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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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사회문화 협력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근거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배경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동구 사회주의권이 붕괴되고 냉전체제가 해체되는 국제적 격변 상황 속에서 정부는 남북관계를 불신과 대결구조에서 신뢰와 협력구조로 바꾸어 가기 위해 근본적인 정책전환을 모색하게 되었고, 1988년 7월 7일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 을 발표하였다. 후속조치로 1988년 10월 남북한 간 교역을 허용하는 ‘대북경제개방조치’ 를 취하고, 1989년 6월 12일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기본지침」을 준비하였으며, 1990년 8월에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남북협력기금법」 등 관련 법령이 제정됨으로써 법적 테두리 안에서 남북교류협력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경과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고 남북문제에 있어서 ‘정경분리원칙’이 발표되기 전까지 민간차원의 사회·문화교류는 모두 불법이었다. 「국가보안법」이 가로막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남측의 청년·학생들과 진보인사들이 북측을 방문하기도 했지만, 남측에 다시 돌아온 이들이 갈 곳은 감옥 외엔 없었다. 그러나 〈6・15공동선언〉 발표 이후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재야세력이 비합법 공간에서 추진해왔던 통일운동과 남북교류는 이제 정부의 허가 아래 공적인 영역에서 대규모로 추진되었다.

2000년 이래로 남북은 8・15민족통일대축전과 6・15공동행사 등을 계기로 대규모 대표단을 번갈아 보내며,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를 고취시켜왔다. 특히 남측 대표단은 정부 측 인사들 외에도 재야 통일운동 인사들과 노동자・농민・청년・학생 등 각계의 통일을 염원하는 민중들이 대거 참여하기도 했다. 또한 1998년부터 시작된 금강산 관광으로 연 인원 100만 명의 남측 국민들이 군사분계선을 넘나들었다. 2000년 착공되어 2005년 입주를 시작한 개성공단은 남북 경제교류의 상징이 되었다. 이 외에도 각계각층의 남북교류가 줄을 이었다.

그러나 남북교류는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고,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이명박 정부는 〈비핵개방3000정책〉을 내세우며 북한과의 정면대결을 선포했다. 취임한지 5개월도 되지 않은 2008년 7월에는 금강산 관광을 중단했는데,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계기로 남북 간의 모든 교류는 중단되었다. 이것이 바로 2010년의 5・24조치이다. 이 조치로 인해 아직까지도 남북 간의 모든 교류는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내용
남북한 간의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협력은 분단으로 인한 사회문화적 갈등과 이질화를 극복하고 민족공동체를 형성하는 사회문화적 기반을 조성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하는 통합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남북 간의 교류협력은 남북한 주민간의 접촉, 남북한 지역 간 왕래, 재외국민의 북한방문, 협력사업 등을 포함하며, 구체적 내용은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에 세부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남북 간의 사회문화교류협력은 남북관계를 규율하고 있는 남북한 당국 간의 상호관계에 따라 좌우되어 왔다. 남북 간의 사회문화적 교류협력도 탈냉전시대의 조류에 조응하여 남북한 당국이 새로운 남북관계를 정립하려는 움직임을 반영하면서 전개되어 왔다. 1985년 시작된 남북 간 사회문화협력사업은 정치적 상황에 크게 좌우되었으며, 남북 간 회담과 방문인원도 체육이나 종교부문 위주로 진행되었다는 한계와 특징이 있다. 남북 간의 사회문화적 차원의 교류협력은 인도적 차원의 이산가족문제가 가장 최우선적인 아젠다로 다루어져 왔다. 

1988년 노태우 정부가 7・7선언을 발표하고 전향적 성격의 북방정책을 추진하면서 남북관계에서도 탈냉전을 모색하려는 법제도적 기반이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1990년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남북 고위급회담을 추진하였으며, 1991년에는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하면서 남북관계를 통일지향적 관계로 전환하려는 남북한 당국 간의 합의를 마련하였다. 이로써 남북 간 사회문화적 교류협력을 위한 최소한의 기반이 조성될 수 있었다. 그러나 남북 간의 사회문화적 교류협력은 북한의 핵문제가 분출하고 남북관계의 불안정으로 본격적인 실천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던 것이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북 포용정책을 추진하고 남북 간 접촉과 소통이 재개되면서 사회문화적 차원의 교류협력도 본격화될 수 있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발표한 〈6・15공동선언〉은 남북관계를 다차원적인 탈분단의 시대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하였다. 남북한 당국이 남북 간 교류협력의 기반을 조성해 주면서 남북한 간에는 분단이래 처음으로 조직적이고 집단적 차원의 사회문화적 교류협력이 활발하게 추진될 수 있었다.   

그러나 남북 간의 사회문화적 교류협력은 북한의 핵문제로 인한 북미관계의 악화가 남북관계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면서 점차 축소되는 과정을 거쳐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 남북관계의 악화에 따른 5・24조치로 말미암아 전면적으로 중단되는 상황을 맞이하여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참고자료
조한범, 《남북 사회문화 교류·협력의 평가와 발전방향》, 통일연구원, 1999.
KBS 남북협력기획단 편, 《남북한 교류협력발전방안》, 2012.

집필자
허문영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 정치학박사)

최초 주제 집필
2017. 12. 26

최종 주제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