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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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공업단지

주제유형
조직/기구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근거

1973년 중화학공업육성계획

1973년 중화학공업화정책선언에 따른 공업구조 개편론

「철강공업육성법」(법률 제3181호)

「철강공업기본육성계획」


배경
중화학공업은 (1) 산업부문간의 상호의존성이 높기 때문에 원료의 중간재 및 제품간의 생산이나 기술적 연관관계가 밀접하고, (2) 고도의 장치산업이기 때문에 용수, 전력 등의 거대유틸리티의 지원이 요청되며, (3) 이러한 산업 중 일부는 공해산업이기 때문에 공해의 집중화 또는 공동방지의 대책이 강구되어야만 하고, (4) 막대한 기술인력의 확보가 요청된다. 


이 때문에 업종별로 최적지를 선정하여 동종업종이나 관련산업을 집단적으로 유치, 개발함으로써 산업부문간 연관효과의 조성, 공동지원, 공동시설의 이용, 기능노동력의 확보 및 공해대상지의 한정과 공해 집중방지 등에 의한 투자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따라서 정부는 전국적으로 입지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투자비를 절감하는 것과 동시에 연관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철강기지, 종합화학기지(여수, 광양), 비철금속기지(온산), 종합기계공업기지(창원), 조선기지(거제도 일대), 전자기지(구미) 등 공업단지를 건설했다. 이외에도 특히 철강공업에서 정부의 정책은 철강 생산비절감 요소를 정부가 촉진시켜, 한국으로서는 늦은 철강공업의 출발과정을 단축시키려 하였다. 실질적으로 원료대는 철강공업에서 가장 주요한 절대비용 항목이었고 운송비용은 2번째 주요비용이었는데 이러한 비용의 절감을 위해서도 정부는 철강공업단지 조성을 시행했다.

내용

1969년 6월 10일 박정희대통령이 “기간산업 중에서도 근간을 이루는 철강공업 육성방안을 마련하여 정책적 지원을 강화하라”고 지시하여 9월 11일 경제장관회의에서 철강공업육성방안이 통과되었다. 11월 21일 제91회 국무회의 의결(의안번호 143호)이 이루어졌고 12월 20일 국회를 통과하여 1970년 1월 1일 「철강공업육성법」이 제정공포되었다. 이에 따라 1970년 4월 1일 포항에서 종합제철기지 착공식이 이루어졌다. 1973년 1월 12일 중화학공업화 선언에서 대통령은 제2의 종합제철공장기지 건설을 앞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1973년 6월 8일 포항종합제철의 첫 화입식(火入式)이 거행되고 1973년 7월 3일 준공식이 이루어졌다. 준공식에서 대통령은 다시 제2종합제철기지 건설방침을 공포하였다.


이 포항철강공업기지 건설에는 전후 최대 역사라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3배에 해당하는 1,215억 원이 투입되었다. 포항제철기지가 예정에 비해 조기준공된 것은 행운이었다. 1973년 10월 1차 석유위기가 일어나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이 진행되었으므로 건설비용의 대폭적 상승이 일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플레이션으로 철강가격은 폭등했다. 1973년 포철 가동 1년 만에 외자 투입 상환이 가능하도록 흑자가 나타났다.


제2철강기지는 연산 1,000만톤 이상의 선철일관제철소와 철강관련제품 생산설비를 동일한 장소에 건설하여 철강공업의 특성을 살리는 것으로 계획되었다. 이에 따라 목표연도의 우리나라 철강생산능력을 1,500만 톤으로 상정하여 포항종합제철기지의 연간 250만 톤 생산능력을 배가하여 연간 500만 톤 규모의 제철능력을 보유케 하고 나머지 1,000만 톤에 대한 제철능력은 별도의 종합제철기지를 신설하는 것으로 철강기지 확장계획이 작성되었다.


1973년 12월 1일 포항종합제철 1차 확장공사 즉 2기공사가 착공되었다. 그러나 제2철강기지는 참여 미국회사 US Steel의 계속된 수익보장 요구와 포철의 공사연기 요구로 착공하지 못한 채 계속 지지부진했다. 1975년 3월 「경제기획원」 장관은 제2제철 건설에 필요한 내외자 조달이 어렵게 됐으므로 3년 후인 1978년에나 가서 다시 검토키로 한다는 제2제철 백지화를 발표했다. 석유위기가 극복되면서 1976년 8월 2일 3기 포항제철기지 공사가 착공되었다. 3기 공사는 1976년 8월 2일부터 1979년 4월 30일 기간 동안 외자 7억 6천 630만 달러, 내자 4억8천 907만 달러, 총 12억 5천 537만 달러(6천 290억 원)를 들여 시행하도록 계획되었다. 작업은 3천 759m2의 제3고로, 12개의 단위 공장, 11개 부속시설을 갖추는 것이었다. 이어 4기 공사가 외자 6억 8천만 달러, 내자 3천 459억 원을 투입하여 시행되었다. 제4고로, 제2연주, 제2열연공장을 비롯한 7개 공장의 신설, 제2제강공장을 포함한 6개 공장을 확장하는 것과 항만, 하역, 철도 등 11개 부대설비의 증설이 4기 공사의 내용이었다.


세계최대의 경쟁력을 갖춘 종합철강기지를 목표로 한 철강공업단지 계획은 1973년에 제철, 제강, 압연의 일관공정인 「포항종합제철」이 완성되었고 1976년 5월에는 260만 톤의 2기공사, 1978년 12월에는 550만 톤의 제3기 공사, 그리고 1981년에는 850만 톤 규모의 제4기 공사 완공으로 이루어졌다. 포항종합제철기지의 건설로 철강공업 경쟁력에 결정적인 핵심비용 하락과 자원집중을 유도함으로써 철강공업이 정상궤도로 진입하는 기간이 단축되었고 또 성공할 수 있었다.


참고자료

대통령비서실,《중화학공업화정책선언에 따른 공업구조 개편론》, 1973.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우리나라의 중화학공업화정책(해설)》, 1973.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 기획단,《한국공업화발전에 관한 조사연구, 제2권, 중화학공업정책사》, 1979.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 기획단,《한국공업화발전에 관한 조사연구(Ⅲ): 정책결정과정의 이면사》, 1979.

포항제철,《1973년도 연차보고서》, 1974.

Heavy and Chemical Industry Promotion Counci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Heavy and Chemical Industry, 1976.


집필자
박영구(부산외국어대학교 상경대학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07.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