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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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통화금융정책

주제유형
정책/제도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배경
우리나라는 1980년대 초반 인플레이션의 만성화, 경기침체, 국제수지 적자라는 난국에 직면하여 성장우선정책에서 안정우선정책으로 선회하면서 경제운용도 정부주도의 개입보다는 민간의 창의와 시장기능을 중시하는 민간시장형 경제로 전환하고자 하였다. 우리나라 경제가 석유파동의 영향으로 벗어나 유가가 안정되고 재정 금융 측면에서의 긴축정책이 효과를 거두어 물가상승률이 2~3%대로 안정되어 물가안정기반이 처음으로 정착되었다. 


우리나라 경제는 1980년대 초반의 물가안정기반을 바탕으로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달러화약세(엔화강세), 저유가, 저금리 등 이른바 3저현상에 힘입어 물가안정 속에 매년 10% 이상의 실질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동시에 처음으로 경상수지가 흑자를 기록하는 등 거시경제상황이 전례 없이 호전되었다. 특히 당시의 경상수지 흑자는 금융의 자유화 및 국제화를 진전시키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1988년 이후에 원화가 큰 폭으로 절상되고 사회민주화를 배경으로 노동쟁의가 급증하고 임금도 상승하는 등 경제여건이 악화됨에 따라 1989년에는 경상주지 흑자 규모가 크게 줄어들고 경제성장세도 급격히 둔화되었다.

내용
정부는 1980년에 인플레이션, 경기침체, 국제수지 적자에 직면하여 환율을 대폭 인상하였다. 한국은행은 환율인상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을 줄이고자 금융기관 여수신금리와 한국은행의 금융기관에 대한 여신금리를 대폭 인상하였다. 정부는 환율의 가격기능을 높이기 위해 복수통화바스켓에 의한 변동환율제도로 전환하고 세출예산 집행을 연기하는 동시에 총통화증가율도 25%에서 20%로 낮추었다. 정부는 1981년에 접어들어 안정기반하에 경기활성화를 도모하는 재정정책을 수행하였다. 한국은행은 긴축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수출산업에 대해서는 자금지원을 확대하였고, 1981년 하반기에 물가가 안정세를 보임에 따라 경기활성화를 위해 금융기관의 여수신금리를 단계적으로 인하하였다. 


정부는 1982년에는 경기회복을 위해 3차례의 종합경제대책을 실시하였다. 한국은행은 통화증가율을 전년보다 낮추어 경제안정 기조를 유지하면서 기업의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여수신금리를 대폭 인하하였다. 한국은행은 거액어음부도사건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에 대처하기 위해 유동성을 신축적으로 공급하였고, 경기회복 지연에 따라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지원을 확대하였다. 정부는 1984년 1985년에도 재정긴축기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한국은행도 통화금융정책의 목표를 경제안정에 두고 통화관리를 더욱 강화하여 긴축기조를 유지하고자 했다. 한국은행은 1984년에는 총통화증가율을 대폭 낮추고 장기금리를 인상하고 단기금리는 인하하였다. 그리고 한국은행은 1985년에도 통화긴축기조를 강화하였다. 1983년 이후 긴축정책이 효과를 거두고 원자재가격도 하락하여 물가가 안정되는 동시에 경제성장률도9% 수준으로 높아지고 경상수지 적자도 크게 축소되었다. 


정부가 경제운용을 방식을 정부주도에 민간주도를 전환하면서 금융부문에서도 정부의 개입을 줄이고 민간의 역할을 중시하는 금융자율화를 추진하였다. 즉 시장원리에 따라 금융을 운영하고 금융기관간의 경쟁을 촉진하고 금융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시중은행의 민영화와 내부경영에 대한 규제완화, 금융업의 진입제한 완화 등이 추진되었다. 1981년에는 한일은행이 정부보유 주식을 매각하였고, 제일은행과 서울신탁은행이 1982년에, 조흥은행이 1983년 정부보유 주식을 매각함으로써 5개 시중은행이 모두 민영화되었다. 1982년부터 금융기관의 신규 설립이 허용되어 신한은행, 한미은행이 설립되고, 단기금융회사가 12개, 상호신용금고 58개사, 투자신탁회사가 각각 1개사 설립되었고, 각 금융기관의 업무영역에 대한 제한도 많이 완화되었다. 1984년에는 양도성예금증서(CD)가, 1985년에는 어음관리구좌(CMA)가 도입되었다. 


우리나라가 1986년부터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함에 따라 통화관리가 어렵게 되었고, 이에 따라 통화안정증권이 유동성조절수단으로 등장하였으나, 이것으로도 통화관리에 한계가 보이자, 한국은행은 금리의 가격기능을 활용하여 간접규제통화관리방식으로 전환하고자 하였다. 한국은행은 1988년 재할인정책의 유동성조절수단으로서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자동재할인의 정책금융을 축소하고 금리의 자금수급조절기능을 강화하고자 통화안정매출에서 시장실세금리를 적용하고, 국공채 거래시에도 환매조건부 매매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통화량을 조절하고자 하였다. 


1986년 우리나라의 경상수지가 흑자로 전환되자 금융자유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전기를 맞게 되었다. 금융기관의 신규 진입이 쉬워지자 1988년 이후 동화은행 등 시중은행 다수가 신설되었고, 투자신탁회사, 리스회사, 생명보험회사, 보증보험 등의 비은행금융기관이 다수 신설되었다. 정부는 1988년 7월 금융기관 수수료 일부를 자유화하였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통화의 간접규제방식 전환과 금융시장 개방에 대응하는 한 방편으로 1988년 12월에는 광범위한 금리자유화 조치를 강구하였다. 그리고 정부는 경상수지 흑자 전환을 계기로 우리나라 경제의 국제화 일환으로 금융의 국제화도 추진하였다. 정부는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성숙도를 감안하여 자본시장, 은행업무, 보험시장, 외환시장 등을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개방하기 시작하였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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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證券業協會, 『韓國證券業協會50年史』, 2004.

집필자
배영목(충북대 경제학과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8. 09. 12

최종 주제 수정
2008. 09.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