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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

장서각도서관 설립

주제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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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배경
장서각은 국가의 서적을 보관·관리하는 왕실의 도서관으로 1908년 고종이 건립계획을 추진하였으나 한일합방으로 일시 중단되었다. 이어 조선총독부의 황실령 제34호에 따라 황실의 사무를 관장하는 이왕직관제가 제정된 후, 1911년 1월 9일에는 이왕직도서과(李王職圖書課)로 3월 30일에는 조선총독부 취조국(取調局)으로 6월 19일에는 이왕직장서각으로 왕실 관련 도서들이 이관되면서 구체적인 형태가 갖추어졌다.


황실도서관(皇室圖書館)으로서 장서각을 건립하려던 고종의 계획은 일시에 이왕직 안의 도서과로 축소되어 버렸으나 규장각 및 사고의 서적은 모두 황실령에 따라 이왕직 도서과에서 관장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인계된 내역을 살펴보면 도서가 5,355종 10만 187책이며, 기록류가 1만 1,730책, 주자(鑄字)가 65만 3,921개 71분(盆), 판목(版木)이 7,501장(張), 기타 부속품이 12종에 이르고 있다. 이 도서는 1915년에 창경궁 안에 신축된 4층 서고로 이전되었으며 1918년에 이르러서 새로 지은 장서각(藏書閣)에 보관되었고 1937년에는 창경궁 영춘헌(迎春軒) 북쪽에 위치한 이왕직박물관이 덕수궁으로 이전하자 장서각을 이 곳으로 옮겨왔다. 1945년 광복 이후 미군정청은 이왕직을 구왕궁사무청(舊王宮事務廳)으로 개편하여 계속해서 장서각을 관장하도록 하였다. 1950년 6·25동란이 발발하자 장서각도서는 미처 소개되지도 못한 채 많은 귀중 도서가 일실되었으나 최근 북한의 국가문서고(國家文書庫), 중앙역사박물관(中央歷史博物館)에 수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장서각의 관리는 1955년 창경원사무소로 이관되었으며 1961년 9월 13일에 이르러 비로소 일반에 공개되어 열람이 허용되었다. 그 뒤 1969년 11월 5일 대통령령 제4263호에 의거하여 장서각은 창경원사무소에서 문화재관리국의 관리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후 문화재관리국에 의해 관리되고 있던 장서각도서는 국학 연구의 총본산을 표방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개원되자 이 곳으로 이관하자는 논의가 있어 1981년 대통령령 제10588호에 의거하여 장서각도서 전량이 한국정신문화연구원으로 이관되었다. 그 후 25년여 동안 수많은 한국학관련 학자의 장서각 도서에 대한 조사와 연구의 결과로 다양한 학술연구서와 자료집, 조사보고서, 목록집 등을 간행하여 한국학 연구의 든든한 토대를 마련하고 연구역량을 축적하는데 크게 기여해 오고 있다.
내용

1. 소장내역
장서각도서의 구성은 설립 초기에 무주 적상산사고(赤裳山史庫)로부터 이관된 도서와 서울 각처 군영으로부터 구위대(九衛隊)에 이관되어 온 군영 관계 서적, 그 밖에 황실에서 새로 구입한 도서와 창덕궁 안 선원전에 수장하고 있던 모훈서(謨訓書) 등으로 이루어졌다.


그 뒤 1950년 6·25사변이후 낙선재(樂善齋)에 보관 중이던 한글소설류가 이관되었으며 1964년에는 칠궁(七宮)의 수장본, 1969년에는 봉모당(奉謨堂)에 보존되어 있던 역대 임금의 모훈서 등이 차례로 옮겨졌으며 1970년 종묘(宗廟) 및 여러 능재실(陵齋室) 등에서 전례(典禮)관계 도서가 이관되어 지금의 장서각도서의 주축을 이루게 되었다.


