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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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경제인연합회(1968)

주제유형
조직/기구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근거

1961년 한국경제협의회

1961년 경제재건촉진회

1964년 수출지향정책으로의 전환과 촉진


배경
1960년대 들어 본격적인 수출지향경제로 나아가기 시작한 한국의 공업화 과정에서 자본의 부족은 심각한 병목으로 작용했다. 당연히 정부는 자원을 집중하여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선도기업에 의한 빠른 학습효과로 선진국 따라잡기와 광범위한 전후방 연관효과가 나타나기를 기대했다. 이런 가운데 같은 아시아권에 있으면서 이미 1950년대 세계중심경제국가로 재성공한 일본을 모델로 한국도 성장하고자 하는 의식이 많았다. 이에 따라 1961년 1월 일본 경제단체연합회인 게이따렌(經團連)을 모델로 한 「한국경제협의회」가 설립되었다. 5.16후 부정축재자로 수감되었던 기업인들이 경제 재건을 약속하고 풀려나오자 이들은 1961년 8월 16일 「경제재건촉진회」 제1회 임시총회에서 「한국경제협의회」를 「한국경제인협회」로 개명하고 회장에 이병철 삼성회장, 부회장에 조성철 중앙산업회장, 감사에 김지태 조선견직 사장을 선임하여 국가경제발전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선언했다. 1964년 수출진흥종합시책이 발표되고 수출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대기업들의 역할이 보다 커지게 되었고 이에 따라 1968년 「전국경제인연합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내용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한국의 주요 경제정책마다 일정한 역할을 하여왔다. 각 시기별로 주요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1968년 3월 14일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전신인 「한국경제인협회」는 이사회를 열고종합무역상사 설립구상을 채택하여 청와대, 경제기획원, 상공부, 재무부에 건의했다. 정부지원에 의해 대형 무역상사가 출현할 경우 기존 군소무역업체들은 타격이 클 것이라는 거센 반발이 있어 성사되지 못했지만 전국경제인연합회의 건의는 이후 종합무역상사 설립의 기초가 되었다.


1969년 12월 「70년대 경제질서의 방향에 대한 의견」이라는 1970년대 정책건의를 통해 국공영기업을 조속히 민영화 할 것 등을 요구한 이래 1970년대를 통해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매년 기업계의 자체능력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중화학공업화가 시작되면서 현실적으로 진입능력에 가장 근접해 있던 대기업집단의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중화학공업의 추진에 공개적으로 반대입장을 표명하고 나섰다. “국제적 차원에서는 아직 훨씬 못 미치는 규모일 뿐 아니라 기술축적이 미약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중화학공업화에 어느 정도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중화학공업에의 진입기피 혹은 반대 이유였다. 「전경련」이 1960년대 후반부터 지속적으로 기간 국공영기업의 민영화를 주장하였던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전경련의 주장은 스스로 이율배반적인 안정추구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에도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계속 규모의 경제와 국제경쟁단위를 주도적으로 주장해 왔다.


산업의 급속한 발전과 수출확대에 따라 전경련의 정보분석 능력이 정부를 앞서게 되었고 이 무렵 쯤인 1977년 11월 정주영 회장이 전경련 회장으로 취임하였다. 정회장은 취임과 동시에 정부의 간섭을 배제하고자 하는 ‘자율경제’ ‘민간주도경제’를 주창했고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산업활동을 위축시키므로 자유경제에 의한 중화학공업화 필요성을 주장했다. 연말에는 전경련이 정부에 개방경제에 다가가기 위한 자율경제운영기조의 종합경제정책 방향을 건의하기도 하였다. 1978년 9월 다시 전경련은 정부의 과도한 시장규제제도가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키고 물자의 부족을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민간주도형자유경제제도로의 전환 필요를 주장하였다.


1979년 들어와 전경련의 대정부 비판은 매우 높아졌다. 연례기자회견에서 전경련회장은 정부의 경제관리를 과감히 비판하기 시작했고 경제인의 경제정책 참여를 강력히 요구하였다. 


7월에는 정주영 전경련회장이 ‘경제기획원의 금융긴축이 기업경쟁력 저하를 가져오고 있다’고 주장하고 기업활동의 활성화를 위해 금융완화를 요구했다. 9월에는 정주영 회장이 경영의사결정, 가격기구, 금융자율화, 노사관계, 경제정책개혁 등에서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연설을 하였으며, 10월에는 전경련 명의로 「금리조정의 문제점과 부작용에 관한 의견」을 정부에 제출했다. 박정희 대통령 사후 전경련은 12월에 경제위기 극복 수단으로서 다시 민간주도경제로의 정책을 제안했다. 이러한 지속적인 요구는 경제기획원의 1980년 1월 장기전략에 반영되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980년대에는 전략산업 육성, 민간경제 협력, 노사관계 안정에, 1990년대에는 정보통신산업 육성, 사회공헌활동, 국가경쟁력 강화에 역점사업을 두었고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e-Business 등 정보화산업, 윤리경영, 투명경영과 기업의 사회공헌사업, 국가경쟁력 강화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참고자료

박영구, <진입과 조정을 통해 본 기업과 정부: 1970년대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근현대 한국경제에서의 기업과 정부》경제사학회 2002년 정기학술대회 논문집, 2002. 12. 13, pp. 137-157.

박영구, <1970년대 중화학공업정책을 둘러싼 안정론과 성장론> 《한국경제와 세계화》한국경제연구학회 정기학술대회, 2006. 12, pp. 277-305.

전국경제인연합회,《전국경제인연합회 20년사》, 1982.

전국경제인연합회,《민간경제백서》, 1980.

전국경제인연합회 홈페이지(http://www.fki.or.kr)


집필자
박영구(부산외국어대학교 상경대학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07.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