-II의 이용은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의 기초과학 분야 뿐 아니라 원자로공학, 전자공학 등의 공학 분야를 비롯하여 보건물리학 분야, 방사선의학, 방사선농학 등과 같은 분야에도 기여했다. 1962년 11월 25일에는원자력연구소 내에 방사선의학연구실이 신설되었고, 1963년에는 독립적인 연구소인 방사선의학연구소로 승격되었다. 1965년 4월에는 연구소 내에 방사선농학연구실이 신설되었고 1966년 11월에 방사선농학연구소라는 독립 연구소로 발족했다.


1973년 원자력연구소는 방사선의학연구소, 방사선농학연구소와 통합되면서 특수법인체 한국원자력연구소로 발족했다. 이는 기존의 국립연구소 체제가 가지는 인사 직제, 예산 및 회계 등 체제와 운영 면에서의 여러 가지 불합리한 점을 해소하고 연구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한 여건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1976년 12월 1일에는 한국핵연료개발공단이 설립되었고, 1980년 12월 31일에“한국원자력연구소”로 흡수 통합되었다. 이 때 통합 기관의 명칭은 한국에너지연구소였으며, 1989년 12월 30일에 다시 한국원자력연구소로 명칭이 환원되었다.

참고자료

원자력청,《원자력청10년사》원자력청, 1969
한국원자력연구소,《한국원자력20년사》한국원자력연구소, 1979
한국원자력연구소,《한국원자력연구소삼십년사》한국원자력연구소, 1990
한국원자력연구소,《한국원자력연구소40년사》한국원자력연구소, 2001

집필자
문만용(서울대학교 강사·과학사)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06.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