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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방재

여수 여객선 '남영호' 침몰사고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발생원인

1970년 12월 14일 오후 16시경에 승객 338명과 감귤을 싣고 부산-제주간 정기여객선 남영호가 제주도 서귀포항을 출항하여 부산으로 향해하고 있었다. 12월 15일 새벽 1시 50분경에 전라남도 상일동 동남쪽 28마일 해상에서 선체가 갑자기 기울어져 전복돼 침몰했다. 사고원인은 적재정량의 약2배를 초과한 과적, 항해부주의, 긴급신호를 발신 후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한것이 피해가 크게 일어난 원인이었다.

내용

승객 274여명을 태우고 제주를 떠나 부산으로 가던 정기여객선 남영호는 1970년 12월 15일 새벽 1시 50분경 대마도 서쪽 100km 지점에서 전복돼 침몰했다. 남영호 서귀포취급소 승선자 명부에는 승객 수가 274명으로 등재되었지만 확인 과정을 거치면서 승객 수는 계속 불어났다. 경찰은 승객 수를 338명으로 최종 확인하였고 여객승선 정원 302명보다 36명을 더 태운 것으로 밝혀졌으며 64명은 승객 명부에도 기록되지 않은 상태였다. 더욱이 적재 화물량은 정량인 130톤의 2배에 가까운 229톤으로 밝혀졌다.


‘남영호 침몰사고’는 일본 해상보안청소속 구사사카 마루호의 긴급보고를 인용, 일본 교도통신이 전 세계에 타전했고, 한국에서는 12월 15일 오전 11시에야 라디오방송을 통해 긴급뉴스로 방송되기 시작했다.


치안당국이 사고를 어선 조난사고로 오인하면서 구조작업이 늦어져 326명이 숨지고, 당시 금액으로는 1억7천만원의 큰 재산 피해를 냈다. 그 당시의 건국 이래 최악의 해난사고로 기록된 이 사고는 생존자가 겨우 12명이었다. 남영호의 승객 대부분이 제주도민들이어서 남영호 침몰로 인해 제주도민들의 피해가 엄청났다. 당시 제주신문은 남영호 참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남영호 희생자 조위금품 접수를 하는 등 유가족 돕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참고자료

<경남 60 30대뉴스 (12) 남영호 침몰>《경남신문》2006. 02. 28
<제주의 역사와 함께한 60>《제주일보》2005. 01. 01

집필자
이주헌(중부대 토목공학과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07.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