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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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과 북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발생배경
분단 후 김일성은 북한 지역에서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였고, 1948년 9월 9일 정식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다.
김일성은 북한정권수립 이후 남한 공산화를 위한 혁명전쟁을 강조하면서 무장세력을 이용하여 남한에서의 정치권력 장악도 시도하였다. 1949년 6월 주한미군 완전철수, 같은 해 7월 14일 소련 핵실험 성공, 1949년 10월 1일 중국 공산화 이후 김일성의 남침의지는 공고화되었다.
스탈린은 1950년 2월 9일 김일성의 ‘무력에 의한 한반도 적화통일’을 지지한다는 최종 결정을 내렸고, 김일성은 1950년 4월 소련을 방문하여 스탈린의 지원을 확인했다. 최종적으로 1950년 5월 13일 모택동 면담 이후 최종적으로 남침을 결정했다.

내용
전쟁 개시 및 종결
김일성은 기습 남침으로 3일 만에 서울을 장악했으나, 3일 동안 더 이상의 공세를 취하지 않았다. 3일 동안 한국과 미국은 반격의 기회를 잡았고, 북한군은 압록강까지 후퇴를 거듭했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반격을 시도해 유엔군을 38선 근처까지 밀어냈다. 정전협정 체결로 북한의 한반도 적화통일 계획은 실패했다. 

전쟁 결과
북한 자체의 소멸은 모면했으나, 북한 전역을 황폐화시키고, 많은 한국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럼에도 김일성은 한국전쟁을 “통일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투쟁”으로 규정했고, “미국 제국주의자들의 무력침공을 단호히 물리치자”고 강조하면서 ‘미국의 북침을 방어한 것’으로 주장했다.
전쟁 후 지금까지 북한은 남한 적화통일 의지를 버리지 않고, 군사력 증강에 몰두하고 있다. 력 증강에 몰두하고 있다. 

참고자료
양성철‧강성한 공편, 《북한 외교정책》, 서울프레스, 1995.

집필자
이대우(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최초 주제 집필
2017. 12. 26

최종 주제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