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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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프공업육성(1973)

주제유형
정책/제도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근거

1973년 대통령 지시

1973년 「대단위 화학펄프공장 건설계획」


배경
화학펄프공장 건설계획은 1차5개년계획에서부터 포함되어 있었으나 원료인 펄프용 나무가 전액 수입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착수되지 않고 있었다. 이병철, 정주영, 그리고 「세진레이온」 등이 검토한 적이 있으나 역시 타당성이 맞지 않는다고 포기했다. 그 결과 한국의 화학공업 중 제지공업은 대부분의 공장이 영세공장 수준이고 생산시설의 현대식 자동화장치가 갖추어져 있지 않으며 대표적인 3D업종으로 화학펄프 생산없이 화학펄프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당연히 제지공업은 제품가격의 안정성이 떨어지고 해외충격에 약했다. 


1970년대 초 펄프공업의 자립은 정말 시급을 요하는 문제였다. 이런 취약한 생산, 공급 구조 속에서 맞이한 1973년 석유위기로 한국은 펄프 가격이 톤당 350달러에서 725달러로 2배 상승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최소한 펄프공장 하나만 있었어도 이렇게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반성이 석유위기를 겪으면서 정부와 재계에서 크게 대두되었고 박정희대통령은 “우리나라에 펄프공장이 없는 것은 자연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의 머리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고 지적하면서 대단위화학펄프공장 건설계획이 본격화되었다.

경과
정부는 중화학공업화에서 철강, 기계, 석유화학, 조선, 전자, 비철금속공업에 펄프공업을 넣어 7개 중화학공업 부문으로 부르며 이들 부문 소관부처의 계획조정, 산업기지 조성을 효율화하기 위한 제도개혁 등을 추진했다. 그러나 펄프공업은 주요 순위에서 계속 밀려나 있었다. 이런 중에 1973년 「세진(世進)레이온」이 원료의 자가확보와 안정조업을 위해 일산 800톤의 공장 건설 계획을 세웠다. 이 공장은 온산단지내에 설립할 계획이었고 1973년 당시 건설비는 내외자 2억 2,000만 달러로 책정되었다. 그러나 민간기업으로서의 「세진레이온」에게 펄프공장 건설은 역부족이었다. 


그러다가 1973년 석유위기로 펄프 가격이 톤당 2배 상승하였다.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던 한국경제는 펄프공업 부재론에 반성을 하게 되었고 특히 이를 보고받은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대단위화학펄프공장건설계획이 구체화되었다. 1973년 11월 26일 만들어진 대단위 화학펄프공장 건설계획은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확정되었다. 사업비 2억 2000만 달러 중 1억 달러는 내자, 외자는 1억 2천만 달러 차관으로 확보한다는 방침 아래 1974년 10월 캐나다 수출입은행(EDC)과 차관교섭에 착수했다. 그러나 EDC는 한국펄프공업의 가능성에 부정적이었고 차관을 거부함에 따라 다시 한국대표단은 다른 차관을 얻기 위해 유럽 각국으로 돌아 다녀야 했지만 이것마저도 모두 실패하였다. 결국 1976년 1월 직원 3명, 타자수 1명을 남기고 「대한펄프」 인원을 모두 모기업으로 철수시켰다. 


이후 정부는 국내 합판공장의 폐재(廢材)를 사용한 펄프공장을 건설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1976년 3월 27일 제12차 경제장관간담회에서 이를 확정하였다. 폐재사용이므로 일산 8백톤을 3백톤으로 대폭 축소조정하고 생산품목도 BKP(표백)로 단일화하였으며 투자방식도 「세진레이론」을 제외시키고 전액 정부출자로 하면서 종전의 합작을 국내단독투자로 변경했다.

내용
1973년 정부는 「세진레이온」의 사업계획을 인수하여 1973년 11월 26일 박대통령의 재가를 얻어 대단위 화학펄프공장을 건설한다는 원칙을 확정했다. 건설사업 규모는 1981년까지 도입화학펄프의 약 1/2을 자급화한다는 계획하에 일산 8백톤으로 하고 투자는 합작투자로 하되 자본금 20%, 차입금 80%로 결정하였다. 1974년 1월 16일 「대한화학펄프(주)」가 설립되었다. 불입자본금은 1억 원이었고 「한국종합화학」 60%, 「세진레이온」이 40% 투자했다.  입지로는 온산단지내에 20만 평을 중화학공업기획단에서 지정해 주었다. 건설될 화학펄프공장의 생산품목은 일산 8백 톤 중 BKP(표백) 350톤, UKP(비표백) 350톤, 디졸병펄프 150톤으로 하였다. 원료는 미국 「루이지아나 퍼시픽」사와 25% 자본합작하는 대신 원료인 펄프용 칩을 미국에서 수입하는 것으로 하였다.

참고자료

국무총리기획조정실,《중화학공업의 오늘과 내일》, 1973.

국무총리기획조정실 평가교수단 <제4차경제개발5개년계획 제3차연도 평가보고서: 제2편 산업부문> 국무총리기획조정실, 1980.

김용환,《김용환 회고록, 임자, 자네가 사령관 아닌가》매일경제신문사, 2002.

대한민국국회사무처,《제96회 국회상공위원회 회의록》제3호 제96회-상공제3차, 1976. 9.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 기획단,《중화학공업 추진현황》, 1979.


집필자
박영구(부산외국어대학교 상경대학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07.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