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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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

주제유형
조약/회담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경과
6자회담은 북한의 핵 페기를 목적으로 출범한 다자회담이다. 형식적으로는 북한의 핵 폐기에 동의한 5개국이 북한과의 비대칭협상을 통해 북한의 핵무기개발을 포기시키려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6자회담은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고, 합의와 무시를 반복하는 과정 속에서 북한의 핵을 포기시키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핵 폐기에 참여하고 있는 각국들은 제각기 자국의 국가이익에 최대한 부합하는 방향으로 회담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합의점을 도출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근거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북미 간 양자대화를 통한 해법이 위기에 봉착하면서 한중일 3국간의 논의와 협력과정을 거쳐 한미일 3국과 북·중·러 참여하는 6개국 간의 다자회담을 개최하였다. 6자회담은 북한의 핵문제라는 특수목적을 구현하기 위한 특수회담의 성격을 띠고 있다. 


배경
북한 핵문제는 그 해결방법을 두고 북한과 미국이 첨예하게 대립하여 왔다. 북한은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요구한 반면, 미국은 다자회담 형식을 통한 해결을 주장했다. 회담 형식에 대한 미국과 북한의 주장은 북한 핵문제를 바라보는 양국 간 입장 차이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었다. 미국은 북한 핵문제는 국제규범에 도전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평화를 수호하려는 국가들의 단합된 대응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북한은 핵문제가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미국만이 해결할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었다.


북한과 미국이 대치하는 과정에서 ‘다자회담 속의 양자회담’이라는 절충안을 찾게 되었고, 2003년 4월 베이징에서 미·북·중 간의 3자회담이 개최되었다. 3자회담은 아무런 성과도 없이 종료되었으나, 북핵문제가 대화를 통한 해결 국면으로 접어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중국 등의 적극적인 중재에 의해 2003년 8월부터 남북한과 미·일·중·러가 참가하는 6자회담이 시작되었다. 6자회담은 기본적으로는 북한 핵문제에 관련이 있는 유관 국가들이 모두 참가한다는 점에서 북한 핵문제의 국제적 성격을 보여준 한편, 이 회담 틀 속에서 미·북이 직접 대화를 가졌다는 점에서는 북한의 양자대화 주장을 부분적으로는 반영한 형태라고도 볼 수 있다.


내용
북한 핵문제를 바라보는 미국과 북한의 시각 차이는 핵무기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CVID)’, 미사일 폐기 등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과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적대정책 철회, 북한에 대한 안전 보장(불가침조약) 등을 미국이 수용해야 한다는 북한의 주장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났다. 북한과 미국은 2003년 4월 중국의 중재로 열린 베이징 3자회담에서 이 같은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함으로써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서로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던 상황에서 주변국들 간에 국면 전환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었다. 한국과 미국, 일 본 간에도 한·미 정상회담, 미·일 정상회담, 한·미·일 정책조정감독그룹(TCOG)회의 등을 개최하여 상호 입장을 조율하였다. 중국도 1996년 4자회담 당시 소극적이었던 태도와는 달리, 북한 핵문제에 대한 국제적 논의를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제1차 6자회담은 2003년 8월에 베이징에서 개최되었다. 북한은 1차 회담에서 농축 우라늄 핵개발 계획에 대해 부정하면서, 4단계 로드맵 제시를 통해 북한과 미국이 동시행동에 나설 것을 제안하였다. 미국의 중유공급 재개 및 북한의 핵개발 포기 의사 천명, 미·북 불가침조약 체결 → 핵사찰 수용, 미·북, 일·북 수교 → 미사일 문제 해결, 경수로 완공 → 핵 폐기의 단계가 그것이다. 미국은 북한이 핵을 폐기하면 대북 경제지원과 식량지원 등 과감한 접근법을 취할 수 있다고 대응하였다. 결국 1차 6자회담은 별다른 성과 없이 막을 내렸으나, 의장국 성명을 통해 6자회담이 지속될 것이라는 가능성은 남겨놓았다.


제2차 6자회담은 2004년 2월 25일 베이징에서 열렸다. 북한의 ‘동결 대 보상’ 및 ‘일괄타결·동시행동’ 조치와 ‘선(先) 핵 포기’를 주장하는 미국 사이에 팽팽한 대립이 계속되었다. 


2004년 6월 21일부터 6일간 열린 제3차 6자회담은 미국과 북한이 구체적인 협상안을 제시하고 실질문제를 협의하기 시작한 첫 번째 회담이었다. 3차 회담에서 미국은 그동안 북한이 요구해온 에너지 제공, 대북 불가침 보장, 테러지원국 해제, 국교정상화 등에 대한 미국측 입장을 제시했다. 북한은 미국의 제안에 대응해 구체적인 핵 동결 대상과 시점 등을 명시한 안을 제시했다.


