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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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통화금융정책

주제유형
정책/제도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배경
4.19혁명 이후 전반적으로 경제활동이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5.16군사정변이 일어나고 군사정권이 등장으로써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군사정변 이후 생산활동은 물론 소비, 투자도 위축되고 예금이탈도 심화되었기 때문에 군사정권이 등장한 후 경제를 안정보다는 성장위주로 운영하게 되었다. 군사정부는 자립경제기반을 구축하기 위하여 1950년대 말부터 진행되어 오던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수출주도형공업화를 통해 추진하고자 하였다. 군사정부는 이 계획을 시행하기 앞서 음성자금을 산업자금화하고 과잉통화를 해소하고자 화폐개혁을 실시하였으나 사실상 실패함에 따라 다시 확장적인 경제정책을 시행하였다. 이에 따른 유동성 증가로 인플레이션이 심화되고 수입증가로 외환사정이 악화되자 정부는 1963년 들어 경제성장 목표치를 낮추고 재정안정계획을 부활시키는 등 경제정책을 일시적으로 경제안정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경제정책의 기조변화로 1964년부터 경제가 안정되어 가자 정부는 환율을 현실화하고 1965년에는 금리도 현실화하여 내자동원 및 수출증대를 통한 고도성장 기반 구축에 노력하였다. 제1차경제개발계획의 성공적 추진을 통해 성장의 틀을 갖춘 우리나라 경제는 제2차경제개발계획의 추진성과에 힘입어 안정 속에서도 급속히 성장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선진국 경제의 호황, 월남전 특수 등 해외여건의 개선에 힘입어 연평균 9.5%라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게 되었다. 정부는 이 기간에 대외거래의 확대와 고도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금융제도를 확충하고 통화를 신축적으로 공급하고 경제의 국제화를 추진하는 동시에 과잉유동성을 최대한 흡수하여 급격한 물가상승도 막고자 하였다.

내용
정부는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는 필요한 재원을 공급할 수 있는 이른바 성장통화를 원활히 공급하기 위해 화폐개혁을 추진하기에 앞서 정부의 통화금융정책에의 개입을 보장하고자 한국은행법부터 1962년 5월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개정하였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첫째, 금융통화위원회가 금융통화운영위원회로 개칭되는 동시에 그 권한도 축소되었다. 둘째, 한국은행의 외환관리기능이 재무부로 귀속되었다. 셋째, 재무부장관의 재의요구권이 신설되는 등 금융정책의 최고결정권이 정부로 귀속되었다. 그리고 정부는 일반은행의 정책금융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1962년 5월 은행법도 개정하였다. 즉 은행의 자산운용한도를 확대하고, 자기자본의 충실화를 도모하고 장기금융업무도 강화하였다. 


군사정부는 일반은행 및 특수은행제도를 대폭 개편하여 경제개발계획을 지원할 수 있는 성장금융체제를 정립하고자 하였다. 1961년 부정축재처리법에 의거 민영화된 일반은행을 다시 정부에 귀속시켰다. 그리고 1961년 7월에 중소기업금융과 서민금융을 담당할 수 있는 중소기업은행을 설립하고, 1962년 2월에는 서민금융을 육성하기 위해 국민은행을 설립하였다. 1961년에는 농업은행의 신용업무와 농업협동조합의 경제사업을 통합하여 새로운 농업협동조합을 발족시켰다. 그리고 산업은행은 자본금 증액, 투자업무와 외자차입 및 채무보증업무의 신설, 한국은행으로부터의 차입을 허용하며 불량기업은 성업공사로 이관하여 처리하는 것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산업은행법 개정에 따라 방대한 업무영역을 가지는 동시에 일반은행과 경쟁하게 되었다. 


