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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립학교규칙

분야별 주제 및 주요내용 및 소개 테이블
주제유형 정책/제도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근거

<사립학교규칙> 1911년10월20일, 부령 제114호
<조선교육령> 1911년8월23일, 칙령 제229호

배경

강제병합 이후 조선인 교육의 최고 근거법으로 공포된 「조선교육령」에서는 사립학교의 설치 및 폐지도 조선총독의 인가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당시에 사립학교는 외국인 선교사에 의해 운영되는 기독교계 사립학교와 민족주의 진영의 사립학교 등으로 대별되고 있었다. 식민당국은 먼저 독립사상을 고취시키는 민족주의 진영의 사립학교에 대한 통제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이미 강제병합 이전에 제정된 「사립학교령」(1908년)으로 민간부문의 교육 영역에 대한 당국의 광범위한 감독권과 인가권을 규정하고는 있었지만, 보다 철저한 감시 및 통제 정책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조선교육령」 및 각급 학교에 대한 규칙들과 더불어 「사립학교규칙」도 함께 제정·공포되었다.

내용

통감부시기인 1908년에 「사립학교령」이 제정될 당시에도 당국은 다소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기존의 사립학교를 전면적으로 폐쇄하고 공립으로 전환하여 운영할 만한 경비나 교원이 부족한 현실적인 이유에 더하여, 사립학교 운영 주체의 반발과 비판적인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통감부 시기의 사립학교에 대한 관리·감독은 주로 그것의 설립인가 기준과 교과용 도서에 초점을 두었고, 학교 운영 및 교육과정에 대한 통제는 상대적으로 유연한 태도였다. 그러나 강제병합과 함께 이러한 식민당국의 사립학교 정책은 크게 전환되었다.


1911년의 「사립학교규칙」에서 규정한 사립학교의 설립 및 인가 규정(제2조)은 종래의 「사립학교령」보다는 한층 강화된 것이었다. 총 7가지로 제시한 인가 사항 중에서 학교 운영을 위한 기본재산 및 1년간 수지예산 설정 등 학교재정에 대한 높은 인가 기준은 당시에 재정적 조건이 충분하지 못했던 사학재단으로서는 커다란 부담이 되었다. 특히 민족주의 진영의 사학재단은 재원 마련을 위해 독지가의 거출이나 기부금 또는 공적인 부과금 등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는데, 당국의 세제 개정으로 시장세의 염출 등 사적인 부과금이 차단된 것에 더하여, 기부금 모금 및 요청에 대해서도 당국의 엄격한 감시와 억제가 행해져 사학은 재원 조달에 더욱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또한 「사립학교규칙」에서는 기존의 인가 사항을 변경할 때에도 다시 조선총독의 인가를 받거나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제3조). 학교의 설립 목적, 학칙, 설립자, 학교장을 변경하는 경우에 다시 조선총독의 인가를 받도록 하였고, 학교의 이름과 위치, 교지나 교사 및 그 소유자, 재정의 유지 방법, 교원 등에서 변화가 있을 때는 조선총독에게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설립자나 학교장 및 교원의 변경에 대해서는 반드시 이력서를 첨부하도록 하였다. 이처럼 「사립학교령」에서는 학교의 설립 인가를 신청할 당시에 단순한 기재사항에 불과했던 항목들이 이제는 허가를 받거나 신고를 요하는 사항으로 강화되었다. 또한 이들 항목은 변경될 때마다 지속적인 관리·감독의 대상이 되었다.


교과용 도서에 대한 규정도 보다 강화되었다(제9, 10조). 통감부시기에 이미 「교과용도서 검정 규정」(1908년)과 「출판법」(1909년)에 의해 사립학교에서 사용하는 교과서에 대한 1차적인 검열을 마친 상태였다. 「사립학교규칙」에서는 사립학교에서 사용할 수 있는 교과서는 조선총독부가 편찬하거나 검정을 마친 것으로 규정하였고, 해당 교과서가 없는 경우는 조선총독의 인가를 얻어 그 외의 도서를 교과서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때는 교과서로 사용하려는 도서의 이름, 책수, 대상 학년, 저·역자, 발행자, 발행일 등을 상세하게 기록하여 조선총독에게 인가를 신청하도록 하였다.


「사립학교규칙」에서는 학교의 인사권에 대해서도 통제를 강화하고 있었다. 사립학교의 설립자, 학교장 및 교원이 될 수 없는 사유를 적시한 데 이어(제11조), 설립자가 그러한 사유에 해당하게 되는 경우에 기존의 설립 인가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였고, 또한 학교장 및 교원이 이에 해당하는 경우는 설립자에게 그의 해고를 명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제12조). 학교 설립의 취소나 해고를 명하는 사유란 “성행이 불량한 것으로 인정되는 자” 등의 모호한 항목을 포함하고 있다. 이처럼 포괄적이며 막연한 규정은 사립학교를 폐쇄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조치에 해당하는 항목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즉, “안녕 질서를 문란하게 하거나 풍속을 괴란할 우려가 있는 경우”(제14조)라는 막연한 이유로 사립학교 자체를 폐쇄시킬 수 있도록 한 것이다.


1911년에 제정된 「사립학교규칙」은 사립학교에 대한 한층 강화된 감시와 통제 정책이었고, 당시 사학으로서는 커다란 부담이 되고 있었다. 그러나 식민지 당국은 여전히 그 성과가 미흡하다고 보고, 1915년에는 더욱 적극적인 형태로 「사립학교규칙」을 개정함으로써 사학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1910년에만 해도 당국에 인가를 받은 사립학교는 2,250개교였으나, 「사립학교규칙」이 제정된 이후인 1912년에는 1,317개교로 급감하였고, 「사립학교규칙」이 개정되어 통제정책이 한층 강화된 결과 1919년에는 불과 690개 사립학교만이 운영될 수 있었다.

참고자료

이만규,《조선교육사》 거름, 1988

정재철,《일제의 대한국식민지교육정책사≫ 일지사, 1985

文部省敎育史編纂會 編, <明治以降敎育制度發達史>, 龍吟社, 1939

손인수, <한국근대교육사> 연세대학교출판부, 1971

집필자

박철희(경인교대 교육학과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07.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