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월드컵을 유치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국은 1993년에 월드컵 유치경쟁에 뛰어들었다.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1994년 미국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직후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2002년 월드컵 개최의 뜻을 천명했다. 그러나 당시 이 같은 도전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왜냐하면 선두주자 일본은 이미 1989년 월드컵 유치를 공표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이후 월드컵유치위원회를 발족, 가동하고 1993년 1월에는 개최도시 15곳도 서둘러 발표했다. 일본이 이처럼 발 빠른 행보를 드러낸 것은 월드컵 단독개최를 염원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시기를 놓친 한국의 유치노력이 긍정적 결과를 끌어낼 것으로 내다보기는 어려웠다.
그렇지만 정몽준 회장이 1994년에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으로 선출된 이후 전세는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아벨란제 국제축구연맹 회장이 노골적으로 일본의 지지의사를 표하자 유럽 및 남미, 아프리카 출신의 국제축구연맹 집행위원들 사이에 반 아벨란제 기류가 생겨나 상황은 점차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이때 한일축구 관계자들과 양국정부는 다각도로 보이지 않는 외교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두 나라의 갈등이 격화할 무렵 피터 벨라판 아시아축구연맹 사무총장이 새로운 카드를 제시했으니 그것이 바로 한일 양국의 공동개최였다. 날이 갈수록 이에 대한 국제축구연맹 관계자들의 호응은 커졌고 요한슨 유럽축구연맹회장까지 공동개최에 찬성의사를 나타내자 일본과 국제축구연맹은 결국 현실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국제축구연맹은 1996년 취리히 본부에서 열린 집행위원회에서 한국과 일본의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를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한편 국제축구연맹 집행위원회는 2002년 월드컵의 개막전은 한국에서, 결승전은 일본에서 열기로 하고 2002년 한·일 월드컵의 구체적인 경기일정을 확정, 발표했다.
1. 조직위원회의 구성
2002년 월드컵 한국조직위원회는 1997년 2월 3일에 서울 종로구 수송동 이마빌딩에서 현판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날 현판식에는 나가누마 일본축구협회장과 가마모토 일본축구협회 집행위원이 참석, 현판식을 축하했다. 이에 앞서 한국조직위원회는 1996년 12월 30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창립총회를 갖고 이동찬(경영자총연합회장)을 임기 3년의 초대위원장에 최창신(전 문화체육부 차관보)을 사무총장에 선임했다. 부위원장에는 정몽준(전 대한축구협회장), 김영수(전 문화체육부 장관), 한우석(전 프랑스 대사)을 선임했으며, 그 외 12명의 집행위원을 구성했다. 한국조직위원회는 1997년 12월 29일에 집행위원회와 의원총회를 개최해 서울, 부산, 대구, 인천, 대전, 광주, 울산, 전주, 수원, 서귀포 등 10개 개최도시를 선정, 발표했다. 이는 2002년 월드컵이 한국의 경제 재도약과 위상을 더한층 높일 수 있는 계기라 보고 개최도시 수자를 일본과 같이 10개 도시로 최종 결정했다. 그 후 한국조직위원회는 2000년 10월 7일에 임시 위원총회를 개최해 정몽준과 이연택(전 국민체육진흥공단이사장)을 공동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또한 11월 21일에는 공석 중인 사무총장에 문동후(전 소청심사위원장)를 사무총장에 선임했다.
2. 참가규모 및 운영
지구촌 최대의 축제, 21세기 첫 축구제전인 2002년 한·일 월드컵축구대회가 역사적인 막을 올렸다. 17회를 맞는 이번 월드컵은 2002년 5월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지난대회 우승팀인 프랑스와 세네갈의 경기를 시작으로 31일간의 대장정에 돌입했다. 2년여 동안 치열한 지역예선을 거친 본선에 진출한 32개국은 한국과 일본의 20개 도시의 경기장에서 8개조로 나뉘어 조별리그전을 벌인 다음 각조 1, 2위가 16강에 진출해 토너먼트를 치른다. 결승전은 6월 30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렸다.
3. 성과
《타임》지는 2002년 월드컵이 역사상 가장 훌륭한 월드컵이라 평가하였고,《뉴스위크》는 이번 월드컵의 진정한 승자는 한국이라 보도했다. 프랑스의《리베라시옹》은 한국이 아시아의 중심이자 세계정상급의 성숙한 국가로 성장했다고 보도했다. 영국의《파이낸셜타임즈》는 경제 효과 면에서 한국이 일본을 압도했다고 보도했고,《뉴욕타임즈》는 월드컵을 통해 한국은 세계시장에서 사업파트너로서의 이미지를 확고하게 구축했다고 보도했다. 영국의 BBC방송은 전통과 첨단기술이 조화된 장엄한 개막식 문화행사로 전 세계에 화합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했다고 평가했다. 로이터통신은 한국은 국제축구연맹 역사상 가장 철저한 안전대책을 펼치고도 대회를 축제로 만들었다고 극찬했다. 이 기사는 해외 주요언론들이 한국의 월드컵 개최에 대해 보도한 내용으로서 2002년 월드컵의 성공을 한눈으로 알 수 있는 내용들이다.
여기서 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의 성과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월드컵 사상 가장 성공적인 대회
·세계 4강 신화창조로 국민 자부심 고취
·안전 월드컵실현
·국가이미지 수직 상승
·IT 강국의 이미지 부각
·문화한국의 역량과시
·관광여건의 비약적인 개선
·새로운 응원문화의 창조
·국기와 국호에 대한 새로운 이해
·선진시민 질서의식 함양
〈 60억 축제 월드컵 막오르다〉《조선일보》, 2002.5.31
정태환,《2002 FIFA 한·일 월드컵의 성과와 향후과제》한국체육학회, 2002
한국축구100년사 증보판 편찬위원,《한국축구100년사 증보판》대한축구협회, 2003
서준형,《월드컵의 위대한 전설들》살림출판사,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