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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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통상정책

주제유형
정책/제도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의의
2000년대 한국정부의 적극적인 FTA 추진 정책은 한국이 지역주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역주의가 다자체제를 위협하거나 범세계적인 무역자유화에 걸림돌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다자주의를 보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무역자유화를 촉진시킨다는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세계적인 FTA 확산 추세에서 FTA는 선택과제가 아닌 필수전략이며, 이러한 맥락에서 2000년대에 추진한 다양한 FTA의 의미는 매우 크다.

근거
「대한민국 정부와 칠레공화국 정부간의 자유무역협정」, 2003.2.15
「대한민국 정부와 싱가포르 정부간의 자유무역협정」, 2005.8.4
「대한민국 정부와 EFTA 회원국 간의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최종의정서」, 2005.12.15
「대한민국 정부와 ASEAN 간의 자유무역협정」, 2006.8.24(상품), 2007.11.21(서비스)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 자유무역협정」, 2007.6.30

배경
2000년대 들어서도 국제통상환경은 큰 변화를 겪었다. WTO를 중심으로 자유무역이 세계무역의 조류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으나,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무역 불균형을 이유로 개방압력을 가하고, 선진국.개발도상국 모두 자국산업 보호를 위하여 반덤핑 등 무역규제 수단을 남용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또한, 지역주의도 계속 심화되어 세계적으로 자유무역협정(FTA: Free Trade Agreement)을 포함한 지역무역협정(RTA: Regional Trade Agreement)이 크게 늘어났다. 한편 WTO 차원의 새로운 협상으로 도하 개발 아젠다(DDA: Doha Development Agenda)가 2001년 11월 시작되었다. 이 협상은 몇 차례 고비를 넘기며 진행되었으나 결국 예정된 협상종료일(2006년 12월)을 5개월 남겨놓은 시점(2006월 7월)에서 협상이 중단되었다. 그 이후 2008년 7월 협상이 재개되었으나 선.후진국간 농업과 비농산물 자유화 세부원칙 합의에 실패하여 또 다시 결렬되었다. 이러한 통상환경 하에서 한국은 DDA 협상에 이전 라운드 보다 훨씬 조직적이고 주도적으로 참여해 무역대국으로서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한편 동시 다발적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도 박차를 가하였다.

내용
다자체제의 발전과 함께 2000년대 국제교역관계에서 나타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의 하나는 지역주의의 확산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간 무역.투자 장벽의 완화와 정보통신기술의 급속한 발달로 국경의 의미가 약화된 가운데 지리적으로 가까운 국가들끼리 경제적 혜택을 공유하기 위한 경제블럭이 지속적으로 생성되었다. 그 결과 WTO 회원국 거의 모두가 해외 수출시장 확보를 위한 통상전량의 일환으로 최소한 1개 이상의 지역무역협정을 체결하였다. 2007년 7월 WTO에 보고된 지역무역협정은 총 380개로서 이 중 발효 중인 것은 205개에 달하였다. 이러한 지역무역협정은 2010년까지 총 400개 수준으로 증가할 것이며, 이 중 90% 이상이 자유무역협정이며 관세동맹은 10% 미만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001년 11월 시작된 WTO 체제하의 첫 번째 다자간 협상인 DDA는 2005년 7월 홍콩에서 열린 6차 WTO 각료회의에서 일부 쟁점에 대해 합의를 도출하고 각료선언을 채택했음에도 불구하고, 파스칼 라미 WTO 사무총장이 2006년 7월 24일 무역교섭위원회(TNC)를 소집해 일반이사회(CG)에 ‘협상환경이 좋아질 때까지 DDA의 모든 분야에 걸쳐 협상의 일시중단'을 권고함으로써 협상이 중단되었다. 협상 중단선언의 주요 원인은 G8 정상회의에서 주요국 정상들이 DDA의 교착을 우려하여 향후 1개월 이내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할 것을 촉구했음에도 불구하고, G8 정상회의 직후 열린 G6(미국, EU, 브라질, 인도, 일본, 호주) 각료회의에서 주요국간 핵심 쟁점에 대한 의견 절충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합의도출에 실패한 직접적인 원인은 미국이 EU의 농산물 시장과 개도국의 비농산물 시장에서의 개방 확대 폭이 미국의 농업보조금 추가 감축으로 인한 손실을 보전하기에는 미흡하다고 판단하고, 무역 왜곡적인 농업보조금의 추가 감축을 요구한 데 대해 EU와 브라질, 인도가 미국의 요구를 거부한 데 있다. 그 이후 2008년 7월 2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협상이 재개되었으나 선.후진국간의 농업보조금을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하여 또 다시 결렬되었다.


이러한 DDA의 중단은 WTO 중심의 다자무역협상 체제의 신뢰성을 손상시키고 보호무역주의의 대두로 세계무역 확대를 통한 경제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것이며, 특히 범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이해 당사국간 양자 차원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추세를 더욱 가속화시킬 것으로 예상되었다. 지역무역협정이 이처럼 빠른 속도로 확산될 경우 지역무역협정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의 수출여건이 악화될 것은 자명하다. 다자체제의 가장 큰 수혜자로서 다자주의 원칙만을 고수해 오던 한국이 지역주의에 대해 눈을 뜨고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데에는 물론 1997년의 외환위기 이후 개혁과 개방의 필요성을 절감한 이유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전세계적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지역주의 추세를 외면할 경우 자칫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던 대외수출의 기반이 크게 잠식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크게 작용했다.


