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운동은 교육주체들의 교육문제에 관한 의도적이고 지속적이며 집단적인 노력 혹은 교육문제에 관한 사회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교육운동은 일제시대 민족독립을 목표로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는데, 사립학교의 항일교육운동, 서당개량이나 야학과 같은 민중교육운동, 교육진흥운동, 교원노동조합운동, 학생운동, 국외에서의 민족교육운동 등이 대표적이다.
3·1운동 이후 노동자와 농민을 대상으로 한 야학이 전국적으로 융성하였는데 1931년경 약 2,345개의 야학이 있었다. 야학에서는 주로 보통학교 교육의 기회를 갖지 못한 아동과 성인을 대상으로 조선어, 한문, 산술 등의 기본 교과목을 가르쳤다. 그리고 야학 교사의 특성에 따라 조선역사, 창가, 지리 등의 교수를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기도 하고, 시사 문제를 토론하고 노동독본을 읽는 등 사회의식을 깨우치기 위한 교육활동도 전개되었다.
일한병합 이후 해외로 이주한 동포들 역시 교육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고자 하였는데, 간도에 설립된 서전서숙은 신학문의 교육을 통해 반일 독립의 인재를 양성하였다. 서전서숙외에도 간도지방에는 1910년대 후반 약 160여개 학교에서 약 4천명 이상의 학생들이 국어, 국문법, 역사, 지리 과목의 수업과 창가, 악대, 체조, 교련 등의 활동을 통해 애국심 함양의 교육을 받고 있었다. 연해주와 미국에서도 교육단체가 설립되어 민족교육의 실시를 통해 독립을 준비하고 있었다.
1920년대 후반 도입된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1930년대 들어서면 교육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면서 자본주의 교육을 비판하고 계급해방과 민족해방을 위한 교육운동을 전개하려는 새로운 흐름이 나타난다. 이런 경향은 사회운동이나 민중운동이 흐름과 결부되면서 학생운동, 교사운동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즉 교육운동이 사상적으로 분화되면서 전개되기 시작했다.
1930년대 학생운동은 1920년대 성행했던 동맹휴학이나 대중적인 시위의 방법보다는 학생운동의 침체기 속에서 사회운동단체와 연대하여 소규모의 비밀 조직활동을 전개했고 이를 통해 민족해방운동가로 성장해나갔다. 교원들은 당시의 적색노조운동에 부응하여 노동자로서의 지위와 역할을 강조하며 노동조합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일제시대 끊임없는 교육운동의 전개에도 불구하고 1930년대 이후 민족운동의 큰 줄기를 형성하거나 나아가 식민지 교육지배 질서를 바꾸는데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했다.
한국교육연구소 편, <한국교육사:근·현대편> 풀빛,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