1962년 증권거래소에서 수도결제가 불가능한 이른바 ‘증권파동’이 발생하였다. 금융기관이 총 380억 환의 자금을 지원하고 증권거래소가 80억 환을 조달하여 이 사태는 수습되었으나 이로 인해 오래 동안 증권시장이 침체에 이르게 되었다. 이 증권파동이 수습될 즈음인 1962년 6월 9일에 화폐단위를 환에서 원으로 바꾸고 1/10 명목절하하고, 구화(환)예금이나 지급을 동결하는 것을 주요내용으로 한 제3차 긴급통화금융조치, 즉 제3차 화폐개혁을 실시하였다. 이 화폐개혁의 결과로 금융경색이 나타나고 산업활동이 위축되자 예금봉쇄를 완화함으로써 이 화폐개혁은 부동자금의 산업자금화 및 퇴장자금의 인출 등과 같은 원래 정책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가운데 끝나고 말았다. 정부는 화폐개혁의 실패를 수습하기 위해 통화공급을 다시 확대하였으나, 이로 인한 물가상승으로 1963년 초부터 중단되었던 재정금융안정계획을 재정안정계획이라는 이름으로 부활시켜 시행하였는데, 이에 따라 일시적으로 통화금융정책의 긴축기조가 유지되었다.


정부는 1964년에 접어들어 고도성장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정비하기 위하여 각종 가격변수의 현실화조치를 단행하였다. 1965년 5월 공정환율을 달러당 130원에서 225원으로 대폭 인상하면서 그 동안 시행해 오던 복수환율제도를 포기하고 단일변동환율제로 전환하기로 하고 외환매입집중제 대신에 외환증서제도를 도입하였는데, 단일변동환율제는 그 여건이 어느 정도 성숙되었다는 판단되었던 1965년 3월부터 시행하였다.


정부는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는 과정의 재정적자와 은행여신의 확대는 물가상승과 국제수지 악화라는 결과를 초래하자 재정면에서 균형재정을 지향하고, 통화증발을 억제하는 한편 민간부분에서 민간저축을 증대시켜 산업자금으로 운용하고자 금리의 대폭적인 인상을 ‘금리현실화조치’라는 이름으로 1965년 9월 실시하였다. 이 금리현실화는 예금금리의 대폭적인 인상으로 주요내용으로 하는데, 결과적으로 예금금리가 대출금리를 넘어서는 역금리체계가 형성되어 정책자금의 수요가 과대해지고 금융기관의 수지가 압박되고 기업부담이 가중되고 해외로부터 자금도입이 급증하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났다. 정부는 금리현실화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1968년 4월과 10월, 1969년 6월 각각 금융기관 금리를 인하하였다. 


정부는 금리현실화를 실시하는 것을 계기로 통화관리를 직접규제보다는 간접규제로 전환하고자 했다. 1965년 9월 30일 대출최고한도제를 폐지하고 대신에 지급준비율정책을 통화금융정책의 중추수단으로 삼는 한편 이와 함께 재할인에 의한 양적 조절, 통화안정증권 매매를 단기적 금융조절수단을 활용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한국은행은 1967년 3월 단기적인 자금수급의 불균형에 신축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통화안정계정을 설치하기로 하였다. 


정부는 고도성장에 불가결한 내자동원을 확대하기 위해 금융기관을 신설하거나 정비하였다. 1967년 3월에는 한국주택금고법 제정으로 주택금고가 설립되어 한국산업은행의 주택자금을 인수하여 주택금융을 전담하게 되었는데, 이는 1969년 1월에 한국주택은행으로 개칭되었다. 1967년 1월에는 외환은행법에 의거해 외국환업무를 주요업무로 하는 한국외환은행이 한국은행 출자로 설립되었다. 지역금융을 활성화하고 내자동원을 확대하기 위해 지방은행이 순차적으로 설립되었는데, 1967년에는 대구은행, 부산은행이 1968년에는 충청은행, 광주은행, 1969년에는 제주은행, 경기은행, 전북은행, 1970년에는 강원은행, 경남은행, 1971년 충북은행이 설립되었다. 1968년 12월에는 신탁업 전업기관으로 한국신탁은행이 설립되었다. 


정부는 자본시장의 육성을 통한 내자동원체제도 강화하고자 하였다. 1968년 11월‘자본시장 육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공개기업에 대해서도 세제상의 혜택을 주어 기업공개를 유도하고자 했으면 유가증권의 인수 모집 또는 매출의 주선 등 발행시장 업무를 담당하는 한국투자공사를 설립하였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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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배영목(충북대 경제학과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8. 08. 28

최종 주제 수정
2008. 09.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