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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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계열화촉진법안(1975)

주제유형
정책/제도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근거
1974년 11월 1일 경제장관회의 의결

배경
중소기업계열화의 필요성은 1960년대 정책부터 인식되고 있었고 정부, 연구기관 모두 공업발전에 따라 1970년대 계열화가 자동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래서 한국정부는 공업진흥의 구체적인 시책으로서 전문화 및 계열화 생산체제를 추진해 왔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계열화가 정상적으로 발전하지 않자 계열화를 촉진시킬 제도적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특히 1970년대중화학공업화 과정에서 생산 및 기술의 전문화와 계열화의 원칙에 입각하여 관련산업이나 관련부문 사이에 조화와 협조가 요청되었기에 정부는 중화학공업화정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서도 전문화 및 계열화 체계를 강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경과
정부는 기계공업 육성을 위한 주요한 목표인 전문화, 계열화 체제의 확립을 위해 1971년 5월 농업기계를 효시로 1972년 10월 금속공작기계 전문화업체 지정 등 전문화, 계열화 업체를 지정해 왔다. 1973년 중화학공업화선언 후 중화학공업화의 성공을 위해 계열화의 필요성이 커져, 1974년 11월 1일 <경제장관회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계열화하기 위한 「중소기업계열화촉진법안」 제정을 의결하였다. 1975년 1월 조기 국산화와 품질개선을 목표로 자동차 부품 계열화업체가 지정되고, 3월에는 건전한 육성과 수출증대를 목표로 직기류 전문화 업체가 지정되었다. 1975년 12월 31일 「중소기업계열화 촉진법」이 시행되었고, 1976년 6월 3일에는 계열화 심의회 구성, 협업의 이익과 중소기업의 근대화를 목적으로 「중소기업계열화촉진법 시행령」이 대통령령 제8114호로 공포되었으며, 이어 6월 17일 「중소기업계열화촉진법 시행령 시행세칙」이 상공부령 제483호로 제정 공포되었다. 1978년에는 「중소기업계열화촉진법」이 완성차업계의 요구 등 기업요구를 반영하여 개정되었고, 1982년에는 「중소기업계열화촉진법」에 「중소기업계열화촉진협의회」와 「모기업체단위별 수급기업체협의회」 설치조항을 신설하였다.

내용

정부는 1975년 12월 31일 「중소기업계열화 촉진법」에서 산업자본의 지원과 함께 모기업과 도급기업과의 관계에서 도급업체에 유리하도록 장기 위탁계약을 체결토록 함으로써 중소기업 시설의 대형화, 현대화를 유도했다. 이 법을 통해 정부는 (1) 중소도급기업의 규모 적정화, 시설개선, 기술개발, 원자재 구입을 위한 장기저리 자금을 지원하고, (2) 모기업 횡포를 막기 위해 어음은 영수한 날로부터 60일 이내로 한정하여 발행하도록 하며, (3) 장기위탁계약 체결 등으로 중소계열화 기업의 안정적 성장을 도모하였다. 이후 실질적으로 이 법에 의해 「상공부」는 매년 계열화 대상품목을 확대해 나가는 노력을 했고 계열하청기업과 모기업의 등록이 의무화되었으며 금융상의 지원도 시작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한 법의 입법취지와 목적과는 다르게 진행되었다. 상공부는 매년 이 제도에 의해 합병, 계열화 기업을 지정, 고시하였지만 그 실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1980년 계열화율은 1%에 불과하였고 대상품목은 71개 업체, 업체수는 모기업 64개, 수급기업 263개의 실적뿐이었다. 지원된 자금도 1978-79년 기간 중 43.7억 원, 80년 76.2억 원에 불과하였다.


이러한 원인에는 대기업들의 선택이 있었다. 1970년대 후반 나타난 대기업집단의 경제력 집중은 자체적인 설립과 기술개발, 동종 국내외 대기업과의 경쟁을 통한 것보다는 선발기업 특히 중소기업을 인수하는 창업자이득(founder's profit)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었다. 중화학공업에서도 대기업집단들은 1970년대 중반 이후 중화학공업의 주도권을 재계의 영토분할 전쟁으로 인식하였고 이때 대기업집단들이 선택한 일차 전략이 바로 영토분할에 참여하기에 앞서 기존업체를 인수하여 일단 연고권을 확보하는 방식이었다. 1973년 중화학공업화 선언 이후 99대 기업의 인수합병이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며, 특히 1976-78년간 99대 기업에서 중화학공업 23건을 포함하여 45건의 인수합병이 이루어졌다. 대기업집단들은 관련 중화학공업에서만 인수합병을 진행한 것이 아니고 경공업, 기타 부문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인수합병을 하는 무조건적인 혼합결합을 진행하였다.


참고자료

《관보》1975년 12월 31일자, 6월 3일자.

경제기획원,《경제백서》, 1981.

김의균, <르뽀, 중화학공업투자 조정의 내막>《신동아》, 1980, 12.

대한민국정부,《행정백서》, 1977. 4.

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제20년의 회고와 반성》, 1982.

이만희,《EPB는 기적을 낳았는가》, 해돋이, 1993.

이재희, <한국대기업의 독점화 과정에 대한 연구>,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박사학위 논문, 1989.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우리나라의 중화학공업화정책(해설)》, 1973.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 기획단,《한국공업화발전에 관한 조사연구(Ⅲ): 정책결정과정의 이면사》, 1979.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 기획단,《한국공업화발전에 관한 조사연구, 제1권, 중화학공업발전사》, 1979.

한국과학기술연구소,《중공업발전의 기반: 한국의 기계 및 소재공업의 현황과 전망 분석》, 상, 한국과학기술연구소, 1970.

한국산업은행,《한국의 산업 上》, 1979.


집필자
박영구(부산외국어대학교 상경대학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07.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