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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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부문조정

주제유형
역사적사건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발생배경
1976년 12월 30일 경제장관협의회는 자동차부문의 조정을 발표했다. 이는 자동차 생산업체를 '현대', '새한', '기아산업'으로 3원화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자동차산업은 급속히 발전하였지만 1980년 박정희 대통령 사후 중화학공업 비판과 조정에서 한국의 자동차공업은 매우 불안정한 수요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역시 조정의 대상산업으로 올랐다.

내용

1980년 8월 20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승용차산업 일원화, 업체별 구분 전문화를 발표하였다. 그 내용은 첫째, 기존 '현대자동차'와 '새한자동차'를 1개 법인으로 통합하여 '현대' 그룹이 책임지고 경영하고, 둘째, '기아산업'에 대해서는 중소형 트럭, 1-5톤 버스 등 중차량(重車輛) 전문 생산체제업체로 육성한다는 것이었다. 조정전까지 '새한자동차'는 GM과 50% 합작으로 제미니, 레코드 등 100,000대를 생산 중이었고 '기아'는 브리사, 피아트 132, 프조 등 90,000대를 생산 중이었다. 이외에도 8월 20일 발표는 군용지프, 장갑차 등 군수용 대형버스, 트럭은 '아세아'가 생산을 맡는다는 분단 전문화도 포함되었다. 


정부는 1차 조정 발표 후 실행수단과 제약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1차 조정 발표가 잘못되었음을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자동차 일원화는 GM 문제로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GM은 주식배당을 50%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현대'는 이를 거부하고 있었다. '현대'와 GM의 대립으로 조정이 부진하자 정부는 우선 국내의 자동차 산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으로 방향을 돌려 1980년 10월 자동차 육성계획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1981년이 되어도 “'기아산업'은 픽업 1톤 이상 5톤 이하 트럭과 버스를 생산할 수 있고, '현대', '새한' 통합사는 승용차, 픽업 8톤 이상의 트럭과 버스를 생산하도록 한다”는 생산차종별 분할 원칙 외에 '현대'-GM의 대립 지속 등 자동차 부문 조정은 구체적인 어느 것 하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마침내 정부는 1981년 2월 28일 '자동차공업합리화계획'을 발표하여 1차 조정 무효와 새로운 조정을 선언하였다. 새 조정 발표문에서 “현실적으로 추진가능한”, “관련당사자들과의 충분한 사전협의를 거쳐” 등이 강조되고 있는 것은 당시 정부의 정책수단 부재와 정부의 일방적인 개입에 대한 비판이 상당히 높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발표는 크게 4개의 항으로 되어 있다. 우선 승용차 생산은 일원화 계획을 취소하고 '현대', '새한'으로 2원화한다는 것이었다. 2항과 3항은 상용차(商用車)에 관한 것인데, 2항의 내용은 '동아자동차'가 특수특장차의 생산을 전문화하고 '기아산업'은 1-5톤의 중소형버스 생산을 특화하며 8톤 이상 트럭 및 대형버스 등은 경쟁체제로 한다는 것이었다. 3항의 내용은 '동아자동차'와 '기아산업'을 통합하여 특수차량 전문생산 공장화한다는 내용이다. 2항과 3항의 발표는 비록 “전문생산체제를 대비하여”라고 되어있지만 회사는 합병하되 생산체제는 독립적으로 한다는 내용이다. 결과적으로 최대규모 혹은 외자합자 기업만 조정에서 수혜기업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정부의 최종이라는 다짐에도 불구하고 1981년 2월의 자동차기업 이원화 및 합병조치 역시 정책수단과 관련기업 정보협조 등에 대한 의식의 전환없이 통합만이 강제된 조치였다는 점에서 다시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기아산업'과 '동아자동차'는 상공부의 명령에 따라 12월 31일 이전에 합병절차를 마치기로 하고, 11월 19일 양사 건의서 상공부 제출, 11월 30일 상공부차관 주재 4시간의 회의와 기본통합 발표, 그리고 12월 1일 1:1 합병의 '기아' 흡수안인 합병계약서에 서명까지 하였다. 그러나 실질적인 내용에서는 문제점만 노정시켜 결국 정부는 1982년 7월 26일 이 조정을 다시 무효화하였다. '동아자동차'의 특장차 전문생산 역시 백지화하였다.


참고자료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공자원분과위원회,《발전설비 및 자동차분야 통합을 위한 투자조정》, 1980. 8. 19.
《기아산업과 동아자동차의 합병에 관한 기본합의서》, 1981. 3. 18.
대한상공회의소,《한국의 상공업 100년》, 1984.
박병윤, <중화학공업계의 내막>《신동아》189, 1980.
박영구, <정책시그널로 본 70년대 중화학공업조정의 미시적 연구> 《무역경영논집 제10집》 부산외국어대학교 무역경영연구소, 1994. 12, pp. 5-28.
박영구, <산업조정의 인식과 경험: 1980년대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한국국제경제학회 2000년도 동계학술대회 논문집》, 2000. 12. pp. 333-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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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공부 <<자동차공업합리화계획>>, 1981. 2. 28
<<한국경제신문>>, 1981. 3. 1.
한국자동차공업협동조합 <<자동차공업편람>>, 1994.
손준철 <중화학공업투자조정의 경과와 실패원인> <<입법조사월보>> 145, 대한민국국회, 1985. 4, pp. 45-46.


집필자
박영구(부산외국어대학교 상경대학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07.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