한국이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이나 공식적인 통상정책의 일환으로 본격적인 검토에 들어간 것은 사실상 외환위기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FTA 정책의 기본방향은 1998년 11월 대외경제조정위원회에서 결정되었는데, 칠레와의 FTA를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중소형 거점국가와의 FTA는 관련 부처와의 협의를 거쳐 연구를 개시한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경제적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 일본, 중국 등 거대경제권과의 FTA는 정밀검토를 거쳐 추진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그에 따라 1999년 12월부터 칠레와의 1차 협상을 개시해 우여곡절 끝에 3년만인 2002년에 6차 협상을 통해 타결하고 2003년 2월 양국정상이 협정안에 서명하게 되었다. 한국 측의 농업개방안을 둘러싼 양국간 이견으로 1년 반 이상 협상 중단의 어려움까지 겪으면서 가까스로 타결된 한.칠레 FTA 협정안은 국회비준에만 1년 이상이 소요되어 2004년 4월 1일에서야 발효되는 등 한국의 첫 번째 FTA는 커다란 진통을 겪고 탄생하였다.


첫 번째 FTA가 이러한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시 다발적 FTA’ 추진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일본 및 싱가포르 등과 각각 FTA를 위한 산.관.학 공동연구를 개시하였고, 2003년 12월에는 일본과 2년의 시한을 두고, 그리고 2004년 2월에는 싱가포르와 1년의 시한을 두고 협상을 개시하였다. 한.칠레 FTA 협상과정에서 농업개방을 둘러싸고 진통은 겪은 한국은 결국 농업개방의 부담이 비교적 적은 일본과 싱가포르를 칠레 다음의 FTA 대상국으로 선정하였다. 싱가포르와는 큰 이견 없이 협상이 진행돼 2004년 11월 라오스에서 개최된 ASEAN+3 정상회담 기간중 양국 정상회담을 통해 실질적인 협상타결이 이루어져 2005년 8월 협정문에 정식 서명하였고 2006년 3월 2일부터 발효되었다. 그러나 일본과의 FTA는 일본 측의 농업개방에 대한 부담과 경제외적인 요인들에 의해 협상이 중단되었다.


한편 2005년 1월에는 서유럽국가 중 EU에 참가하지 않은 스위스,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으로 구성된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European Free Trade Association)과 FTA 협상을 시작하여 같은 해 7월 4차 협상에서 협상이 타결되어 12월에 협정문에 정식서명을 하였고, 2006년 9월 1일부터 협상이 발효되었다. EFTA는 한국이 FTA를 체결한 최초의 유럽경제권으로서 경제규모도 세계 10위권이기 때문에 무역증대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EFTA 4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4만 달러 수준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각각 5천 달러, 3만 달러 수준인 칠레와 싱가포르에 비해 훨씬 높다. 특히 양국은 상호 보완적인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양국간 교역에서는 산업내 무역비중은 낮고 산업간 무역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한.EFTA FTA를 통해 국내 산업구조조정을 최소화하면서 교역자유화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외에 한국은 2003년 10월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한.아세안 FTA에 대한 공동연구를 제안한 이후 2004년 11월 30일 협상을 공식 개시하였다. 한.아세안 FTA는 2006년 4월 「한.아세안 FTA의 상품무역협상」이 타결돼 8월 24일 정식 서명되었고, 2007년 6월 1일부터 정식 발효되었다. 한편 한.아세안 FTA의 서비스협정과 투자협정도 2007년 10월의 제20차 협상에서 실제적으로 협상이 마무리되어 11월 21일 정식 서명되었다. ASEAN과의 FTA는 중국과 일본이 한국에 앞서 ASEAN과 FTA를 체결하였기 때문에 상대적 불이익을 최소화하는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였으며, 태국 등의 쌀 수출국과의 이견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예외품목을 폭넓게 상호 인정하는 수준에서 타결되었다.


한국은 또한 2006년 2월 미국과의 FTA 협상 개시를 공식 발표한 후 적극적으로 협상을 추진하여 2007년 4월 2일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되었다. 뒤 이어 2007년 6월 2차에 걸친 추가협의를 거쳐 6월 30일 협정문이 정식 서명되었으며, 동년 8월에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한미 FTA는 자유화수준과 상대국이 기존의 FTA 체결국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많은 논란이 있었다.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인 미국과의 FTA를 통하여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찾고자 하는 시도가 절차상의 문제와 대내적인 의견수렴의 부족, 피해산업에 대한 준비부족 등으로 인해 극심한 국론분열 양상까지 보였다. 한미 FTA의 경우 자유화수준이 매우 높아 단순히 상품무역 자유화 등에 국한되지 않는 경제체질의 변화가 기대되고 있다. 이 같은 자유화정책의 이득은 장기적으로 나타나고 수혜자도 일반 소비자를 비롯해 불특정 다수인 반면, 손실은 특정집단에 집중되고 비교적 단기에 피해가 가시화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나라나 논란의 대상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저하되고 있는 상황에서 요수투입보다는 생산성 증대를 통한 성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한미 FTA 체결이 지니는 중요성이 매우 큰 것으로 평가된다.

참고자료
한국무역협회 《한국무역사》, 2006
WTO 〈Regional Trade Agreements〉, http://

집필자
이연호(충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8. 09. 07

최종 주제 수정
2008. 10.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