이 밖에도 장서각 소장도서의 인기(印記)를 조사해 보면 제실도서지장(帝室圖書之章)·춘방장(春坊藏)·종부시제조인(宗簿寺提調印)·종부시제조지인(宗簿寺提調之印)·종부시인(宗簿寺印) 등을 찾아볼 수 있어 제실도서관·춘방·종부시 등의 도서도 이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수장서의 특성은 주로 왕실 관계의 귀중 자료로 구성되어 있다. 또 고문서류 뿐만 아니라 어제류(御製類) 등의 왕실 관계 자료, 의궤류(儀軌類), 방·보류(榜譜類)이며, 도형류(圖形類), 궁체(宮體)로 쓰여진 한글소설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서각은 주권을 상실한 시대적 상황에서 설립된 기구로, 조선시대에 설립된 전·관·각과 같이 국왕의 고문에 대비하였던 주된 기능은 찾을 수 없고 다만 장서 구성상에서 볼 수 있듯이 왕실에 관련된 자료를 수집·정리·보존하는 도서관의 본래적 기능에 더욱 치중하였다.


장서각에서는 여러 곳으로부터 도서가 이관되어 옴에 따라 장서가 증가되었고 이에 따라 여러 차례 도서 목록을 편찬하여 그 구성을 살펴볼 수 있다. 1914년에 『이왕가도서실장서목록 李王家圖書室藏書目錄』 1책이 편찬되었으며, 1918년 『이왕가도서목록 李王家圖書目錄』 3책이 증보 간행되었다. 또한, 1924년과 1935년 두 차례에 걸쳐 『이왕가장서각고도서목록 李王家藏書閣古圖書目錄』이 편찬되었다. 그 뒤 1970년 문화재관리국 장서각에서는 당시까지 소장하였던 도서에 대한 대대적인 정리 작업을 실시하여 장서각 총목록을 편찬할 계획을 수립하였다. 1971 년 1월에 시작된 정리 작업은 1972년 5월에 완료되어 『장서각도서한국판총목록 藏書閣圖書韓國版總目錄』의 간행을 보게 되었으며, 계속해서 1974년 『장서각도서중국판총목록 藏書閣圖書中國版總目錄』과 1975년 『한국판보유편 韓國版補遺篇』이 편찬되었다.


2. 사업 내용
1981년 장서각 전적을 인수한 이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는 무엇보다 도서의 체계적인 정리와 관리에 만전을 기하였고 각종 목록집과 자료집의 간행, 그리고 마이크로 필름을 제작하여 기초자료로 활용할 수 있게 하였다. 지식정보화 시대에 부응하기 위해 한국학 네트워크 형성 및 한국문화의 디지털화를 추진하였으며 장서각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이해와 관심을 확대하기 위해 특별전을 기획하여 장서각 자료를 일반에게 공개하기도 하였다.


3. 규모
현재 장서각 건물은 1981년 6월 30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연건평 2,460평에 지상 2층 지하 1층으로 신축한 것으로 고전적자료, 일반도서의 서고와 수서실·정리실·열람봉사실·참고문헌실·정기간행물실·학위논문실, 특수자료 및 마이크로필름의 촬영·복제·현상 등 열람에 필요한 내부 시설을 갖추고 학문 연구와 교육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참고자료
朝鮮總督府取調局,《圖書關係書類綴》朝鮮總督府取調局, 1911
문화재관리국,《文化財管理實務便覽》문화재관리국, 1984
장서각,《장서각도서 한국판 총목록》장서각, 1972
문화재관리국 장서각사무소 편,《한국고활자견본첩》문화재관리국장서각사무소, 1973
문화재관리국 장서각사무소 편,《지정문화재해설- 증보판1집-》양서문화사, 1975
유영박, <장서각소장 강좌여지기 논고>《국학자료》38, 장서각, 1980
심우준,<장서각 한서분류표의 수정, 증보>《정신문화연구》15-3, 1992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서각도서해제 1》한국정신문화 연구원, 1995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서각의 역사와 자료적 특성》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6
김 혁, <장서각 소장 등록의 문헌학적 특성>《장서각》4,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0
신명호, <일제하 고종순종실록><고종순종국조보감의 편찬과 장서각 자료>《정신문화연구》79,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0,
신명호, <장서각 소장자료와 종묘의 역사>《장서각》4,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0
김형 외,《장서각소장등록해제》성남: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2
집필자
류정아(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07.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