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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정부출연연구소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근거

「특정연구기관육성법」

배경

196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분야 연구소는 국공립기관이 연구기관의 수·인적자원·예산 등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공립연구기관은 제한된 예산과 낙후된 시설 속에서 시험 및 조사 활동을 주된 임무로 삼았기 때문에 일부를 제외하고는 연구활동이 활발하지 못했으며, 인사와 회계 등 연구기관의 운영에 많은 제약이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고자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는 민간재단법인 형태를 갖추고 정부의 재정지원에 힘입어 훌륭한 시설과 연구인력을 갖추고 높은 연구실적을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첫 번째 정부출연연구소인 KIST의 성공에 고무된 정부는 1970년대 들어 KIST를 모델로 하여 분야별로 전문연구소를 설립하는 정책을 추진했으며, 그에 따라 연이어 설립된 정부출연연구소는 1970년대 우리나라 과학기술을 주도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처럼 우리나라 과학관련 연구기관의 독특한 성격 중 하나가 정부출연연구소의 존재라고 할 수 있으며, 1980년대 이후 그 비중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국가의 전체적인 연구개발체제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내용

1. 정부출연연구소 등장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아 설립되고 운영과정에서도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지만 KIST는 국공립기관이 아닌 비영리 재단법인으로 설립되었다. 이는 인사와 회계 등에서 연구기관에 맞는 자율적인 운영을 하기 위해서였으며, 정부의 재정지원이 까다로운 관리를 받아야하는 보조금이 아닌 출연금으로 규정됨에 따라 정부출연연구소라는 독특한 연구기관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후 무기 개발을 추진하기 위해 1970년 설립된 국방과학연구소나 고급과학기술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1971년 설립된 한국과학원도 KIST와 동일한 법적형태를 갖추게 되었으며, 이 기관들은 모두 독립적인 육성법의 갖게 되었다.


2. 정부출연연구소의 확산

1973년 정부가 중화학공업화를 선언하고, 대덕에 연구학원도시 건설을 추진하면서 분야별로 정부출연연구소들을 설립하기로 함에 따라 KIST를 모델로 한 정부출연연구소 체제가 크게 확산되었다. 정부는 이를 위해 「특정연구기관육성법」을 제정함으로써 기관마다 별도의 육성법 없이도 KIST와 유사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각 부처별로 경쟁적으로 연구소 설립을 추진하여 1980년에는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소가 모두 19개에 이르렀다.


3. 정부출연연구소 구조조정 및 역할 변화

정부출연연구소가 확산되면서 운영상 문제점이 노정됨에 따라 1980년 후반 연구소의 통폐합이 추진되어 9개 연구소로 조정되었다. 그러나 정부출연연구소 개편작업이 운영 효율에만 치중하여 연구소의 임무나 역할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1983년부터 국가전체의 연구개발투자에서 민간의 몫이 정부의 몫을 넘어서면서 민간의 비중이 커져갔고, 그와 함께 기업들의 연구개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대학의 연구개발능력이 점차 커져가면서 정부출연연구소는 이들 주체와 구별되는 독자적인 역할정립 요구를 받게 되었다. 이 시기부터 특정연구개발사업을 비롯한 국가연구개발사업이 추진되면서 정부출연연구소가 중심적 역할을 맡았지만 여전히 정부출연연구소의 임무에 대한 논란이 사라지지 않아 1980년대 후반 역할재정립이 추진되었고, 1990년대 정부출연연구소는 미래지향적 대형첨단기술개발 사업에 주력하는 것으로 임무가 새롭게 규정되었다.

참고자료

과학기술처·과학기술정책관리연구소, 《과학기술처 출연연구기관 백서》, 1998
과학기술처,《과학기술 30년사》, 1997
과학기술처/과학기술부,《과학기술연감》, 각 연도

집필자
문만용(서울대학교 강사·과학사)
최초 주제 집필
2006.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06.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