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전체메뉴 닫기

분야별 검색

  • Home
  • 기록물 열람
  • 통합검색
  • 분야별 검색

재난방재

남해유람선 '극동호' 화재·침몰사고

주제유형
하위주제
  • 집필 내용은 국가기록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주제설명
발생원인

남해유람선 ‘극동호 화재·침몰사고’는 1987년 6월 16일 오후 2시50분쯤 경남 거제군 남부면 다포리 앞 속칭 솥뚜껑 해상에서 일어난 사고로서 관광객 86명(선장·선원 2명 포함)을 태우고 해금강 관광을 마치고 충무로 돌아가던 충무유람선협회소속 목조유람선 극동호(24t급)가 기관실 엔진의 발전기가 합선을 일으켜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고, 이때 불이 나면서 배가 침몰하였다.

내용

극동호는 길이20.7m, 너비3.8M의 25톤짜리 유람선에 86명이나 태우고 왕복 4시간이나 걸리는 장거리 과속운항을 한데다 선박용 엔진대신 낡아서 폐차 처분된 자동차엔진을 달고 8년을 운항하였다. 또한 기관사는 무자격자였으며, 소화기는 녹슬어 작동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구명동의, 튜브 등 구명장비는 꽁꽁 묶여 있었고 엔진실과 선실사이에는 방화벽도 없이 나무판자로 막아 화재에 무방비였다. 불이난 후 승무원들이 전혀 구조신호등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당황한 승객들은 좁은 선상에서 우왕좌왕하다 일부는 불길이 옷에 옮겨 붙자 바다로 뛰어들었다.


극동호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엔진은 79년 1월 유람선 건조 때 시중 중고자동차부속상회에서 사들인 265마력짜리 자동차 엔진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마력당 6~8만원씩 하는 선박용 엔진사용을 기피하고 값싼 자동차엔진을 사용한 것이다. 자동차용 엔진은 냉각기 계통이 청수로 냉각하도록 제작 돼 있어 해수냉각용인 선박용 엔진과는 달라 이를 선박에 설치할 경우 부식이 심해 2∼3년을 지탱하기 어렵다는 것이 선박전문가들의 지적이었다.


사고유람선 기관사에 따르면 이 배는 그동안 엔진고장이 잦아 1개월 전에도 클러치와 냉각기를 수리한 것을 비롯하여, 한 달 사이 5차례나 정비에 정비를 거듭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정기검사에 통과했으며 하루 1시간30분만 운항하게 돼 있는데도 이를 어기고 충무∼해금강사이를 4시간(1왕복)∼8시간(2왕복)씩 운항하였다.


사고배는 구명동의 113벌, 구명튜브 4개, 구명부기(부기)84개 등 198점의 구조장비를 갖추고 있었으나 장비들을 모두 밧줄로 묶어두었고, 승선당시 장비이용 및 비상탈출요령을 설명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불이 났을 때 승객들이 구조장비를 하나도 이용하지 못하고 선상에서 우왕좌왕했으며 선장이 배를 정박시키기 위해 인근암초에 밧줄을 매려할 때 10여명의 승객들이 한꺼번에 밧줄에 매달리다가 그대로 익사했다.


또 선장은 위급한 상황에 대비, 긴급구조를 요청할 SSB무전시설과 충무유람선협회에 수시로 항로보고를 하는 VHF통신시설을 갖추고도 사고당시 당황한 나머지 이를 사용하지 못한데다 조타실에 설치해둔 소화기 2개도 전혀 작동되지 않아 진화작업에 손을 쓰지 못하였다.
사고 시 보상을 하기위한 보험도 2명에게만 최고 500만원씩 보상되는 선주배상보험만 들어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이 큰 문제였다. 극동호 화재·침몰 사고로 관광객 86명(선장·선원 2명 포함) 중 관광객 27명(남3·여22)이 숨지고 8명이 실종, 51명은 구조되었다.

참고자료
<극동호 화재사고> 《중앙일보》 1987.06.16
<경남 60년 30대 뉴스 (19) 거제 극동호 화재> 《경남신문》 2006.02.28
집필자
이주헌(중부대 토목공학과 교수)
최초 주제 집필
2007. 12. 01
최초 주제 수정
2007. 12. 01