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년 9월 18일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노량진-제물포) 33.2㎞이 개통되었다. 이는 1825년 9월 세계 최초로 영국에서 철도가 개통된 지 74년만의 일이었다. 우리나라 철도 부설의 계기는 1889년 주미대리공사였던 이하영(1858-1919)이 미국에서 귀국하면서, 철도 모형을 가져온 것이었다. 1869년 미국인 제임스 모스(James. R. Morse)가 고종으로부터 경인 철도부설권을 받아 미국인 타운센드와 함께 한국개발공사를 설립했으나 자금난에 봉착해 1898년 12월 일본인의 경인철도인수조합으로 넘기게 되었다.
1897년 3월 22일 인천 우각현에서 착공하였다. 1899년 개통 당시 운행차량은 모갈탱크형 증기기관차 였고 운행속도는 20-22㎞/h 였다. 보유차량은 증기기관차 4대, 객차 6량, 화차 28량 이었고, 운행횟수는 1일 2왕복(4회), 운행시간은 1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당시 정부의 소관부서는 1899년 9월 설치된 궁내부 서북철도국이였다.
처음으로 철도부설권을 획득했던 모스는 일본에 체류 중 1891년 우리나라 통정대부가 되고 대변조선상무위원에 임명되어 미국 뉴욕에 특파되었다. 주미 참찬관으로 있던 이완용을 설득하여 고종의 허락을 얻어 우리나라에 철도부설을 하려고 입국했다. 주한미국공사와의 막후 교섭으로 이완용과 「철도창조조약」을 체결했으나 당시 조약에 이를 반대하는 세력이 커서 고종은 이완용에게 철로개변회담을 중지하게 했다. 이렇게 되자 모스는 왕복 여비와 기타조로 은 1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였으나 우리나라에 이 보상 능력이 없어 다시 1896년 경인철도 부설권을 획득하고 이어 운산금광채국권을 획득했다. 이듬해 3월 22일 인천 우각현에서 경인철도의 기공식을 거행하고 본국에 돌아가 자금을 조달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자 일본인의 경인철도인수조합에 부설권을 양도하였다.
경인선(노량진-제물포) 개통은 한국 최초의 근대적 교통기관의 도입이라는 의의와 함께, 일본의 제국주의가 본격적으로 침투하게 되는 시기와 겹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