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경제협력기금법」, (
「한국국제협력단법」, (1991)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에 즈음하여 외채 감축과 국제수지 흑자의 실현으로 우리나라의 개발도상국에 대한 경제지원이 본격화되었다. 우리나라 경제규모 증가와 국제무대에서의 위상 제고로 그에 상응하는 국제적 책임 수행이 요청되었던 것이다. 대외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수출증진 및 우리기업의 진출기반 마련을 위해서도 공적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등의 증대를 통하여 개발도상국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할 필요성이 증대되었다.
이에 따라 1987년 7월에 개도국에 대한 유상원조(soft loan)를 담당하는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Economic Development Cooperation Fund)이 설립되었으며, 1991년 4월에는 무상원조(grant)를 담당하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이 설립되어 우리나라 공적개발원조 시스템의 양대 축을 구성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6.25 전쟁 이후 개발도상국의 경제 및 사회개발 원조를 위하여 설립된 UN의 기술원조처(UNTAB: United Nations Technical Assistance Board) 및 UN 특별기금(UNSF: United Nations Special Fund)의 기술 및 인적자원 개발 원조를 시작으로 전후 복구와 경제성장 초기단계에서 미국 등 선진국과 UN을 위시한 국제기구로부터 많은 원조를 받았다. 이러한 원조는 우리나라의 부족한 물자와 자원을 보충해 주고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본의 축적을 가능하게 하는 등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경제성장과 더불어 우리나라는 원조 수혜국에서 경제원조 제공국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원조 공여국으로의 역사는 1963년 미국 국제개발청(USAID: United State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원조자금에 의한 개발도상국 연수생 위탁훈련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1965년부터 우리 정부의 자금으로 개발도상국 훈련생 초청사업을 시작하였고 1967년에는 전문가 해외 파견이 시작되었다.
1970년대 중반까지는 주로 유엔기구나 미국 등의 자금을 지원받아 개발 원조를 실시하였으나 개발도상국의 원조 수요가 매년 증가됨에 따라 우리 정부의 자금에 의한 원조규모를 점차 확대하였다. 1977년 110만 달러의 우리나라 기자재를 개도국에 공여함으로써 물자지원 사업이 시작되었다. 1982년부터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개도국의 주요 인사를 초청하여 우리의 개발경험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는 국제개발연찬사업(IDEP)을 시작하였다. 또한1984년에는 건설부에서 현재의 개발조사사업에 해당하는 무상건설기술 용역사업을, 노동부에서는 직업훈련원 설립지원 사업을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개발도상국 경제지원이 이루어진 시기는 1980년대 중반 이후이다. 1980년대 중반 이후의 무역수지 흑자 기조 정착에 따라 공적개발원조(ODA) 공여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공적개발원조 논의는 경제력 향상을 국제사회에서의 지위 향상과 이미지 개선으로 승화시키고 경제개발 과정에서 받은 원조를 국제사회에 환원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또한 국제적으로는 개발도상국 간의 상호보완적 경제협력의 필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1986년에는 개발도상국의 경제 및 사회개발 지원기구인 유엔개발회의(UNDP: 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의 이사국에 선출되었다. 또한, UNDP, 유엔공업개발기구(UNIDO: United Nations Industrial Development Organization), 유엔식량농업기구(FAO: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등과 협력기금 및 신탁기금을 설치하여 개발도상국에 재정지원을 하였으며, 그간의 경제개발 경험을 개발도상국과 공유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쳐 나갔다.
1987년에는 한국수출입은행을 통하여 개도국에 대한 양허성 차관을 지원하고자 300억 원을 출연하여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조성하였는데, 이는 유상 개발원조의 본격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어서 1991년에는 무상원조 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설립으로 그 동안 건설부, 과학기술처 등 각 부처에서 산발적으로 실시해 오던 기술협력, 인적교류사업 등을 통합하여 관리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ODA 규모의 꾸준한 증가에도 불구하고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평균에 크게 못 미치고 있는 현실이다. 국민총소득(GNI) 대비 대외원조 비율이 1995년 0.02%에서 2005년에 0.094%로 급상승했으나 유엔(UN) 권고치인 0.7%와 OECD의 개발원조위원회(DAC: 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 회원국의 2005년 평균치 0.25%를 크게 밑돌았다. 정부는 EDCF를 포함한 총 ODA의 국민총소득 대비 비율을 2009년까지 0.1%로 인상하고, 2015년까지는 OECD의 DAC 회원국 평균 수준인 0.25%까지 상승시킬 계획이다. 또한2010년 DAC 가입을 목표로 설정하였다.
외교통상부 홈페이지(http://www.odakorea.go.kr)
재정경제부, 〈2007년 EDCF 운용계획 및 주요제도 개선방안〉, 2007.2
재정경제부․한국수출입은행, 《EDCF 20년사》, 2007.7
한국개발연구원, 《한국경제 반세기 정책자료집》, 1995
한국국제협력단 홈페이지(http://www.koic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