제4차 6자회담은 사전에 미·북 간 6자회담 수석대표 협의를 거쳐 3차 회담 이후 1년 여가 지난 2005년 7월 26일 베이징에서 개최되었다. 4차 회담은 각국의 내부협의를 거쳐 9월 13일부터 19일까지 2단계 회의로 이어졌다. 2단계 회의에서 북한 핵문제 해결에 관한 6자회담 최초의 합의로서 ‘9·19 공동성명’이 채택되었다.


‘9·19 공동성명’ 이행은 합의 직후부터 경수로 제공시기에 대한 해석 차이와 미국이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BDA)를 북한의 불법자금 세탁 우려대상으로 지정한 조치 등으로 난관에 부딪쳤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9·19 공동성명’의 초기단계 이행조치를 협의하기 위한 제5차 6자회담이 11월 9일 베이징에서 개최되었으나, 아무런 합의를 보지 못했다.


6자회담이 장기간 재개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북한은 2006년 7월 5일 대포동 미사일 1기를 포함한 미사일 실험 발사 및 10월 9일에는 핵실험을 감행하였고, 유엔은 10월 14일 안보리 결의 1718 호를 통해 북한의 행위를 규탄하고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했다. 이후 2006년 12월 18일 열린 제5차 회담 2단계 회의에서는 구체적 진전은 없었지만 참가국들이 6자회담의 유용성을 확인하였다.


2007년 2월 8일부터 제5차 6자회담 3단계 회의가 개최되어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2·13 합의)’가 타결되었다. 그러나 ‘2·13 합의’ 이행은 BDA의 북한 동결자금 문제 해결이 지연되고 이를 이유로 북한이 폐쇄·봉인 조치를 미룸에 따라 6개월 간 지체되었다. 이후 BDA 문제가 해결되면서 대북 중유 5만 톤 제공이 시작되고, 북한도 이에 맞춰 5개 핵 시설(5MWe원자로, 50MWe원자로, 200MWe 원자로, 핵재처리 시설, 핵연료공장)에 대한 폐쇄·봉인 조치를 개시하였다. 6자회담의 5개 실무그룹을 중심으로 의견조율이 이루어지면서, 2007년 10월 3일 제6차 6자회담 2단계 회의에서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2단계 조치(10·3 합의)’가 채택되었다.


북한은 ‘10·3 합의’에 명시한 시한인 2007년 12월을 훨씬 넘겨 핵 프로그램 신고서를 2008년 6월 26일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 제출하였으며, 6월 27일 영변 5MWe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하였다. 이에 미국은 6월 26일 북한에 대한 적성국 교역법 적용을 종료하고, 테러지원국 해제 절차에 착수하였으며, 10월 11일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하였다. 


2008년 12월 열린 6자 수석대표회의에서는 검증의정서 채택 문제, 비핵화 2단계 마무리를 위한 불능화 및 경제·에너지 제공 이행문제, 동북아 평화·안보 지도원칙(안) 등에 대해 논의하였으나, 핵심쟁점이었던 검증의정서는 채택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2009년 1월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하였다. 북한은 2009년 4월 5일 국제사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다. 이에 대해 유엔 안보리가 의장성명을 통해 북한의 행위를 규탄하자 북한은 5월 25일 제2차 지하 핵실험을 강행하였다.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하여 유엔 안보리가 6월 12일 대북결의안 1874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하자 북한은 6월 13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농축 우라늄 개발을 공식 선언하는 한편, 7월 24일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신선호 대사를 통해 ‘6자회담은 영원히 끝났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이 북한이 관련국들이 요구하는 비핵화 의지표명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보이기는커녕 핵실험 강행, 우리 측에 대한 무력도발 행위지속 등으로 6자회담 재개는 계속 미뤄지는 상태에 있다.


김정은의 집권 이후에도 “김정은 정권은 핵 개발 프로그램 포기를 전제로 하는 6자회담은 하지 않겠다는 일관된 행보로 나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6자회담은 2008년 12월 이후 장기 공전 상태를 빚어 왔다.


참고자료
김수민·윤황, 《북한의 6자회담 협상전략·전술 : 평가와 전망》, 〈세계지역연구논총〉제26집 3호, 한국세계지역학회, 2008. 12.
임을출, 《6자회담의 다자적 제도화 : 초기조건과 결정요인》, 〈통일연구논총〉제18권 제2호, 통일연구원, 2009.
장용석, 《북한의 대외정책 변화와 6자회담 : 대내 정치적 요인을 중심으로》, 〈나라경제〉제15권 제11호, 한국개발연구원, 2013. 11. 
박재적, 《미국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과 6자회담 재개에 관한 입장》, 〈나라경제〉제15권 제11호, 한국개발연구원, 2013. 11.


집필자
허문영(통일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최초 주제 집필
2015.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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