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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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투자기금(1974)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근거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의 재무부 지시

「국민투자기금법」


배경
1960년대 중반 저축성예금 연말잔액 비율은 GNP의 4%에 불과했다. 1960년대 말부터 정부는 정부부채나 화폐증발이 아니라 사채 시장의 돈을 상당히 제도권으로 흡수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1970년대에도 내자동원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가운데 1973년 중화학공업화선언이 이루어졌다. 중화학공업화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국내저축률이 최소한 25% 이상으로 제고되어야 할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1972년 경 국내저축률은 15%선에 머물러 있었다. 따라서 외자가 고려되었지만 일차적으로 내자동원이 없이 중화학공업은 불가능하였다. 이에 대통령은 재무부장관에게 내자동원을 위한 방법을 만들라고 지시하였고 이에 따라 재무부는 중화학공업 등 중요산업에 대한 자금공급을 위한 내자동원계획의 일환으로 국민투자기금을 만들었다.

내용

1973년 12월 14일 「국민투자기금법(법률 제2635호)」 제정으로 「국민투자기금」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설비금융방식 중 가장 광범위하고 강력한 정책금융제도였던 국민투자기금이 재정융자기금회계 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74년 이래 79.2%, 83.2%, 89.5%, 88.6%, 86.0%, 87.1%였고, 특히 공업부문 재정융자기금 중 차지하는 비율은 동 기간 99.0%였다.


기금은 “국민투자채권의 발행과 정부예산으로부터의 전입금 혹은 예탁금에 의하여 자금을 조달하고 이를 금융기관에 대하하여 동법에서 정하는 중화학공업과 수출산업에 융자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재정이 아닌 금융기관 돈, 즉 민간부문의 돈을 동원, 운용한 것이었고 정부가 재정으로 보전해 준 것은 이차보전비용(利差補塡費用)뿐이었다. 당초 정부는 재정자금의 출연을 대폭 확대할 계획이었으나 의욕대로 출연이 되지 않았다. 인플레이션과 재정적자가 문제점으로 등장하면서 1973년 이후 건전재정 운용을 위한 긴축예산편성, 긴축재정이 강조되는 데 따라 농어촌개발과 중화학공업 건설을 위한 재원조달을 바꾸어야 했다. 이에 정부는 각 금융기관의 예금 일정비율 이상을 국민투자기금으로 기탁하게금 강제하고 이를 저금리로 중화학공업에 집중지원하고 재무부가 재정기능을 금융기능으로 탈취하는 기금정책으로 전환한 것이었다. 따라서 실질적으로나 형식적으로도 국민투자기금은 국가예산을 통한 지원사업이 아니므로 국회의 심의와 의결을 거치지 않고 단지 국무회의의 심의만을 거쳐 그 운용이 이루어졌다.


금융기관은 저축성예금 증가분의 15%를 국민투자기금채권 매입에 사용해야 했다. 대출기업은 식량증산사업 혹은 대통령령이 정하는 사업으로 하였다. 운용계획은 국무회의의 심의에서 결정되었다. 기금의 책임자는 재무부장관이, 채권발행 및 기금의 운용관리는 한국은행총재가 맡았다. 이후 경제기획원과 재무부가 통합된 재정경제원장관은 국민투자기금의 수입과 지출을 명확히 하기 위하여 국민투자기금계정을 한국은행에 설치하였다.


한국은행 금융결제국은 2003년 4월 10일 <국민투자기금 업무 종료> 발표를 통해 ‘2003년 4월 10일(목)부로 국민투자기금법 폐지에 의거하여 국민투자기금의 청산 잔여자산 497억 원이 국고에 납입됨으로써 국민투자기금이 공식 종료’되었음을 발표하였다.


국민투자기금에 대한 많은 기존 논의에서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마치 중화학공업에 전액 사용된 것처럼 인식되고 있는 이 기금이 사용된 “중요산업이란 철강, 비철금속, 조선, 기계, 화학, 전자공업, 식량증산 사업과 대통령이 정하는 산업”이었으며 따라서 실질적으로 이 기금 중 1974년부터 1979년까지 중화학공업에 투입된 금액비중을 추계해 보면 61.1%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처음 재무부가 만든 「국민투자기금」안은 이 기금을 철강, 조선, 기계, 전자, 화학공업 등에만 활용키로 하고 기타사업은 대통령령에 위임하는 것으로 하였으나 국회심의에서 여야의원들이 식량증산사업을 지원대상으로 법에 명기할 것을 요구해 공식적으로 이 항목이 지원사업으로 포함되는 등 다른 사업에 지출되었기 때문이다. 국민투자기금은 정부재정에 심각한 압박을 주지 않으면서도 1970년대 한국의 중화학공업화를 비롯한 20세기 후반 한국 주요산업의 재원충당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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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금융결제국,《국민투자기금 업무 종료》, 2003. 4.


집필자
박영구(부산외국어대학교 상경대학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종 주제 수정
2007.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